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 합의, 곳곳에 숨겨진 함정

13개월 만에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이 12개항의 긴 공동보도문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예상했던 대로, 밤 늦은 시간까지 공동보도문 도출을 놓고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던 여느 남북회담과 달리 예정된 시간에 거의 맞춰 남북 양측 대표단장이 나란히 공동보도문을 읽는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동보도문은 12개 조항으로 되어있고 세분하자면 더 많은 합의사항이 담겨있지만, 우리는 3가지 측면에 유의해서 이번 회담 결과를 바라본다. 첫째 핵문제, 둘째 을사조약 원천 무효확인, 셋째 향후 장관급 ∙ 장성급 회담을 백두산에서 하기로 한 것 등이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라는 북한 입장 거들어준 꼴

핵문제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하여 분위기가 마련되는 데 따라 핵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대화의 방법으로 평화적 해결’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고, 유의하면서 봐야 할 대목은 ‘한반도의 비핵화’, ‘분위기가 마련되는데 따라’라는 표현이다.

현재 조성된 핵문제는 ‘북한의 핵문제’이지 한반도의 핵문제가 아니다. 북한을 이것을 줄곧 ‘조선반도의 핵문제’라고 불러왔다. 즉 북한의 핵은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여 만든 자위수단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없애려면 양측이 다 같이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북한은 6자회담도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 자체에는 틀린 점이 없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짚어주지 않은 이러한 표현은 ‘조선반도의 핵문제’라는 북한의 입장을 거들어주는 꼴이 된다.

또한 ‘분위기가 마련되는데 따라’라는 전제조건은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북한의 뜻대로 가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을 가늠하는 주체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실 북한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을 두둔해준 꼴이다.

둘째로 유의해서 볼 합의사항은 을사조약 무효를 확인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특별한 실천적 의미도 없는 이 조항이 들어간 것은 남북의 민족공조를 반일(反日) 공조로 끌고가겠다는 의도다. 민족이 공조하자면 타깃이 되는 ‘적’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데 북한은 이것을 미국과 일본으로 설정하고 그 공조체계에 남한을 끌어들이고 있다. 결국 6자회담을 2+4의 구조로 가져가겠다는 의도이며, 이번 합의에서 이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중요한 것은 합의 아닌 실천, 잘못에는 회초리도 들어야

셋째로 향후 장관급 ∙ 장성급 회담을 백두산에서 하기로 한 것은 대표적인 이벤트성 합의이다. 이산가족 화상상봉도 의미 있는 합의이긴 하지만 이벤트를 좋아하는 현 남북 정부의 공통점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렇게 해서 TV에 화려하고 무언가 새로운 모습으로 남북관계가 비치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이벤트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이며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돼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요소가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숱한 남북간의 이벤트를 보아왔지만 북한이 딴 맘을 먹으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모습 또한 여러 차례 보아왔다. 이번 합의도 그런 ‘말잔치’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합의문구가 아니라 실천이다. 8월 중에 적십자회담을 열어 “전쟁 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확인 등 인도주의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것을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2002년에도 똑 같은 합의를 해놓고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국군포로나 납북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금강산 면회소도 예전에 합의됐지만 진전이 없었다.

우리는 “이번 합의의 유효기간은 또 언제까지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남한 정부는 ‘돌아온 탕자’를 받아주는 선한 아버지의 역할만을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성경 속의 탕자는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사죄했지만, 자꾸 합의사항을 뒤집고 마음대로 뛰쳐나갔다 마음대로 들어오는 북한은 오히려 당당하다. 때로는 미소가 아니라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서 ‘다시 한번 합의사항을 어기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