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나는 한미 북핵 로드맵

“심도있는 공동이해를 나눴으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전술에 합의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24일 오후 6자회담 한국측 카운터 파트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비공식으로 만난 데 이어, 25일 오전 1시간 10분 가량 공식적인 면담을 가진 뒤 이렇게 말했다.

‘최선의 전술’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회담을 재개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북핵 해결이 목표이기 때문에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그런 조치들”이라고 설명했다.

양측 모두 더 이상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북핵 해결의 ‘로드맵’에 대해 한미 양국이 깊이있게 의견을 나누고 공감을 이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협의에서 한미가 공감을 이룬 북핵 ‘로드 맵’의 기조와 내용은 어떤 것일까. 그 내용은 크게 몇 가지 단계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중국을 통한 대북 설득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북한에게는 자칫 6자회담의 틀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은 채, 이달초 가동을 중단한 영변의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추가로 플루토늄 재처리에 들어간다거나, ‘핵실험’을 강행한다거나 할 경우 등을 지칭하는 것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날 ‘21c 동북아미래포럼’ 조찬강연에서 “만일 북한이 무모하게 핵실험까지 하는 조치를 취하면 북한 스스로 이제까지 고립돼왔던 상황을 심화시키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받지 못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한이 그런 단계에 들어설 경우 현재의 6자회담의 틀이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릴 공산이 클 뿐아니라, 우리 정부도 더 이상 도와줄 방법이 없는 만큼, 북한을 향해 다시 한번 분명하게 ‘경고음’을 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핵 상황을 대하는 우리 정부 당국의 인내력도 조금씩 소진되어 가는 양상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의 북핵 기조도 점차 ‘강성’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 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 北, 6자회담에 복귀한다면 = “중요한 것은 회담 재개가 아니고 재개시 실질적인 진전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 냐는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말이다.

일단은 어느 정도 6자회담 재개에 무게를 둔 발언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아시아ㆍ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의 회동에서 “6자회담은 처음 우리가 주도한 것”이라며 “환경이 성숙되면 6자회담에 응할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그 가능성은 감지된다.

회담에 응할 명분만 주어지면 복귀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상반기 방북설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후 주석의 방북이 성사되려면 적어도 6자회담 주재국인 중국의 체면이 서야 하고, 그럴려면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봉주 내각 총리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방중 이후 북한과 중국간에 6자회담 복귀 논의가 ‘강력하면서도 탄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지난 2월 10일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선언을 했고, 그 주장을 바탕으로 지난 달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폐기 협상은 미국과의 수교 후에 북-미 간에 논의할 수 있으며 그와 별도로 6자회담 장에서는 핵 동결을 논의하되 군축회담도 병행하자고 ‘엉뚱한’ 제안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속내’라는 점에서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한마디로 ‘수용하지 못할’ 카드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회담을 할 까닭이 없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북한이 그 주장을 고집한다면 회담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상황이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한다면 그 것은 양국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이 대목에 주목하고 이날 회담 재개시 실질적인 진전 방안 협의에 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이 문제의 주장을 철회하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정부가 대북 강성기조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北 끝내 회담 거부한다면 = 한미 양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조건과 명분을 대며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은 6자회담 재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임은 물론이다.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할 지 여부다.

특히 이미 가동을 중단한 영변 핵원자로에서 사용후 핵연료봉을 꺼내 플루토늄을 추출할 지가 당장의 관심사다.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의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 실험도 예상해 볼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핵실험 강행이나 핵물질의 제3국 이전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핵 문제는 점차 대화를 통한 해결은 물건너가는 상황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벌써부터 미국과 일본내 대북 강경세력을 중심으로 유엔 안보리 회부와, 그와 병행해서 각종 대북 제재 및 압박강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북한의 도발적 태도에 대해 안보리에 회부,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과 항공기를 공해상에서 검문.검색하는 방안과 함께, 중국에도 압력을 가해 북한 접경지역에서 무기나 마약 등의 단속을 철저히 해 북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의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가 있다고 해서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와 그에 이은 대북 제재로 곧바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판단이 서면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 때 ‘다른 방법’이라고 하면 무슨 제재나 압력으로 자동 연결시켜서는 안되며 외교적인 방법으로도 다른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2002년 10월 이른 바 제2차 북핵위기 이후 이미 일본과의 경제교류가 끊기다시피한 사정을 감안할 때 현재 진행 중인 중국과 한국의 대북 경제교류가 그 대상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를 끝내 거부하고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취할 경우 남북경협은 물론, 북중 경협도 급속하게 경색될 개연성이 크게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 시기를 북핵 문제의 향배를 가를 중대국면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가 “현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의 결실을 볼 수 있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조만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것이) 긍정적으로 나올 지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의 ‘스탠스’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미 행정부는 인내심이 소진돼가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평화적, 외교적 해결원칙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내부에서 강경대응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화’에서 ‘제재’로 급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미측의 강성기조에 일부 동참하면서까지 6자회담 재개에 마지막 외교적 노력을 다하고 있는 양상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