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2005년, 북한은 94년?

▲ 북한의 주체연호

북한은 지금 94년도.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일까?

아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태어난 기준을 원년으로 한(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서기(西紀) 원년으로 하는 것처럼) ‘주체연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

주체연호는 김일성 주석이 출생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산정하는 북한식 연도표기법으로 서기 연도에서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빼고 +1을 하면 된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2005년 현재가 ‘주체 94년’인 것이다.

주체연호 사용은 1997년 7월 9일 김일성 사망 3주기 행사시 당중앙위, 중앙군사위, 국방위, 중앙인민위, 정무원 등이 ‘주체연호 제정’을 발표, 9월 9일(정권 수립일)부터 주체연호 사용을 시행키로 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서기 연도를 써온 북한 주민들은 당시 갑작스럽게 ‘주체연호’를 사용하게 돼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수령 우상화’의 일환으로 시작된 주체연호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주체연호가 새로 작성·공포되는 문서를 비롯해 출판, 보도 등 연도를 표기하는 모든 대상에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 연도 다음에 서기 연도를 괄호 안에 넣어 병기하도록 했다.

북한에서 주체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대내적으로는 김일성 영생화 효과를 거두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성’을 선전하려는 목적이다.

주체연호가 공식적으로 사용될 당시 중앙방송은 “전국 각지에서 수령님의 한생과 더불어 밝아온 우리 주체시대의 요구에 따라 첫 주체의 연호를 새기는 역사적인 화폭들이 펼쳐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1997년부터 등장한 주체연호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80년대 말 이미 구상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86년 4월 부인과 함께 입북, 정착한 최덕신 전(前) 외무장관이 김일성에게 “자주력” 또는 “주체력” 사용을 권유한 적이 있었던 것. 최 씨는 김 주석을 찬양한 자신의 저서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1988)에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최 씨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김일성 사망 후 ‘주체’ 연호라는 이름으로 재생된 것이다.

이렇게 ‘수령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실행된 주체연호에 익숙해진 북한사람들은 이제 서기연도를 알고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주체연호와 서기 연도를 헷갈려 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주체 연도에서 김일성이 출생한 1912년을 더하고 ―1을 하면 하는 ‘새로운’ 계산법을 마련했다고 한다.

탈북자들과 대화할 때 탈북자들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세기 시작한다면, 이는 주체연호에서 서기연도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므로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된다.

김송아 대학생 인턴기자 ksa@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