[취재파일] 김정은의 토로 “코로나·국경봉쇄는 전쟁 같은 시련”

북한이 27일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제7차 전국노병대회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어제(27일) 평양에서 ‘전국노병대회’를 개최했다. 전국노병대회는 말 그대로 전국의 노병들이 모인 대회인데, 6.25 전쟁 당시 참전했던 노병들을 기념하는 대회다. 어제는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데, 북한은 이날을 ‘전승절’이라고 부르며 기념하고 있다. ‘전승절’이라는 명칭은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로, 북한은 6.25 전쟁에서 미국과 싸워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어제 노병대회를 평양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진행했다. ‘조국해방전쟁’이란 6.25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사진을 보니 행사는 한밤 중에 진행됐다. 평양도 폭염이 계속되고 있으니 밤중에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개된 사진을 보면 형형색색의 불꽃이 발사되는 등 대규모 불꽃놀이와 함께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노병대회는 보통 실내에서 진행돼왔는데, 올해에는 야외에서 한밤중에 대규모 불꽃놀이와 함께 성대하게 진행된 것이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8주년, 북한식으로 해석하자면 전승절 68주년이다. 북한은 보통 5년 단위, 10년 단위의 기념일을 ‘꺾어지는 해’라 해서 크게 기념하는데, 올해 68주년은 이른바 ‘꺾어지는 해’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볼 때 크게 기념할 시점이 아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노병대회를 여느 때보다 성대하게 기념했다.

김정은 전쟁상황 못지 않은 시련의 고비

북한이 왜 이렇게 전국노병대회를 성대히 기념했는지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언급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어제 야외 노병대회에 참석해 연설했는데, 전쟁과 전후 복구 시기에 고군분투한 노병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가자고 독려했다.

전승세대가 가장 큰 국난에 직면하여 가장 큰 용기를 발휘하고 가장 큰 승리와 영예를 안아온 것처럼, 우리 세대도 그 훌륭한 전통을 이어 오늘의 어려운 고비를 보다 큰 새 승리로 바꿀 것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어제 연설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말도 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사상초유의 세계적인 보건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상황에 못지 않은 시련의 고비로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을 차단하면서 북한으로의 외부물자 반입이 중단된 지가 한참 됐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곤궁해지고 있는데, 이를 전쟁상황 못지 않은 시련의 고비라고 지칭한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들어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언급하고, 남한과의 연락선을 복원하는 등 대외적인 유화조치에 나서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이 27일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제7차 전국노병대회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언급 없어수위조절

김정은 총비서는 또 어제 연설에서 ‘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노병대회 연설에서는 ‘핵억제력’을 언급했는데 이번에는 ‘핵’이라는 말을 뺀 것이다. 무력과 관련해 김 총비서가 말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리 혁명무력은 변화되는 그 어떤 정세나 위협에도 대처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영웅적인 전투정신과 고상한 정치도덕적 풍모로 자기의 위력을 더욱 불패의 것으로 다지면서 국가방위와 사회주의 건설의 전초선들에 억척같이 서 있습니다.”

김 총비서가 ‘핵’에 대한 언급을 안 했다고 해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는 평가할 수 있겠다. 최근 계속되는 유화조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유화조치, 백신 지원 가능성 열어두는 측면도

북한의 유화조치는 대내 경제적 어려움 외에 향후 백신 지원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진이 얼마 전 기자들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중국산 백신 도입에 소극적이며 러시아 백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무상지원을 요구해 아직 도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백스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을 우려해 수용을 거부하면서 다른 백신으로의 대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이 백신을 지원받을 수 있는 나라는 현실적으로 한국이나 미국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백신을 지원할 형편이 아니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백신이 충분해지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북한의 유화조치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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