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빠진 진보는 ‘사이비’ 진보”

지난 6월 미국 부시 대통령은 국내의 한 탈북자를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미국 백악관에 초대받은 최초의 탈북자, 더군다나 대통령의 초청을 받는 것은 정치인들에게도 아주 드문 일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 대표다. 부시 대통령은 강철환 대표의 수용소 체험을 담은 책, ‘수용소의 노래’(부제, 평양의 어항)를 읽고 감명을 받아 저자를 초대했다.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약간 떨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그는 “인권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참혹한 인권 유린이 벌이지고 있는 수용소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당당히 말하고 돌아왔다.

강 대표는 대표적인 탈북자 출신 북한민주화운동가다. 1992년 국내에 입국한 이후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을 알리는데 일신을 아끼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책을 펴내고 쉼없이 강연을 하는 등 국내 학생, 시민들에게 북한인권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만난 이후 강대표는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민간단체 및 대학교 강연, 미국 현지 강연 등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란다. “힘들지 않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없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을 인민들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난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현재 그는 미래의 북한인권운동사에 하나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북한인권국제대회’에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탈북자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쉼없이 대회준비사항을 점검하는 전화를 받으며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 대학생들 북한인권문제에 관심 높아”

– 부시 대통령을 만난 이후 변한 게 있으신가요?

강연 요청이 3배 이상 늘었습니다. 대학교, 시민단체, 회사 등에서 강연을 했고 미국 순회강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한달동안 머물면서 총 20번 강연을 했는데 예일대, 하바드대 등 12개 대학, 교회에서 8번 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전세계에 북한 인권의 현실을 알린다는 생각을 하니 힘이 나더군요.

– 미국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이던가요?

미국인들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은 대단합니다. 특히 미국 대학생들의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국내 대학생들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물론 북한인권에 대해 남한 대학생들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지만 제가 순회강연을 하면서 느낀 것은 미 대학생들의 관심 수준이 꽤 높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학교 강당에 연예인이 오지 않는 이상 50명이 앉기 힘든데 제가 갔을 때 200명의 사람이 참가해 강당을 꽉 채웠습니다.

– 강연을 들은 청중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미 대학생들은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대해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질문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제가 질문을 받으면서 깜짝 놀랄 정도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미 대학생들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족공조라는 감상에 젖어 인권이 무시되면 안 된다”라는 기본적인 인권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인권문제 침묵은 ‘국제적인 망신’

– 미국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북한인권 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는데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일부 인권단체들만 북한인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인권문제 해결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국제적으로 망신입니다. 최근에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을 했는데 이것은 명백한 민족배반 행위입니다. 통일이 되면 분명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북한은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지원하는 식량 및 물자로 체제를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인민들을 먹여 살리려고 하기 보다는 국제사회에 구걸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급급합니다.

이렇게 되니 북한의 자립성이 길러지겠습니까. 계속해서 의존하려고 하고 북한의 체질적 변화를 꾀하기 보다는 현상유지, 체제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해집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핵무기 개발과 주민통제 강화를 위한 배급제 부활 등입니다. 개혁개방에 역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본질적인 성격을 바라보지 못하고 김정일 정권의 눈치만 보거나 ‘민족공조’를 외치며 북한의 인민들을 외면하는 일부 친북적 성향의 좌파단체들이 있습니다. 전부 사이비에 불과합니다.

–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도 일하고 있는데 국내 언론계의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태도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회의감이 앞섭니다. 1997년 이전, 그러니까 햇볕정책이전에 신문, 방송사들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방송을 하거나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등 일반시민들이 쉽게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는 신문, 방송사가 극소수에 불가합니다. 실제로 2004년 KBS 라디오 방송국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주제로 ‘인권특집’ 프로그램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KBS 간부급 회의에서 방영이 부결됐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허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회가 발전해야 하는데 오히려 역행, 퇴보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북한인권국제대회’를 계기로 언론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은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과 같다”

–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해법이 있다면?

제가 미국 강연을 갔을 때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교회 신자 중에 어렵게 사는 아이가 있어서 지원을 해줬는데 아버지가 교회에서 지원하는 돈을 빼앗아 모두 술값으로 탕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버지에게 일정한 압박과 설득으로 치료를 받게 하고, 교회에서 지원하는 돈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구입해 전달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알콜중독에 걸린 아버지와 김정일이 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알콜 중독에 걸린 김정일에게 계속해서 돈을 주면 술값으로 탕진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즉, 국제사회의 지원은 김정일 정권의 체제유지에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려면 북한인민들의 처한 상황에 대한 지적과 압박, 그리고 그것을 전제로 한 지원이 이루어져야만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 북한의 개혁개방도 중요하지만 정치범수용소 해체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맞습니다. 북한은 일당 독재체제로 철저한 공포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공포정치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정치범수용소 입니다. 수용소를 통해 인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범수용소를 해체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용소를 해체시키는 방법으로 김정일과 전쟁을 하자는 식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현재 6자회담 틀 속에서, 아니면 국제사회가 합심하여 수용소 해체를 전제로 대북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 때 단호한 국제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독재체제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듯, 김정일 정권에게 강력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북한인민들이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날까지 북한민주화운동할 터

– ‘북한인권국제대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국제대회의 의미와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죠.

이번 국제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북한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우리가 국제대회를 연다는 것입니다. 국내 인권단체를 총망라해, 국제 인권운동가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에서, 우리가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최전방에서 활동하겠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인권에 대한 목소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하나의 굵직한 흐름으로 형성될 것입니다. 현재 북한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화되고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또한 제3회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준비되고 있어 이번 대회가 북한인권실현의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또한 국내 젊은 대학생, 특히 탈북 대학생들이 이번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의미가 큽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통일한국에 있어서 큰 기둥이 될 것입니다.

저는 탈북자들에게 국제대회 참가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섯개 탈북자 단체들이 참여 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국제대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대회가 끝나면 이들 단체들과 공동네트워크를 만들 예정입니다. 북한인권문제가 국제적 아젠다로 부상한 만큼 탈북자 단체들도 힘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저는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씨를 가장 싫어합니다. 제가 정치범수용소에서 10년을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겨울비를 맞으며 강제노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젖은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에도 구타를 당하면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섬뜩합니다.

제가 수용소에 있을 당시 저의 가장 친했던 리영국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의 형 리영선 씨가 최근 탈북을 했는데 제 친구인 영국이가 아직도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눈물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30년 가까이 요덕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힘들고 지칠 때 제 친구 영국이를 생각합니다. 30년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을 영국이의 고통에 비하면 저의 고통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가 합니다. 앞으로 영국이를 위해서라도 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북한이 민주화 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북한의 인권을 알려 나가겠습니다.

김용훈 기자 kyh@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