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 집권 10년 성적표는 A학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삼지연시 꾸리기 3단계’ 공사실태를 료해(파악)하기 위해 삼지연시를 현지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신문은 3단계로 나눠 추진된 삼지연시 건설사업이 올해로 결속된다고 밝혔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격동의 2021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매우 뜻깊은 12월을 맞이하고 있다. 2대 수령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김정은호(號)가 출범한 지 1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당시 불과 27세의 나이에 정치 경험도 일천했던 김정은은 일반의 우려와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 장례를 서둘러 끝낸 후 군(軍) 최고사령관에 취임(12.30)하는 것을 시작으로 새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내외에 알렸다.

이후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이 60여 년간 구축한 권력 인프라와 이른바 백두 혈통 후광(後光)을 배경으로 3대 부자세습의 정당성과 통치기반 확대에 총력을 경주하였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폭군의 모습으로 공포통치의 칼을 휘둘렀으며, 때로는 세계최강 미국과의 판갈이 싸움과 대협상을 마다하지 않는 전략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고정관념이나 소망의 눈을 배제해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은 많은 것이 변했다. 외부에 드러난 겉모습은 과거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보면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김정일과 김정은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세상을 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부자세습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전임자인 아버지를 공식 부정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180도 달라졌다고 얘기해도 큰 무리가 없다. 김정일 시대에는 없었던 영부인 개념이 생겼고, 선군(先軍)이 선당(先黨)으로 바뀌어졌다. 핵정책과 남북·대미 관계 등 정책노선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김정은의 집권 10년을 냉철하게 진단·평가해 봐야 할 때다. 공포통치나 경제난 등 특정 부분을 과도하게 부풀리거나 우리의 잣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숲을 보면서 나무도 함께 봐야 한다. 나무들이 자라는 환경도 제각기 다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는 않겠다. 예만 하나 들면, 경제문제만 해도 김정일 시대는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사실상 국가가 손 놓고 간부·주민들이 각자도생) 바닥을 향해 마냥 추락하기만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다르다. 국가가 다시 주도하고 있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바닥보다 더 아래인 지하실로 일부러 내려가 적폐와 모순을 해소하려고 부심하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재해 등 이른바 3중고라는 최악의 위기국면을 맞아 오히려 문을 걸어 잠그고 ‘자력갱생 북한’을 복원하는 실험, 즉 기회의 장(場)으로 역이용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당연히 역주행이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험(북한은 이를 ‘정비·보강 전략’이라고 표현)이 성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처럼 우리는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보다 객관적 관점을 가지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 정권들이 수십 년 동안 실패한 전철을 또다시 밟지 않을 수 있으며,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북핵위기를 해소하고 경제문화강국·자유통일한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다.

지금은 모든 게 불투명했던 김정은 집권초기도 아니다. 1년, 2년이 쌓여 어느덧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정상회담 및 당정군 정책회의 등에서의 어록과 용인술, 핵·미사일 시험과 비핵화 협상,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코로나19 사태와 국경폐쇄 등과 같은 사건을 통해 김정은과 북한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이 순간에도 “김정은이 곧 죽을 것이다”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은은 가짜 대역이다” “북한 체제는 경제난이 심화되어 곧 망할 것이다” “한미가 먼저 통 크게 양보하면 김정은이 대화의 문을 열고 비핵화에 호응해 나올 것이다” “교황방북, 베이징동계올림픽, 종전선언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와 같은 유(類)의 ≪근거 없는 억측·아집과 소망·당위성에 기초한 극단적 주장, 정책≫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고 있다.

현정부 안보책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자신이 했던 발언과 주장, 정책을 겸허하게 뒤돌아보며 자문자답(自問自答) 해봐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자기주장만 내뱉고 있는 건 아닌지? 고장난 축음기나 흠집난 레코드처럼 매번 똑같은 평화 레퍼토리만 반복하고 있진 않는지? 진보든 보수든, 정부관료든 야당인사든 만약 자신의 일이었으면, 과연 이같이 무책임한 방식(frame)으로 접근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는 30년간 국가안보 현장(field)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를 다루었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후 박사학위 논문(『김정은 권력공고화 과정에 관한 연구』)과 2권의 저술(『김정은 대해부』, 『김정은과 바이든의 핵시계』), 세미나, 칼럼 등을 통해 김정은의 심리구조와 통치행태를 심층 분석하며 나름의 대책을 제시해 왔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에 ‘북한’, ‘김정은’이라는 2단어를 검색해 보는 게 첫 일과이다.

이렇게 자칭타칭(自稱他稱) ≪영원한 북한맨≫의 길을 걷고 있는 필자의 결론은 일반의 평가와는 사뭇 다르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즉 “김정은은 쉽지 않은 상대다. 과소평가하다가는 큰코 다친다. 김정은 체제는 경제난 등 일부 어려움이 있지만 구조적 안정 속에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특히 천신만고 끝에 손에 쥔 핵을 이용해 한반도 판(plate)을 근원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장성택 일파를 향해 휘둘렀던 피의 칼이 대한민국으로 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로 요약된다. 좀 더 학술적인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김정은은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승부사·독재자·냉혈한”(상세내용은 위의 도서를 참조)이라고 규정한다.

김정은의 와신상담(臥薪嘗膽)

지난 18일 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는 언젠가 김정은과 만나면 “당신 지금 행복하냐, 왜 그렇게 사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를 떠돌면서 서구적 사상을 교육받고, 본인도 분명히 인권 문제에 대해 교육을 받았을 텐데 그것에 반해서 사는 삶이 행복할까. 마음속에는 얼마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까 궁금하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여기에 대한 김정은의 답은 무엇일까?

김정은은 한 살 아래 이 대표의 물음에 대해 이렇게 속으로 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 네 말처럼 나는 그간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건 내 운명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풍요는 했지만 외로운 눈물의 빵을 먹으며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행복해질 것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난파선같은 북한호를 수리하는 일도 이제 어느 정도 끝내가고 있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 악마와 같은 삶도 살았고, 남몰래 울기도 했고, 그래서 폭식과 과음도 많이 했다. 70키로그램이였던 체중이 2배까지 불은 건 다 이런 이유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자신도 있다. 선대는 물론이고 나의 일생일대 목표인 핵·미사일 개발도 거의 마무리 국면이고,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위기를 오히려 그동안 쌓인 적폐와 모순점을 일소할 기회의 장(場)으로 생각하며 밀어붙인 북한개조 실험도 큰 탈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내 자신에게도 눈길을 조금 돌리고 있다. 다이어트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찾았다. 그동안 한 20~30키로그램 감량하면서 나에게 후한 점수도 주었다. 지난 10년은 힘들었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기초를 다졌다. 앞으로 10년은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행복하게 살 거다. 아니 행복해야만 한다. 나는 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 걱정 말고, 당신과 남조선 걱정이나 하라”고 말이다.

김정은은 서자(庶子)로 태어나 형들을 제치고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김일성에게는 ‘없는(숨겨진) 손자’, ‘없어야 할 존재’였기 때문에 북한에서 초중고도 다니지 못했으며, 청소년기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스위스로 보내졌던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왔지만 심적으로 매우 불우한 어린 왕자’였다.

김정은은 이런 시련과 콤플렉스를 딛고 권력의욕을 불태웠고, 집권 이후에는 후견인들과의 공동통치라는 편안한 길을 스스로 버리고 힘든 조기 홀로서기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제2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했고, 미국과의 판갈이 싸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지원도 한사코 거부하고 핵·자력갱생에 기초한 정면돌파전과 인간·사회 개조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관료와 주민들은 당연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김정은 앞에만 서면 마냥 작아진다. 바이든은 김정은과 주고받은 수십 통의 친서(이른바 love letter)를 자랑하는 전임자 트럼프와는 다르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부심하고 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철군에서 보았듯이 언제 정책이 돌변할지 모른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취임 일성(一聲)이 언제나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추진이다. 시진핑과 푸틴은 김정은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수시로 표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와신상담, 승부사 면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김정일 시신. / 사진=로이터

김정은의 각분야별 성적표

김정은의 지난 10년간 체제운영 성과는 권력장악 정도, 상징조작, 정책노선의 3가지 수준에서 판단해 볼수 있다.

첫째, 권력장악은 최고점수인 A플러스(A⁺)를 줄 수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이후 100일도 안 되어 당정군 최고직위에 신속히 취임한 이후 김정일이 생전에 후견인으로 지명했던 리영호 군총참모장 숙청(2012.7)을 시작으로 장성택을 비롯한 측근(이른바 운구차 7인방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등)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조기 홀로서기·유일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는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20여 년간의 공동통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3년상(1994.7~1997.8)이라는 과도기간을 거쳐 공식적으로 권력을 승계했던 사실과는 극도로 대비된다.

이어 2016년에는 당위원장·국무위원장직을 신설하여 김정은 시대의 본격 출범을 선포하였으며,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직책이었던 당총비서직에 취임하였다. 또한 10년간의 인사를 통해 당정군 주요인물들을 대부분 교체하였다. 취임 초기 인물들 가운데 지금도 역할을 하고 있는 고위급 인물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정도밖에 없으며, 김여정·조용원 등 새로운 인물로 대부분 물갈이되었다. 이로써 김정은의 권력장악은 완결되었다고 할수 있다.

“2020513일 통일부는 2019년 이후의 북한 주요인물 활동과 신규인물을 추가한 ‘2020 북한인물정보를 발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년 사이 당 정치국의 교체비율은 80% 가까이 되고 국무위원회 11명 중 9명이 교체돼 변동률은 82%에 달한다. 최근 들어 계속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고 실용주의 인사패턴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친정체제가 공고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2020.5.14. 리버티코리아포스트).

둘째, 상징조작도 최소한 A학점을 줘야 할 것이다. 김정은 취임 초부터 백두혈통을 강조하면서 김일성의 모습과 행동, 통치슬로건 등을 벤치마킹하는 등 김씨 일가의 후광을 그대로 전수받으려고 노력했으며, 사실상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북한 당국이 김정은을 ‘수령’으로 호칭하고 ‘김정은주의’ ‘위대한 김정은 시대’와 같은 용어를 확산시켜 나가는 동향도 포착되고 있다. 이제 김정은에 대한 상징조작·우상화는 거의 김일성·김정일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정책노선도 B⁺정도는 주어야 할 것 같다. 핵·미사일 개발은 전인미답의 길을 가서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단연 A⁺이다. 단, 경제가 핵·미사일 개발 올인의 후과로 제재에 시달리고 있어 문제(C, D)지만, 대미·대일 협상이나 문재인 정부와의 교류협력으로 타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지로 거부하고 있으므로 무조건 나쁜 점수를 줄 성질은 아니다.

즉 자력갱생 노선과 경제발전계획에 의거해서 체제 자체의 내구력과 경제순환 사이클을 만들어 나가고 있어 아직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특히 향후 비핵화 협상, 대일수교회담, 남북 간 교류협력 복원의 정도에 따라 경제문제는 언제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개선(D, C→B정도)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김정일사후 권력공백기, 핵·미사일 개발 올인에 따른 자원배분 왜곡, 장성택 일가 숙청 등에 따른 권력층 동요, 트럼프와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리더십 손상, 장기간의 대북제재·코로나19 팬데믹·재해 등 3중고에 따른 전대미문의 길(이른바 제2 고난의 행군), 트럼프의 퇴장과 바이든의 등장 등 난국을 헤쳐 나가고 있는 김정은의 위기타개 능력에도 상당한 점수(B⁺, A정도)를 줘야 할 것이다.

특히 김일성·김정일이 경제난 등을 이유로 36년간이나 지연시켜 왔던 당대회를 2차례(2016, 2021년)나 개최하여 체제가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하고 주민총동원 태세를 구축한 점, 그리고 당정군 회의체와 하부조직 활동을 정상화 시킨 것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높은 점수(A, A⁺)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김정은의 집권10년 성적표는 종합적·평균적으로 산출해 보면 A학점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평가된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의 반인권 정책에 전혀 변화가 없고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데 “학점을 너무 후하게 준 게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가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필자도 김정은에게 일부러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김정은은 약관 27세에 권력을 잡아 10년동안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엄청난 격변을 당당히 헤쳐 나오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시대부터 물려받은 북한체제의 구조적 모순점을 온전히 김정은의 탓으로 돌려 굳이 점수를 깎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과 같은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김정은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으며,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한마디만 더 첨언하면, 우리가 상대를 과소평가하다 당하는 것보다는 조금 과하게 평가하더라도 적극 대비만 할 수 있다면 차라리 그게 낫다는 게 역사를 통해 본 교훈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청년절 30주년 경축 행사 참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새로운 5, 15년을 향한 노정의 출발

김정은은 어느덧 집권 11년차 지도자이다. 우리사회로 치면 재선에 이어 임기 3번째를 맞고 있는 지도자이다.

북한은 다가오는 12월 30일 김정은의 군 최고사령관 취임 1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면서 ▲김정은의 핵강국 건설·애민정치 노선을 비롯한 각분야의 치적 총결산 및 홍보 ▲경제·외교적 곤궁 국면 타개를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정책노선 제시 ▲주민 총동원과 체제결속의 계기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순간도 헛되이 할 수 없는 천금같은 일각일초가 흐르고 있다…(중략) 2021년의 승리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영도따라 조국과 인민이 아로새겨온 영광스러운 10년 역사의 빛나는 절정이 될 것이며 우리 당이 펼친 광활한 미래에로 천만 인민을 힘껏 떠밀어주는 도약대로 될 것이다”(2021.11.8. 노동신문)

이후 이같이 고조된 사회분위기를 신년(1.1) → 김정은의 38회 생일(1.8) → 김정은의 당총비서 취임 1주년(1.10) → 베이징동계올림픽(2.4~20) → 사망한 김정일의 80회 생일(2.16) → 김정은의 당·정 최고직위 승계완료 10주년(4.12 당 제1비서/4.13 국방위 제1위원장 취임) → 사망한 김일성의 110회 생일(4.15) 등과 연계하여 계속 에스컬레이트시켜 나갈 것이다. 특히 내년이 대한민국의 대선(3.9)과 20대 정부 출범(5.9),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등 중요한 정치일정이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볼 때 최소한 2022년 상반기까지는 체제결속에 좀 더 비중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당정군 연합대회의 개최, 새로운 정책노선 발표, 김정은 생일의 국가공휴일 지정 등 개인우상화 사업, 김정은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핵·미사일 개발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위성발사용으로 호도) 시험 발사,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개입을 위한 이벤트 등과 같은 국면반전 카드도 언제든 유효하다.

최근 한 달 이상 지속되었던 김정은의 장기 칩거와 삼지연 건설현장 깜짝시찰(11.16) 이후 또다시 공개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는 동향도 김정은이 백두산 등지에서 큰 구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김정은은 2036년까지를 고려하고 있는 지도자이다. 취임 이후 줄곧 사회주의 강국 건설, 김씨 일가 영구집권 기반 구축에 매진해 왔다.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공산주의 사회 건설, 핵을 기초로 한 통일”까지 당규약에 명문화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당은 앞으로의 5년을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오는 효과적인 5, 세월을 앞당겨 강산을 또 한번 크게 변모시키는 대변혁의 5년으로 되게 하려고 작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거창한 투쟁을 련속적으로 전개하여 앞으로 15년 안팎에 전체 인민이 행복을 누리는 륭성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일떠세우자고 합니다.”(2021.4.27. 김정은이 청년동맹 10차대회에 보낸 축하서한)

따라서, 공식 권력승계 완료 10주년이자 집권 11년차가 시작되는 내년에도 경제난 타개를 위해 무리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핵과 자력갱생, 비사회주의 척결을 골자로 하는 ‘정면돌파전 2.0’(제2의 고슴도치 노선)을 당분간 유지해 나가면서 한·미의 대북정책 전환, 대양보를 압박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공동선언문 서명식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결 어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물러갈 정부의 성적표를 굳이 매기지는 않겠지만, 지난 5년을 뒤돌아보면 치밀한 전략전술보다는 ‘소망(wishful thinking)과 당위성’에 기초한 대북정책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멀리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화석이 된 망부석(望夫石)의 전설처럼 참고 또 참으며, 김정은의 선의만 기다리다가 소중한 시간을 다 보냈다. 김정은의 긴 안목과 결단, 강·온 전략전술과는 너무나 비교된다. 평화, 통일과 같은 ‘말의 성찬(聖餐)’ 속에서 남북한 사이의 핵불균형은 더욱 심화(최소한 0:50)되었다.

얼마 전 모 일간지 논설위원은 아직도 김정은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투혼을 “다음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게 하기 위한 대못박기, 자신의 DNA를 후세에 남기려는 영생의 충동”으로까지 혹평했다. 당사자들은 많이 아프고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글이었다.

일찌기 중국의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끈 등소평은 건국의 아버지인 모택동을 평가하면서 “공(功)이 일곱이고 과(過)가 셋인데, 공이 과보다 크므로 그를 중국 근현대사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른바 ‘공7과3론’이다. 김정은도 지난 10년간 수많은 굴곡을 겪었으며, 앞으로 헤쳐 나가야할 길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그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집권해 ▲조기 홀로서기와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하고 ▲급기야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수령의 반열에 올랐으며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에 올려놓은 일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대북제재와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이라는 치명적 위기 국면에서도 외부의 지원 수용을 한사코 거부하며 북한체제를 정화(淨化)하는 기회, 즉 부정부패·비사회주의 척결의 장(場)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난도 ‘핵·미사일 강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일본과 협상하고 대한민국과 교류협력을 하면 곧바로 개선될 수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2036년을 ‘사회주의강국 건설의 원년(목표년도)’로 제시한 지도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기에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부를 선출하는 정치일정에 들어가 있다. 내년 3월 선출될 20대 대통령은 독재자이자 승부사인 김정은과 진검승부를 펼쳐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갑(甲)의 입장에서 성장해가는 젊은 지도자, 악마의 발톱을 숨긴 김정은을 상대했다. 그렇지만, 새 대통령은 이미 여러모로 강해진 김정은과 상대해야 한다. 북한의 핵 갑질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진실의 순간과 마주 설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노정이 예상된다.

그럼 대한민국은 김정은을 어떻게 상대해 나가야 할까?

가장 먼저 김정은이 38살의 젊은 지도자이지만 어느덧 집권 11년차의 노회한 정치인이 되었다는 사실부터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두 얼굴을 넘어 세 얼굴, 네 얼굴을 가진(multi-faced) 승부사·냉혈한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고정관념과 소망을 경계하고 담대한 포석과 냉철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대응이 필요하다.

서두르거나 소망에 입각해 김정은을 상대하면 필패(必敗)다. 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당사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가운데 미국 등 국제사회와 협조하여 ▲비뚤어지고 헝클어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인류보편적 가치의 구현, 국제규범 준수를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새로 출범할 대한민국의 리더십은 단기적인 이벤트성 대화와 교류협력을 지양하고 ‘당당하고 원칙있는 자세’를 기초로 북한을 ≪비핵화·자유화·시장화·친한화·국제화(5化)≫시켜 나가는 활동을 입체적·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세계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국가답게 ≪북핵·북한의 굴레를 넘어 세계로·미래로≫ 나아가는 담대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기조와 활동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혹자는 대결노선이라고 매도할 것이다. 그렇지만, 남북관계는 길고도 긴 노정이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첫걸음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와 국민 앞에 숨결을 고르며 첫 단추를 새로 잘 꿰어야 한다.

손자가 설파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격언이 다소 식상할지 모르지만, 잔인한 독재자이자 승부사인 김정은을 상대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하는 자유 대한민국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경구(警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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