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회담재개 조건 유연성 보이나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고위 관계자가 20일(현지시간) 미국이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용어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이를 철회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이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6자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안 하면 된다며 “미국이 앞으로 한 달만이라도 ‘폭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의지가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이번 발언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 분위기 및 조건과 관련, 한결 누그러진 유연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끈다.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미국이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며 그런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돼야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동안 북한이 요구해 온 회담 재개의 조건과 명분으로는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사죄 및 취소 △제도전복을 노린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평화공존 의지 천명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대한 사죄와 철회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상징성으로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문제이다.

북한 외무성은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오명을 쓰고는 미국과 어떠한 형식의 회 담이나 상종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으며, 지난 2일에도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진정으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향이라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철회하며 회담재개에 필요한 명분과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 고위 관계자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호칭한 사례를 들며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으면 이를 철회의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태도변화로 받아들여진다.

북-미 간에 자존심을 건 명분 싸움을 접고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진의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 고위 관계자도 뉴욕 접촉에서 미국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이후에도 고위 간부들이 북한을 자극한다며 “어느 게 미국의 입장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 놨다.

이번에도 미측으로부터 자극적 발언이 뒤따랐다.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부 차관은 북한 고위 관계자 발언과 거의 때를 같이해 허드슨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확장 정책 대상이 되는 나라의 정권을 3부류로 분류하고 북한, 미얀마, 짐바브웨, 쿠바 등 네 정권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거듭 예시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