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그림자 1부] ‘선거’ 전 ‘최고존엄’을 모독한 자는 누구인가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선거 전 낙서 사건에 얽힌 비화

북한에서 살아온 50여 년 세월에 실로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감돈다. 그 많은 이야기를 다 담고 싶지만 부족한 에너지로 조금씩밖에 담을 수 없다. 한동안 뜸해진 사건일지를 다시 펼쳤다.

요즘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3·10)를 앞두고 전국이 끓어 번지고 있다. 주민들은 정부의 성명이 발표된 순간부터 숨죽은 듯이 말을 삼가고 있다. 정치적 세뇌에 멍들어 있는 그들은 둔중한 기계의 움직임처럼 멍한 감각에 빠져있다. 이 기회에 정부는 날파람 있게(날쌔게) 뛰고 있다.

순종이 가장 힘 있게 먹혀들어 가는 순간이다. 선거라는 정치적 간판을 내걸고 주민들은 언어도 행위도 모든 것이 단절되어 있는 시기이다. 그들은 건설자금을 내라고 해도 그만, 선거장 꾸리기에 돈을 바치라고 해도 그만, 그저 꿀 먹은 병아리처럼 까딱거리며 순종한다.

김정은 정권 2주기를 맞으며 탈북해 온 나는 현재 북한의 분위기가 비디오를 보듯이 삼삼히 떠오른다.

최근에도 북한 정부가 성과적인 선거를 치른다는 명목하에 보위부를 통한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방 날아들었다. 이럴 때 제일 먼저 선거 전야에 있었던 일 때문에 반동으로 몰려 이슬처럼 사라진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그때마다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은 슬픔의 표적이 되어 떠오르곤 한다.

소리 없는 그림자

어둠 그림자 어두운1998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살던 청진 시내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난의 행군을 겪는 북한 주민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시내의 곳곳들에 꽃제비 떼가 행렬을 짓고 돌아다니고 이미 죽어 널브러진 시신들에는 파리 떼가 앵앵거리며 날아다녔다. 그런 속에서도 정치적 행사들은 고스란히 진행되었다.

그해 봄, 정부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된다는 선거 공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령으로 발표했다.

당시 식량난으로 죽음의 코너에 몰린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반항이 최고조를 이루었다. 주민들은 김일성 시대보다 김정일 시대가 더 나라를 망쳐놓았다느니, 인민들이 죽어 가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느니, 도대체 무엇을 하는 정부이냐면서 끼리끼리 모여앉아 투덜거렸다.

특히 나라의 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차지하고 살아가던 간부들은 나라 창고가 텅 비자 제일 위기를 맞았고 그들의 불만은 일반 주민들보다 더 심했다. 은행 지배인을 하면서 한때 부자처럼 잘살았던 60대의 여인이 ‘이 거지 같은 나라를 어쩌면 좋으냐’면서 대책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있는 정부에 대해 울부짖으며 비난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거기에다가 1995년 6군단 반란 사건이 비운을 맞으며 굉장하게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 정세 속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나라의 경제가 엉망이 되어가는 속에서도 정부가 주는 배급으로 밥을 씹고 사는 유일한 사람들은 보위원, 보안원들이었다. 정부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부의 배급보다 보위부, 보안원들의 배급을 더 중시했으며 그들에게만은 배급과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했다.

당시 세상은 그들만 용기를 내고 사는 세월이었다. 당 간부들도 일반백성과 같은 알짜 거지였다. 간부의 꿈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먹을알이 없는 당 일군(일꾼)이 무슨 소용 있는가? 보위원, 보안원 같은 정복쟁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복쟁이를 꿈꾸는 시기가 도래했다. 간부들은 자식들을 정복쟁이로 만들기 위해서 뛰어 다녔다. 대대로 당 일군을 해오던 집안들에서 뇌물을 고여서라도 정복쟁이로 갈아타려고 노력했다. 시집가는 처녀들도 배급을 타고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 있는 보안원, 보위원을 선호했다. 한때는 사람을 감시하고 마구 다루는 일이 싫다고 머리를 흔들던 사람들이었다.

정복쟁이들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배급을 말끔히 타먹기 위해 다른 자식들과 살고 있는 부모들까지 자기들의 호적에 옮겨붙여놓고 배급을 더 타 먹는 오그랑수(겉과 속이 다른 말이나 행동으로 나쁜 일을 꾸미거나 남을 속여 넘기려는 수법)까지 썼다. 그러니 정부를 위해 용기를 낼 사람들은 보위부, 보안원들 뿐이었다.

선거를 치른다는 공지가 떨어지자 그들은 정치의 일선에 나서 맹렬히 돌아갔다. 그들은 매일같이 동네의 선거장들과 주민들 속으로 내려왔다. 선거와 관련해 정부가 내려 보낸 주민정치자료를 읽어주거나 간첩들의 준동에 슬기롭게 대처할 데 대해 여러 가지로 암시를 주곤 했다. 밤에도 선거장들을 떠나지 않고 훈시를 하며 열성을 보였다, 선거장은 매일 엄엄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열이 도적 하나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선거구들에서는 반동들의 준동이 자주 나타났다. 그해 선거기간에 들은 웃지 못 할 얘기들 중 선거장의 간판을 다른 글자로 바꿔놓아 주민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보위원, 보안원을 비롯한 선거위원회 일군들은 밤새껏 환하게 불을 켜놓고 선거장 앞을 지켜 섰지만 아침에 보니 선거장으로 들어가는 현관 앞에 달아놓았던 간판의 글자가 달라졌다. 나무로 글자를 따서 붙인 ‘선거장’이라고 쓰인 간판에서 받침이 떨어져 나가 ‘서거장’으로 되어버린 것이었다.

서거장이란 말은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집이라는 말과 같았다. ‘선’자에서 떨어져 나간 ‘ㄴ’ 받침은 바람에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니고 아예 사라져버렸다. 누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철저한 감시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움직인 대단한 사건이었다.

밤새껏 선거장을 들락거리며 밤을 새웠던 모든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그날 선거장 근무를 섰던 사람들은 모두 보위부에 끌려가 밤새 경비를 어떻게 섰기에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문초를 당했고, 그 밤을 담당했던 정복쟁이들은 하나같이 정복을 벗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보위부는 소문이 날까봐 조용히 새 간판을 만들어 달아 붙였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일체 비밀에 붙였다. 그들은 말이 퍼지지 않게 조용히 뒤에서 수습을 했다. 반동들의 준동이 심했지만 절대 노출시키지 않았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듯 행동했다. 그에 따른 다른 행위들이 꼬리를 물까봐 꾹 누르고 있었다. 정치적인 사건들을 노출시키면 그것이 불씨가 되어 주민들 속에서 반항의 불씨가 점점 더 타오를까 겁이나 했다.

오히려 그것을 먼저 발견한 주민들 속에서 여론화 되어 소문이 퍼져갔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결국 ‘선거장’을 ‘서거장’으로 고쳐놓은 사건은 끝내 용의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더 큰 사고가 발생했다.

선거를 앞둔 며칠 전이었다. 갑자기 시내가 발칵 뒤집혔다. 시내 변두리의 변소들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낙서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낙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여져 누구도 모른다. 보위원들은 “1호 사고”라고만 했다.

‘1호 사고’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는 뜻이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을 최고 존엄이라고 불렀다. 김일성, 김정일을 모독했다는 말이었다. 굉장히 폭발적인 사고였다. 이 엄중한 사건은 감출 수가 없었다. 보위부가 이런 중대사를 중앙에 보고하지 않고 자기들 사이에서 안고 몰래 처리했다면 큰 코 다칠 일이었다.

이것은 중앙당에까지 직보고되었다. 국가보위부와 중앙검찰소의 유능한 검사들이 내려오고 무조건 잡아내라고 야단을 때렸다. 이를 잡아내지 못하면 주민들을 잘 통제하지 못한 죄로 사고가 일어난 관할지구의 보위부장과 연대적 책임으로 도 보위부장까지 모가지가 달아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건해명이 못 되면 정복을 벗고 노동자로 강직되는 보위일군들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처럼 해석되었다. 시내는 검은 구름에 쌓인 듯이 불안감에 젖어들었다.

돋보기 필적 감시당장 필적 감정에 들어갔다. 광범한 범위 안에서 진행되었다. 낙서가 나온 시내를 중심으로 타 곳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시내주변의 군들까지 동원하고 다른 곳에서 왔다 간 사람들까지 불러내서 필적감정에 들어갔다. 소학생, 중학생, 인민반, 공장, 기업소들 할 것 없이 보위원들과 보안원들이 들이닥쳤다.

우리 공장에도 담당보위원이 나타났다. 노동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불러들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먹지 못해 운신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끌어내 필적검사를 했다. 종이 한 장씩 가지고 선전실로 모여든 사람들은 보위원이 불러주는 글을 받아 적었다. 작은 스토리를 엮은 이야기를 불러주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 낙서 글자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에도 담당 보위원은 공장의 뒤 구석에 있는 자기 방에서 사업대상들, 즉 정보제공자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 보였다. 노동자들은 모두 술렁거리며 불안해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는 정보원들에 대해 못마땅해 하며 뒷담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1호 사건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보통 담이 큰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위대한 영웅처럼 생각되었다. 누가 이 나라의 현실을 바로 보고 목숨을 걸고 나섰을까. 사람들은 일을 벌인 사람에 대해 ‘소리 없는 그림자’라는 적절한 말로 표현했다.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1호 사건은 해명되지 못했고 보위부 내부에서만 떠들 뿐 일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고 있었다.

(2부에 계속)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본지는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 보다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 및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