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민주주의 결정적 고비

▲ 이라크 헌법 초안 마련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의회<연합>

이라크의 민주정치 실현이 고비를 맞고 있다. 이라크 헌법초안위원회가 새 국가정체를 규정할 헌법초안을 비합의 상태로 제헌의회에 제출한 것이다.

헌법초안은 각 정파간 합의제출이 목표였다. 헌법초안 성안의 임무로 구성된 헌법초안위원회는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진력했다. 그러나 끝내 수니파(아랍족)와의 합의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향후 이라크 정국은 불안한 먹구름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라크의 정치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2003년 3월 20일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공격 개시로부터 되짚어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전투 개시 21일 만인 4월 9일 연합군의 바그다드 함락으로 독재자 후세인은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승전의 분위기 속에서 5월 1일,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주요 전투종결’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동시에 이라크는 전후 새 국가 건설 작업에 돌입하였으며 그를 위한 과도통치위원회가 7월 13일 구성되었다.

그리고 2004년 6월 1일 이라크 임시 정부가 발족하였으며 2005년 1월 30일에는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역사적 총선이 치루어졌다.(제헌의회 총 275석 중 시아파 146석, 쿠르드족 77석, 기독교 투르크멘 35석, 수니파 17석/ 내각 총 36자리 중 시아파 18자리, 쿠르드족 9자리, 수니파 7자리, 기독교 투르크멘 2자리)

헌법초안 합의돼야 12월 주권정부 출범 가능

제헌의회는 새 헌법을 마련하고 성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후세인 독재 통치가 종식된 새 이라크의 국가정체를 총체적으로 규정할 민주 헌법을 만드는 것이다. 헌법 제정이 완료되면 그에 기초해 다시 총선이 치뤄지고 명실상부한 의회가 구성되게 된다.

제헌의회는 곧바로 헌법초안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헌법초안위원회는 8월 15일까지 헌법초안을 내놓도록 되었다. 이 안이 의회의 승인을 거치면 이라크 국민들은 10월 15일 이전에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의 찬반을 결정한다. 새 헌법의 성립이 완료되면 12월 15일 이전에 총선을 치르며 12월 31일 이전에 새 대통령 총리 의회 내각을 갖춘 새로운 이라크 주권 정부를 출범한다.

그런데 수니파의 반발이 거세지면 이 일정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문제는 국민투표인데, 규정에 따르면 제헌 의회의 헌법초안은 국민투표에서 이라크 18개 주 중 3개 주에서 주민 3분의 2 이상의 반대로 부결될 경우 채택되지 못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수니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서부 4개 주에서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제헌의회의 헌법초안은 무산되는 것이다. 제헌의회도 자동 해산됨으로써 결국 그와 같은 상황은 정국에 극도의 혼란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헌법초안위원회는 원래 8월 15일까지로 되어 있는 시한을 일주일 연장하여 마감 시한 5분 전에 가까스로 성안의 마무리를 결정하고 헌법초안을 제헌의회로 넘겼다. 수니파와의 합의를 위해 시한까지 연장하며 막판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수니파를 설득하지 못한 채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을 의회로 넘기게 된 것이다. 수니파(헌법초안위원회 72명 중 15명)는 내전을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헌법위원회를 퇴장하고 말았다.

연방제안 두고 시아파-수니파 갈등

이라크 정국 안정에 있어 가장 주요한 관건은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대표되는 각 정파 간 이해관계를 원만히 조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헌법초안 성안에 있어 쟁점이 되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수니파는 연방제안에 강력 반발하였다.

그외 대통령 총리 선출 요건에 있어 의회 과반 찬성에서 3분의 2 찬성을 고집하였으며 ‘바트당 청산위원회’의 해산도 요구하였다. 120여개의 항목 중 세 정파에게 가장 논란이 되었던 주요 사항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은 ‘연방제안’과 ‘이슬람법안’에 대한 것이었다.

연방제안에 대해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적극 찬성하였으며 수니파는 단일정부안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슬람법안의 채택은 국가정체를 정교(政敎)일치의 율법국가화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슬람근본주의에 거리를 두는 쿠르드족과 수니파가 반대하였으며 이웃 나라 이란과 같은 종파인 시아파가 적극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시아파와 쿠르드족 간에는, 북부 키르쿠크 대유전 지역의 쿠르드 자치주 편입 문제를 2007년 까지 미루는 것으로 하며 이슬람법에 대해서는 모든 법안은 ‘샤리야’(이슬람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되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에 따르도록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그리하여 헌법초안은 공화주의, 의회주의, 민주주의, 연방주의 국가 정체를 표방하게 되었다.

수니파가 마지막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항은 연방제안이었는데 이는 석유 수입과 관련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이라크의 세 정파간 분포를 보면 2,600만명의 인구 중 시아파가 60%로 주로 바스라 등 남동부에 분포하며 수니파(아랍족)는 15~20%로 알 안바르, 니네베, 살라후딘 등 중북서부, 쿠르드족(수니파)은 15~20%로 아르빌, 술라이마니아, 도후크 등 북동부에 주로 분포해 있다. 이 중 쿠르드족, 시아파 거점 지역이 대유전 분포지역인 반면 수니파 거점 지역은 석유의 불모지인 것이다.

수니파, 석유 이익 균등한 분배 주장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시대에 이라크를 지배했던 수니파는 포스트 후세인 시대의 상대적 박탈감도 겹친 가운데 유전이라곤 없는 곳에서 고립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더더욱 처량한 신세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수니파는 단일 중앙정부 구성과 석유 수출 이익의 균등한 배분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이다. 현재 새 헌법안이 연방제안을 확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부 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이 점을 고려하여 수니파와의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우선 불안한 ‘공’을 넘겼으나 협상 여부에 따라 상황이 다시 숨을 돌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수니파는 1월 총선에서도 보이콧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수니파 분포 지역에서 10% 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을 보이는 등 그 결집력을 과시하였다. 그를 볼 때 수니파의 반대가 가속화되는 속에서 치루는 국민투표는 헌법초안을 얼마든지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원래 ‘18개 주 중 3개 주에서 3분의 2의 반대가 나오면 부결한다’는 조항은 쿠르드족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 삽입된 것이었다. 즉 후세인 치하에서 독가스 살해 등 모진 탄압을 받았으며 후세인 축출에 적극 협력한 쿠르드족에게 자신들 거점 3개 주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쿠르드족의 강력한 염원인 연방제안에 시아파가 전격 동의하고 수니파가 강력 반대하는 형국이 조성되면서 엉뚱하게 ‘제 목에 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라크 민주화 향한 중요한 시험대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라크가 갈갈이 찢겨져 영구 내전 지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억측이 제기되고 있다. 흠집 내기에 골몰하는 사람들은 이라크전이 중동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쏟아 놓기 바쁘다.

한편 미국에서는 반전시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파병 군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슬로건이 전면에 내세워져 있다. 자식을 전장에서 잃은 부모의 마음은 백분 헤아리지만 만일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미국과 국제 사회가 철수해 버린다면 이라크의 정쟁이 유혈 분쟁으로 격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것은 이라크 전쟁보다도 더 큰 참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미 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후세인을 남긴 채 돌아섰을 때 남부 바스라의 시아파 봉기가 무자비하게 진압되면서 수십만 명이 학살되었던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가공할 공포 독재 통치가 물러난 자리에서 게다가 민족 종교적 대립 갈등까지 내재한 채 민주주의의 소중한 싹을 틔워 내는 일이란 실로 어렵고도 고난에 찬 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이 험로에 찬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운운하거나 ‘미국은 즉각적으로 철수하고 이라크 스스로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거나 ‘이라크 재건을 위한 파병을 남의 일로 손쉽게 회피하려는’그 모든 일들이란 얼마나 한가한 해석이며 이기적 행태인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는 지금 국제 사회의 중재와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라크는 민주주의를 향한 피의 대가 위에 서 있다. 그 희생은 처절하였으며 그 분투는 반드시 승리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