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납북자-장기수 맞고소 사태

▲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회장과 납북어부 이재근씨가 인권위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북송된 장기수들이 한나라당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하자 한국인 납북자 4명이 북한을 상대로 맞고소장을 냈다.

<납북자가족모임>최성용 회장과 이재근씨는 9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를 피고소인으로 명시하고 납치와 인권유린에 따른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납치 당사자들과 남아있는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일가족의 아픔을 떠나 가족구성원 모두에 대한 살인행위”라면서 “김정일 정권에 무한책임이 있기 때문에 1인당 1억달러씩 총 4억불을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고소장은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한 정부로부터 피해를 입은 고문 등에 대한 보상으로 10억 달러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는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파렴치한 행동으로, 그들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먼저 민족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납북어부 출신 이재근씨는 “북한의 고소장을 판문점에서 접수한 정부의 태도는 돈을 줄 수 있나, 없나를 토론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부의 태도를 성토했다.

한편, 고소장을 접수한 인권위 관계자는 “북한이 보낸 고소장을 통일부로부터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면서 “피고인으로 기재한 북한 노동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고소장이 기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귀환 납북자 이재근씨 인터뷰

-북한이 납북자에 대해서는 존재자체를 부정하면서 북송 장기수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나왔는데

북한 내 한국인 납북자들이 484명이 있는데도 납북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납북되었다가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과 주장도 모두 거짓말이라 한다. 북한의 거짓된 모습에 차마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납북된 이후 어떤 처우를 받았나?

당시에 젊었기 때문에 3년간 중앙당 정치학교에서 간첩훈련을 받았다. 3년간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교육받았다. 그러다 사상적인 의심을 받고 일반사회에 나오게 되었다. 납치 당시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말도록 교육받았고 선박전동기 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생명을 보존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제노역을 견딜 수 있었다. 대한민국으로 귀환한 다른 납북자(진정팔, 김병도, 고명섭)도 나와 마찬가지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한국정부의 납북자 정책은 적절한가?

지금 우리나라는 정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같은 경우는 몇 명 되지 않는 납북자를 위해 전세기까지 동원하고 북한정부를 압박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목숨걸고 탈북해도 묵묵부답이었다. 탈북 후 영사관 직원에게 한국행을 부탁했지만 ‘당신이 세금 낸 적 있느냐’는 말만 되돌아왔다.

한국 입국은 허락하지만, 알아서 한국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납북되지 않았으면 나도 당당하게 세금내며 살았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영사관 직원을 상대로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 고소했지만 기각되었다. 30년간 북한에 납치되어 고생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했는데 정부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앞으로 나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장기수 손해배상 소송장을 정부가 판문점에서 접수했는데.

북한에 484명의 사람들이 납치돼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단 한 사람도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 북한 당국에 입도 뻥긋 못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국가기관들을 친북세력이 차지하고, 정부 역시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정책을 견지했었는데, 지금은 납북자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

-귀환 납북자에 대한 정부의 처우는 어떤가.

실질적인 도움이 거의 없다. 지금 나이 70이 다 되었는데 일을 할 수도 없고 생계보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장기수들은 앉아서 살았지만 우리는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가족들과의 생이별로 물질적, 정신적 피해도 심각하게 받았다. 북한에서는 장기수들이 영웅대접을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찾아온 사람들도 이렇게 외면하고 있다.

북한과 비교된다. 우리가 반동질(반국가행위)를 하다가 간 것도 아니지 않는가. 어업을 하다가 한국정부가 경비를 잘 못 서서 납치되었는데, 책임지는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정재성 기자 jjs@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