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盧정권+친북단체+北정권

▲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

8.15 민족대축전이 16일 오후 5시 고양 종합운동장에서 폐막식을 끝으로 사흘간의 행사를 마무리 한다. 북측 대표단은 17일 북으로 돌아간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치뤄진 이번 행사는 참여정부와 친북민간단체, 북한 당국이 우리사회를 주도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박 3일간 진행된 민족대축전은 행사 내내 파격적인 사건과 언행을 만들어냈다. 또, 축전이 참여정부와 친북단체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국가 정체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국내 여론도 남북대결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와 북한의 평화공세를 우려하는 입장으로 양분됐다.

15일 좌우 진영의 대규모 집회는 해방 정국에서 친탁과 반탁 간의 대립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만큼 혼란스러웠다는 지적이다.

8.15 민족대축전 주요 일정을 돌이켜 보면 북한이 이번 행사에서 얻고자 하는 목표를 읽을 수 있다. 그 목표가 상당부분 달성됐다는 것은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통해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15일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된 북측 대표단 환영 만찬에서 정 장관은 건배를 제의하며 “(남북이 함께) 자주∙평화∙통일의 나라를 외쳐 평양, 도쿄, 베이징, 워싱턴까지 들리게 하자”고 했다. 남과 북이 함께 외세를 극복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 국립현충원을 돌아나오는 북측 대표단 <사진:연합>

14일 민족대축전 첫날 북측 단장인 김기남 조국평화통일위 부위원장을 비롯해 북측 당국•민간 대표 30여 명은 동작동 현충원을 방문해 묵념했다.

북측 대표단의 행위는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와 6.25 전쟁과 ‘김일성’이라는 남한사회의 금기사항을 해체하기 위한 북한의 저의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보수 단체들은 6.25 전쟁과 각종 테러행위 사과, 납북자 귀환 등의 조치가 없는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측 대표단 현충원 방문 사전 브리핑에서 ‘화해와 협력을 위한 새로운 단계’라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없는 통일축구 무슨 의미인가” 지적

남북 대표단은 상암경기장 앞에서 민족대행진을 개최하고 남북 국가대표팀간 통일축구경기를 관람했다. 이 경기에서 태극기와 ‘대~한민국’ 응원구호가 금지됐다. ‘대한민국 없는 통일축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남북간 합의사항인 만큼 지켜져야 한다는 주최측의 주장이 관철됐다.

▲ 상암 경기장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는 응원단 <사진:연합>

행사장 분위기는 민족대축전 참가단체인 민화협 관계자, 통일연대, 한총련,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상암경기장을 찾은 6만 관중은 ‘통일은 됐어’라는 대형 구호에 빠져들었다. 행사장에는 태극기가 사라진 대신 한반도기와 ‘우리민족끼리’ 구호, 일부 참가자들의 ‘주한미군 철수’ 구호가 난무했다.

행사장 밖에서는 태극기를 나눠준 우익단체 회원이 친북단체 관계자가 던진 물병에 머리가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태극기 배포를 봉쇄했다.

축전 이튿날 국가 정체성과 8.15민족대축전을 둘러싼 남한 내 좌우 대립은 거리 집회로 이어졌다. 우익 진영은 서울역과 광화문에서 잇따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친북세력과 정권이 주도하는 축전 행사를 비판했다.

친북좌파 단체들은 대학로에서 ‘8•15 반전 평화 자주통일 범국민대회’를 갖고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기,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주장했다.

한반도기와 각종 반미, 자주통일을 상징하는 선전물을 들고 “한반도 악의 근원 주한미군 몰아내자” “9월 28일 맥아더 동상 철거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양측의 대결 양상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정황이 충분했다.

15일 오전에 진행된 8.15 민족대회 본행사에서는 남북대표단이 공동으로 7천만 겨레에 드리는 호소문을 채택하고 “온 겨레의 단합된 역량으로 민족의 운명을 위협하는 핵전쟁의 근원을 이 땅에서 제거하고, 7천만 겨레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위협과 군사적 대결을 반드시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북핵 폐기’라는 문구는 간데 없고 북한이 주장해온 핵전쟁의 근원적 위협 제거라는 ‘조선(한)반도 비핵화’ 주장이 그대로 관철됐다.

김원기 국회의장 “국회회담, 김정일 답방 성사돼야”

▲ 서대문 형무소를 참관한 북측 대표단 <사진:연합>

이날 오후 서대문 형무소 참관을 마친 남북대표단은 대일(對日)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침략전쟁 미화 중단’과 ‘과거사 사죄’를 요구했다. 남북은 민족공조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일 비난 수위를 높여왔다. 이런 기류는 북한이 한일 협력관계 약화를 노린 전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6일 북한 대표단은 국회의장 초청 오찬을 겸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를 방문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초청 오찬 연설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방문과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했다. 북측 방문단장인 김기남 비서는 “통일사업에 국회가 커다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북남이 화합하는 데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성과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8.15 민족대축전은 16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폐막식과 여자축구대표팀 경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북측 당국 대표단 일부는 경주를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북측 대표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북측 대표단은 17일 청와대를 방문, 노 대통령을 예방하고 오찬을 함께한다. 북측 대표단은 현충원과 국회 방문에 이어 전 현직 대통령까지 접견함으로서 전방위적인 민족공조 효과를 극대화 했다.

▲ 오찬을 함께 나누는 김기남 북측대표단장과 김원기 국회의장 <사진:연합>

이번 8.15 민족대축전은 ‘남북해외 6.15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주최했다.

6.15 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는 남북 교류협력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지식인, 문화계 인사,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또 민주노총, 범민련, 한총련, 전국연합, 통일연대 등의 친북단체들이 공동 대표단과 실무진에 대거 망라돼있다. 특히 실질적 행사 진행을 책임지는 집행위원회와 사무처는 친북단체의 영향력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돼있다. 북측준비위원회는 범민련 북측본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

행사 주최 단체와 참가자 다수가 친북 성향이 강해 이번 행사는 광복절 60주년을 맞는 기념행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축전에 정부 대표단을 참가시키고 국가대표간 경기까지 주선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광복절 행사는 8.15 민족대축전으로 대체된 셈이다. 남북축구대회를 찾은 6만 관중은 ‘대한민국’ 대신 ‘조국통일’을 외쳤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간파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민족공조’ 흐름이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로 6만 관중의 감성을 장악했다. 이들은 일부 행사 참가자들이 ‘주한미군 철수’ 구호를 들고 있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8.15 민족대축전, 친북세력 확산

김기남 북측대표단 단장은 15일 공동행사 기념식에서 “우리민족끼리 이념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적극 실천하여 모든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관계 발전의 근본 동인을 ‘우리민족끼리’ 이념이라고 했다.

북한이 이번 행사에서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결국 ‘반미 민족공조’를 의미한다. 당장의 현안인 북한 핵문제도 ‘핵폐기’보다는 북측이 주장하는 ‘발생원인'(미국의 위협)을 제거하자는 북측의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을 그대로 추종해 호소문에 포함시켰다.

이번 축전은 친북세력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행사 참가자들 스스로 “이제는 민간단체 통일운동이 대세가 된 것이 확실해졌다”고 평가할 정도다.

한총련은 이번 통일대축전 참가지침을 통해 “우리민족끼리의 위력이 자주평화통일을 승리의 목전으로 앞당기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더욱 과감하고 더욱 통 큰 반미자주화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며 “8.15 민족대축전을 반미의 기치를 기세 좋고 재기발랄하게 들고 나가 민족공조의 위력을 더욱 높여나갈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남한정부의 방조 아래 북측 당국과 남한 내 친북세력이 벌인 ‘잔치판’에 수많은 지식인과 사회 인사들이 민족공조에 휩쓸려 스스로 ‘조연’을 자청했다. 이들이 정부와 함께 이른바 ‘통일운동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북한 핵과 인권문제,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됐다.

북측의 현충원 방문으로 인해 향후 남측 인사의 북한방문 때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강제하는 족쇄로 작용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결국 북측은 민족공조의 최대 걸림돌이자 대남전략의 장애로 작용해온 6.25 전쟁을 비롯한 과거사와 김일성에 대한 남한 대중의 거부감을 타넘기로 작정한 모양새다. 북측은 민족공조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놓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민족공조는 남북정권 공조 아닌, 남북주민 공조”

김정일 정권은 수년간 누적돼온 내외적 위기를 민족공조와 핵개발을 통해 타개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북한 핵폐기와 인권개선이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한 채 민족공조 전략을 통해 남한에 친북 분위기 확산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북한이 강조하는 반미공조는 개방과 개혁을 외면하고 인권유린과 핵 개발을 정당화하는 체제 방패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행사를 통해 더욱 명료해졌다. 민족대축전 기간 동안 우리 정부와 주최 단체는 시종일관 북한 눈치보기와 감싸기, 핵개발 정당성을 인정하는 공동 호소문 작성을 서슴지 않았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이번 8.15 공동행사에서 강조된 민족공조 개념이 과연 정권과의 공조인지 민족과의 공조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체주의를 능가하는 폭압정권과 공조하는 것이 과연 북한 주민과 전체 민족에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지 정부와 주최측은 답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홍진표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민족공조는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과 인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때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민족대축전 주최 단체들에 의해 주도되는 ‘민족공조’나 ‘우리민족끼리’ 이념 등은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외면한 사이비 개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홍 실장은 이어 “일부 친북세력에 의해 강조되는 반미와 북한 체제 수호를 위한 민족공조는 매우 잘못된 개념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때”라고 밝혔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