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 장난’, 종착지로 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 사실을 완전히 시인했다. 지난 11~14일 북한을 방문한 미국 하원 대표단에게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이 “우리는 이미 핵 보유국(nuclear statement)”이라고 천명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있지도 않은 북한의 핵을 빌미로 압박정책을 펴고 있다”는 일부 친북세력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 김계관은 북한의 핵을 ‘방어용’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이것을 영구적으로 보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세상에 ‘방어용 핵’이라는 것도 있나? 핵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아닐 텐데, 더구나 적이 한방을 쏘면 나도 한번 응사해보는 무기도 아닐진대 도대체 ‘방어용 핵’이라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북한 정권의 어리석은 현실판단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핵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보유추정) 등이다. 남아공 등이 한때 핵을 보유하려 했으나 포기하였고,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핵을 물려받게 된 몇 개 나라들 역시 자진 폐기하였다. 핵 보유만으로 일정한 국제적 위상을 확보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상적인 국가’에나 해당하는 일이다. 북한과 같이 테러국가로 지목되었거나 국제사회의 불신임이 극에 달한 나라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라도 인정한 사례는 없다. 김정일은 북한을 그 첫 사례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좌절될 것이며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최후를 맞을 것이다.

시간과 정세, 더이상 김정일편 아니다

애초에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제네바합의 이후에도 비밀리에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해 왔으며 우라늄 농축이라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식의 핵 개발까지 시도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 등 북한 고위층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꾸준히 핵개발을 추진하다 여차하면 개발 및 보유 사실을 시인하고 이것을 협상의 카드로 활용한다는 전략을 오래 전부터 세워놓았다고 한다. 핵도 개발하고 이를 위협수단으로 삼아 금전적 갈취도 하겠다는, ‘꿩 먹고 알 먹는’ 전략이다.

지금 북한은 그 마지막 단계에 서있다. 핵 보유 사실을 완전히 시인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는 척 없는 척 “핵 억지력을 확보했다”느니 “핵보다 더한 무기도 가질 수 있다”느니 하는 연막을 뿌렸지만 이제 분명히 ‘보유국’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김정일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혼비백산하여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달려올 줄 알았을 것이다. 1993~94년의 ‘달콤한 추억’을 재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주위는 고요하며 반응은 시큰둥하다.

무엇보다 적수를 잘못 만났다. 미국은 그날의 미국이 아니며 국제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일을 ‘폭군’이라고 하고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 정확히 표현한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콤비가 되어, 오늘 2기 행정부의 닻을 올렸다. 김정일에게는 악몽과 같은 일일 것이다. 특히 현재 북한의 핵 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과거 미국만을 상대로 재미를 보았지만 이제는 강대국들의 주요한 관심 속에 북핵문제가 논의되고 있고 있으며 여기서 합의점이 찾아지지 못하면 유엔(UN)으로 논의테이블이 옮겨갈 전망이다. 유엔으로 가면 북핵문제는 국제적 문제가 되며, 그때 김정일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물론 그 동안에도 김정일은 계속하여 “우리 핵이 무섭지 않냐”며 위협을 가하겠지만 거기에 겁을 낼 상대는 지구상에 없다. 우방인 중국도, 협박전술에 끌려왔던 남한도 더 이상 북한을 옹호해줄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제 애간장이 탄 쪽은 김정일이며 그럴수록 고립만을 자초할 것이다. 오늘 이후 친북세력이 일순간 말을 바꿔 북한의 ‘방어용 핵’ 논리를 옹호하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앞세우리라는 것은 손금 보듯 뻔하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김정일 정권의 유지를 바란다면, 정세를 오판한 채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김정일에게 핵 포기를 직언(直言)하는 것이 오히려 바르고 현명한 길일 것이다. 시간과 정세는 더 이상 김정일 편이 아니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