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한반도 통일 시작은?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역사적 사건은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분수령을 이루었다. 1989년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주민들의 대규모 탈출현상은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행사를 앞에 두고 라이프찌히, 드레스덴, 베를린 등에서 크고 작은 시위사태를 촉발하였다.


심지어 동독의 전설적인 정보책임자 마르쿠스 볼프도 시민운동에 참여하였다. 결국 18년간 통치를 하던 에리히 호네커가 사임하고 에곤 크란츠가 당 제1서기가 되어 경직된 동독체제를 유연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샤보브스키는 11월 9일 저녁 7시경 기자회견에서 “모든 동독사람의 국외여행을 허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언제부터 새로운 여행규정이 적용되느냐?”고 물었고, 샤보브스키는 서류를 뒤적이며, “내가 알기에는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전해졌고, 밤 8시경부터 동베를린 주민들이 국경초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동독의 경찰은 군중들을 통제하려고 애를 썼으나 점증하는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비자나 여권이 없는 동독주민들도 서베를린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서 동서냉전을 종식시켰다. 이 사건이 있은 후 11개월 후인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이 되었고, 이어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순식간에 체제전환을 이루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도 해체되어 자본주의 국가들이 되었다.


II.
그렇다면 독일 국민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의 통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까?


독일 언론을 살펴볼 때, 독일국민들의 대다수는 통일이 전 독일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왔으나 구 동독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과 인구감소 등의 문제를 수반한, 한마디로 앞으로 완수해야할 미완성의 통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동독지역을 살펴보면 고속도로, 철도, 국도 및 도시 전체의 복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여 매우 아름다운 도시들과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또 현재의 경제위기에 구 동독지역 주민들이 훨씬 더 잘 적응하여 앞으로 경제발전도 서독지역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젊은이들에게는 동서독의 구별이 없으며, 이른바 오시(Ossi)와 베시(Wessi) 간의 문화적, 정서적 갈등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전해진 것이다.


이제 좌우를 떠나 독일의 어떤 언론도 독일통일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11월 9일 구 동독지역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설교에서 어떤 주교는 “동독에 대한 일부 계층의 향수(Ostalgie)가 동독체제의 잔학성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즉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의 독일 통일은 성공한 것이다. 지난 15년간 흡수통일 혹은 합류통일을 반대하는 한국의 좌파들에 의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통일의 모형으로 독일통일이 낙인 찍혔지만, 이제 이들의 주장이 틀렸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물론 한국 좌파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의 통일을 반대한 이유가 우선 김정일 정권의 유지에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흔히들 통일과정에서 엄청난 탈북 난민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와 큰 사회혼란을 야기할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대량의 난민유입사태는 한시적인 것이다. 한때 독일 통일과정에서 서독으로 들어온 난민은 200만명 이상이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 거의 70%의 서독국민들이 이제는 난민입국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누가 이런 난민사태를 기억이라도 하는가? 그것은 독일이나 한국과 같은 국가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한시적인 문제일 뿐이다.


또 흡수통일에 필요한 이른바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괴담이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다. 통일비용이란 통일의 방식이 정해져야 의미를 갖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고급호텔에서 호화 결혼식을 할 수도 있지만, 가난한 젊은이들은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도 결혼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통일할지에 대한 구체적 제시 없이 무작정 “흡수통일에 막대한 통일비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도적 흑색선전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도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고 구상하면 된다.


이때 통일이 ‘과정+사건’으로 진행될지, 아니면 ‘사건+과정’으로 진행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매우 큰 남북의 통일에 한 세대의 세월이 필요함은 분명하지만, 현재 독일의 경우처럼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중요한 점은 통일의 과정이 북한 주민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분명 더 낫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III.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이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앞으로 수년 내에 우리에게 역사적 결단을 요구할 현실임을 이해해야 한다. 바꿔 말해 우리는 통일을 준비해야 하며, 그 시작은 그 어떤 단계를 거치면 자동적으로 통일이 된다거나,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는 통일이 유일한 평화통일이라는 ‘단계통일론’을 비판하는 작업이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목표, 가치 지향적 통일’이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이어야 한다.


도대체 북한의 체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며, 오로지 전체주의 폭정일 뿐이다. 따라서 양 체제를 인정하며 시작하는 단계통일론 혹은 로드맵 통일론은 통일의 목표를 상실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통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통일의 과정 중간에 설정된 평화협력단계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의 통일이 논리적으로 평화협력 자체를 부정하며 ‘공화국을 위협하는 전쟁 행위’라고 북한이 주장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북의 ‘적극적 평화체제구축’이란 이름 하에서 행해지는 이런 자가당착이 지난 10년간 반복되어 한국 국민에게는 유일한 평화통일로의 길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일 전에라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필요한 평화공존이고 북한이 대한민국에 합류하는 평화통일이지, 북한의 전체주의 폭정체제를 한국이 인정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정권에 지속적으로 체제전환을 요구해야한다. 즉 핵폐기와 개혁개방만이 살 길이며, 이 길이 언젠가는 북한체제의 근본적 전환을 가져올 것임을 숨길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북한의 지배집단에게 ‘바뀌지 않기 위해서 바뀔 수밖에 없다’는 역사 변화의 진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목표, 가치 지향적 통일로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