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쌀 조속 지원..”쌀-북핵 고리 끊자”

대북 쌀 차관에 대한 정부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그동안 쌀 차관 문제에 대해 ‘2.13 합의 이행상황에 따라 시기와 속도를 조절한다’고 밝혀 와 북핵문제와 사실상 연계시킨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1일 끝난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도 이 같은 기조아래 쌀 차관 제공을 보류한 남측 방침에 북측이 반발하면서 사실상 결렬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쌀 차관 문제를 북핵문제와 되도록 떼어 판단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이 같은 입장 변화는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1일 한 강연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연계시켜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면서 “식량은 조건을 걸어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에는 “지금 6자회담의 진전상황을 보면 그동안 해온 원칙에 맞춰 지원할 수 있는 적정한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외교부가 대체로 대북 쌀 지원이 북한의 2.13합의 이행 의지를 추동하는 지렛대로 사용되길 바라왔던 것으로 비춰온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입장은 보다 직접적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에 출석, 쌀 차관 지원시기에 대해 “대북 쌀차관 문제는 근본적으로 2.13 합의조치와 직접 연계된 것이 아니다”면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문제 해결 등으로 (지원 재개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가 높아져 가고 있으니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지원할 수 있도록 실무적 검토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 입장은 ‘2.13합의 이행 고려’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지금은 ‘직접 연계가 아니다’라는 쪽으로 논리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는 평가다.

정부가 북한의 2.13합의 이행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다음 주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의 방북 이전인 22일께 대북 쌀 차관 제공 방침을 발표하는 것도 ‘쌀 차관이 북핵문제와 연계돼 있지 않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보다 명확히 보여준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대북 쌀 지원과 6자회담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남북관계가 6자회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는 불능화 등 앞으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데 쌀 지원을 이와 계속 연계시켰다가는 남북관계도 계속 요동칠 수 밖에 없다는 고민에서다.

정부 소식통은 “향후 남북관계를 6자회담과 일정 정도 분리해 추진한다는 의지”라며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선순환적 병행 발전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아직까지 2.13합의 이행에 행동으로 나선게 전무한 것은 물론 ‘BDA 문제가 해결됐으니 2.13합의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등의 공식 입장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쌀 지원 입장을 발표하면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2.13합의 이행을 보고나서 쌀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뒤집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진동수 재정경제부 차관은 지난 4월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대북 쌀 차관에 합의한 뒤 가진 브리핑에서 “북측이 2.13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합의대로 시기 등을 그대로 진행하기가 어렵다”면서 “2.13합의 이행이 (쌀 지원을 위한) 키다”라고 말해 2.13합의 이행이 쌀 지원의 선행 조건임을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대북 쌀지원에 대한 정부의 미묘한 입장 변화와 맞물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의 초청에 따라 1박2일 일정으로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힐 차관보가 들고올 북한 ‘보따리’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