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본게임이 시작됐다

▲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6자회담.

북한은 9일 오후 조선중앙텔레비전 등 방송∙통신 매체를 통해 일제히 7월 마지막 주에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북-미간 회담 재개 합의는 양국 6자회담 수석 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간의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은 5월말 뉴욕접촉을 갖은 이후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날짜 택일(擇日)을 거듭 요구해왔다. 북한이 두 달 만에 화답한 형태다.

북한의 회담 복귀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상태였다. 지난 5월 북한은 북-미 뉴욕접촉을 통해 ‘주권국가 인정’과 부시 대통령의 ‘미스터 김정일’ 발언을 높게 평가했다. 회담 재개 신호를 보낸 셈이었다. 미국은 뉴욕접촉을 통해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직접 전달했다.

남북간 6∙17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7월 복귀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회담 재개는 급물살을 탔다. 한성렬 북한 유엔주재 차석 대사는 ‘한달 동안 폭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해 다급한 복귀 몸짓을 드러냈다.

北 회담 복귀, 시간끌기 불리 판단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회담 복귀에 전격 합의했다. 북한이 회담 복귀 명분으로 내세운 미국의 주권국가 인정, 침공 의사 없음, 6자회담 내 쌍무협상 보장은 미국이 내세운 기존 입장과 별 달라진 것이 없는 내용이다.

북한은 2.10 핵 보유 성명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주권 국가 인정’과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반응을 받아냈다. 핵 보유라는 초강수를 띄우면서도 미국의 큰 양보없이 회담 복귀에 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남북간 협력 강화와 중국과 러시아의 대미 견제 움직임도 복귀 시점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을 비롯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핵 보유 성명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회담 재개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방면으로 기울여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 외교적 협력을 강화하고 남한의 대북지원을 얻어냈다. 핵 보유 선언을 통한 ‘몸값 부풀리기’와 ‘경제 지원’은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으로부터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지난 6월 왕광야(王光亞)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6자 회담이) 향후 수주일 내에 베이징에서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후 중국은 회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면서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번 합의도 베이징 회담을 통해 이뤄졌다. 북-중 간의 6자회담 재개에 대해 모종의 합의가 사전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7월 18일부터 본격적인 의제 조율 나설 듯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9일부터 한∙중∙일 방문을 시작했다. 탕자쉬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오는 12일 방북을 예정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 예정일로 보이는 25일 보다 한 주 앞선 18일경부터 의제 논의가 본격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발 빠른 조정 노력이 예상된다.

북한이 회담 복귀 의사를 공식 천명한 가운데 4차 6자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인지도 관심이다. 현재로서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핵보유국’ 대우를 재차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2차 뉴욕접촉에서도 북한측은 군축회담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핵 보유국 인정 요구를 분명히 밝혔다.

북한의 새로운 의제 제시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이 3차 6자회담에서 제안한 포괄적 협상안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룰지도 관심이다. 세 차례에 걸친 6자회담과 북한의 핵 보유 성명으로 회담 참가국의 입장이 분명히 제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핵 협상은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북, 핵포기 의사 없는 상태에서 6자회담 낙관은 금물

김계관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면담에서 양국은 ‘구체적인 체제 보장’과 ‘핵 보유국 대우’ 문제를 6자회담에서 논의하는 것에 합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담이 재개되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입장을 계속 고집할 경우 4차 6자회담은 기대와 다르게 조기에 끝날 가능성도 있다.

6자회담이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 위한 테이블이기 때문에 회담 재개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비핵화에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한이 핵 포기를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