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참가자, 김정일 선물에 관심”

▲ 아리랑의 한 장면 (사진:연합)

DailyNK는 지난 6일자 기사 <前평양주민 10인 “아리랑을 고발한다”>를 통해 북한 집단체조 준비과정에 아동 청소년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평양시 주민 10인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히 보도하였다.

몇 개 일간지에서 이를 인용 보도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 김호준 상임위원은 지난 10일 인권위 전원회의에서 “화려한 공연의 이면에는 학생들의 피눈물나는 고통이 담겨있다”며 인권위 차원의 ‘아리랑 공연 관람 자제 촉구 성명’을 발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위원의 주장은 나머지 인권위원 모두의 반대로 안건으로도 채택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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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평양주민 10인 “아리랑을 고발한다”

일각에서는 DailyNK의 보도에 대해 “당시 인터뷰를 했던 탈북자들이 1970~80년대에 집단체조를 경험했던 사람들로서 이를 현재 공연중인 아리랑으로까지 일반화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의 인권실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1인 전체주의 수령독재에 변함이 없고, 도리어 ‘선군정치’ 규율이 더 강화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DailyNK는 2002년 아리랑 공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를 접촉하려 했으나 집단체조의 주요 동원대상이 평양거주 아동 및 청소년이어서, 이들이 국내에 입국한 사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따라서 가급적 최근에 입국한 평양 출신 탈북자로 취재대상을 좁혀, 북한의 ‘아리랑’에 대해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평양주민 10인의 1차 증언과 중복되지 않기 위해 주된 질문을 ▲집단체조 참가학생들은 어떠한 대가를 받는지 ▲남한 일부 국민들의 ‘아리랑 관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국한했다.

어떻게 취재했나

2003년 1월~ 2005년 2월 사이 국내에 입국한 평양출신 탈북자 27명의 전화번호를 북한관련 정부기관 및 단체에서 입수,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이들 가운데 12명이 전화를 받았으며, 나머지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12명 가운데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9명이었다. 3명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종적으로 인터뷰에 응한 9명 가운데 2명은 DailyNK의 지난 집단체조 관련 기사를 통해 이미 사실을 증언하였던 탈북자였다. 따라서 나머지 7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으나 2명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극도로 우려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기사를 쓰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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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50세, 평양시 중구역 거주, 2003년 탈북, 2004년 입국)

▲ 북한의 대집단체조 ‘아리랑’의 한 장면. (사진:연합)

“2002년 아리랑 공연 대가는 가구당 컬러TV 1대”

나는 북한에서 ‘아리랑’ 공연을 여러 차례 봤다. 내가 속했던 부서가 북한 고위간부 및 외국인 손님들을 아리랑 공연장까지 수행하는 일을 했다.

아리랑 공연은 5~6개월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학생들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하루에 3~4시간 정도를 기본으로 연습했다. 연습시간은 편차가 심했다. 밤 12시까지 하는 날도 있었다. 공연을 1~2개월 정도 앞두고는 자정까지 연습을 하는 날이 훨씬 많았다.

식사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데, 점심과 저녁을 다 준비해왔다. 부모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국을 준비해왔다.

배경대 아이들이 힘들다지만 내가 볼 땐 체조대가 더 힘들다. 그래도 그걸 하고 나면 아이들의 체격이 좋아진다. 북한이 집단체조를 하는 이유에는 이런 체력단련의 부수적 효과도 있다.

아리랑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평양 외곽 멀리 있는 구역의 아이들까지 다 동원됐다. 아이들을 경기장까지 수송하는 일은 군인들이 했다. 군용트럭이 학교로 가서 경기장까지 싣고 가고, 연습이 끝나면 다시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 학생들을 수송하는 군용트럭은 ‘특수보장’이 된다. 선두에 경찰차량이 앞장서고 모든 검문소를 검문 없이 바로 통과한다.

거기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진짜로 고생한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더운데 땀을 뻘뻘 흘리고, 추운데 공연복장으로 연습하고…….

이 세상에 그런 공연은 둘도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 북한만이 할 수 있는 공연이다.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걸 잊을 정도로 입이 딱 벌어지고 눈물이 나온다. 특히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감정을 북돋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런 공연을 한번도 못본 남한 사람들은 아리랑 공연을 보고 감동받을 만도 할 것이다.

2000년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공연을 마치고 참가자 전원에게 담요, 통조림, 남방 과일 등이 선물로 지급됐다. 2002년 ‘아리랑’ 공연 참가자들에게는 컬러TV가 지급됐다. 한 집안에서 여러 학생이 참가한 경우, 가구당 1대씩만 지급되었다.

많은 청소년들이 강제로 동원된 그런 가슴 아픈 공연을 남한 사람들이 굳이 비싼 돈 내고 구경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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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무 (51세, 평양시 중구역 거주, 2002년 탈북, 2003년 입국)


“참가자들에 대한 선물 때문에 지원경쟁 심해”

▲ 집단체조 연습을 하는 북한 어린이들 (사진:연합뉴스)

 

우리 아이들은 집단체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조카들이 모두 참가대상자들이어서 어린이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또한 물자공급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어떤 선물이나 대우를 받는지 잘 알고 있다.

집단체조를 보는 사람은 즐거울지 몰라도 고생하는 아이들은 정말 죽을 맛이다. 남한에서 그런 행사를 보러 가는 사람이 많다니,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내 자식이 그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즐겁게 웃으며 보고 있겠는가.

2000년 공연인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준비에 앞서 “이번 행사 참가자들에게는 컬러TV를 선물로 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서로 집단체조에 참가하겠다고 싸움까지 날 지경이었다. 참가 못한 사람은 울며불며 야단이 아니었다. 그런데 컬러TV를 선물로 주지 않고 과일 통조림 2~3개, 당과류, 모포를 선물로 줬다. 주민들의 실망이 컸다.

당(黨)에서는 “1인당 100달러 상당의 선물을 줬다”고 선전했지만 내가 공급분야에 있어서 아는데 장마당 가격으로도 8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물건들이었다. 실제 한국에서 그런 물건을 구입하면 20달러 정도면 될 것이다. 6개월 동안 죽어라 고생한 대가가 고작 그것이다.

2002년 ‘아리랑’을 마치면 반드시 컬러TV를 선물로 준다는 소문이 있어서 또 한번 경쟁이 치열했다. 나는 ‘아리랑’이 시작되기 전인 2002년 4월에 북한을 탈출해서 정말로 컬러TV를 줬는지는 알지 못한다. 약 14인치 크기의 중국산 흑백TV를 가구당 1대씩 줬다는 소식을 중국에서 피신할 때 평양출신의 다른 탈북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2000년 공연을 마치고 북한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있었다. 한 집에서 3-4명이 행사에 참가하는 경우 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갑론을박 하다가 “장군님(김정일)의 방침을 들어야 한다”면서 김정일의 지시를 기다렸다. 김정일은 “모두에게 다 줘라”고 지시를 내렸다. 2000년 선물은 식료품과 공업품이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다 주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2002년에도 모든 사람들이 컬러TV를 다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경쟁이 치열했다.

남한에서는 그런 선물이 별 것 아니지만 북한에서는 대단한 가치를 가진다. 노동자들이 1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도 TV 한 대를 못 산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고생하는 줄 알지만 집단체조에 등을 떠밀고, 자녀들은 그것을 효도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문다.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다.

남한 사람들이 아리랑을 보러 가는 것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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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39세, 평양시 중구역 거주, 2002년 탈북, 2003년 입국)


“컬러TV 선물하자 6.25 참전자들 불만”

나는 공연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단체조에 직접 참가한 적은 없다. 관람은 많이 했다.

집단체조는 5~6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남한에는 이번에 ‘아리랑’을 통해 알려졌지만 예전부터 그런 공연을 일년에도 몇 번씩 했다. 2.16(김정일 생일), 4.15(김일성 생일), 4.25(창군일), 9.9(공화국 창건일), 10.10(당 창건일)…….

아이들의 고생은 많지만 체력단련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 선물도 받는다. 그래서 참가하는 것이다. 2000년 공연을 마치고는 통조림, 당과류, 콩기름 등이 지급되었다.

▲ TV를 시청하는 북한 가정.(북한의 선전사진)

언젠가 한번 공연 참가자들에게 컬러TV를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6.25 전쟁 참가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우리는 목숨걸고 싸워도 기껏 흑백TV를 받았는데 기껏 몇 달 고생하고 컬러TV를 받는다”고 말이다. 물론 대놓고 불만을 터트린 게 아니라 자기들까지 그렇게 쑥덕거렸다는 말이다.

북한의 집단체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공연 자체로만 보면 감탄스럽다. 실제로 보는 것과 TV로 보는 것이 다르다. 다른 나라에서는 하기 힘든 공연이다.

집단체조를 연습하면서 아이들을 구타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일부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교사가 학생을 때리면 신소(伸訴)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하지는 못한다. 기본적으로는 교양설복하고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으로 잘못을 바로 잡는다.

내 개인 의견으로는 아리랑을 보러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리랑’은 노골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공연이 아니고, 또 보아야 서로를 알 수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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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38세, 평양시 은정구역 거주, 1998년 탈북, 2003년 입국)

▲ 집단체조는 카드섹션을 맡은 ‘배경대’와 체조 안무를 맡은 ‘체조대’로 크게 나뉜다.

“南 주민 아리랑 관광 가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

나는 평양 외곽구역에 거주했기 때문에 집단체조에 동원된 적은 없다. 하지만 친척들이 평양 중심지역의 집단체조 동원대상 학교에 많이 다녔기 때문에 사정은 잘 알고 있다.

연습은 6개월 전부터 한다. 억수로 힘들어 한다. 바지에 오줌을 싸는 경우가 허다하고, 체조대 아이들은 다리가 아파서 집에 돌아오면 잠도 제대로 못 잔다. 남한처럼 자기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없다.

처음 몇 개월은 공부를 마치고 연습하지만 본행사 시작 한달 전부터는 하루 종일 연습만 한다.

남한 사람들이 아리랑 공연 보러 가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제 돈 내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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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33세, 평양시 대동강구역 거주, 2001년 탈북, 2003년 입국)


“행사에 빠지면 약한 사람 취급받아”

80년대에 집단체조에 참여했다. 평양 청소년들은 집단체조 참가를 영광으로 여긴다. 또 당에서 그렇게 강조한다. 나도 큰 영광으로 여겼다.

물론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 그런데 행사를 마치고 나면 체격적으로 멋있어진다. 꼭 체조선수 모양으로 몸매가 된다. 배경대가 아니라 체조대에 참가하면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더 참여하려고 한다. 거기에 빠지면 약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물은 당과류 이외에는 받아본 기억이 없다. 실내공연에 참가하면 괜찮은 선물과 상훈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이런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