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핵문제 시각 ∙ 입장 첨예한 대척

▲ 27일 열린 4차 6자회담 전체회의

드디어 6자회담의 뚜껑이 열렸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25일 실무준비회의를 갖고, 26일 개막을 한 후, 27일 첫 번째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전까지 3차례 6자회담은 개막식을 한 후 곧바로 전체회의에 들어갔다. 이랬더니 각자 본국에서 훈령을 받아온 내용만 쭉 읽고 서로의 차이만을 확인한 채 회담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았다.

6자회담을 ‘단체 맞선’이라고 한다면, 개막식을 하고 곧바로 모두 앞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면 한 사람이 몇 십분 씩 자기소개를 하고, 나머지 다섯 명이 질문 하나씩만 던져도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이러한 ‘라운딩’을 여섯 차례 하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이 그 동안의 6자회담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막식 후 하루 ‘여유’를 가졌다. 맞선 참가자들을 특별한 일정 없이 참가자들을 강당 안에 풀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소개도 하리라는 계산이었다. 친밀감이 높아진 다음날, 전체모임을 갖는 방식이 이번 회담이다.

26일 참가국들은 남-북, 미-북, 남-중 등 다양한 양자회담을 가졌다. 개막식 전날에도 서로 만났다. 회담장 주변에 마련된 소회의실과 쇼파, 혹은 복도에 마주 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27일, 각국의 기조연설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A → Z, 북한은 Z → A

관심을 집중시킨 기조연설은 역시 미국과 북한이다. 결론은, 3차회담에 비해 진전된 내용이 거의 없다. 서로 그 동안 사용해왔던 딱딱한 표현을 좀더 부드럽게 순화한 것 이외에는 다른 점이 없다. 원칙적이고 분명한 표현을 애매하게 바꿔서 오히려 두루뭉실해진 측면이 있다.

미국은 지난 3차회담에서 제안했던 이른바 ‘6월제안(June proposal)’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고, 북한 역시 기존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오히려 핵보유국으로서 군축회담, 평화체제 구축 등 요구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미국은 인권, 미사일 문제도 의제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북의 북핵문제 해결 방식을 보면 서로 서두와 말미가 뒤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A에서 시작해 Z로 가자’는 방안이라면 북한은 완전히 반대로 ‘Z에서 시작해 A로 가자’는 식이다.

● 미국이 제안하는 북핵해결 프로세스 (6월제안 토대)

전제조건

북한의 핵폐기 선언

 

1단계

행동의 개시

북한

미국

 ○ 핵활동 완전히 중단(동결)

 ○ 핵프로그램 및 시설 보고

 ○ 핵사찰

 ○ 모든 핵시설 해체

북한에 대한 잠재적 다자안전보장

한국

중유, 전력공급, 경제지원 시작

 

 

2~3단계

핵폐기 단계적 이행

 ○ 대북 안전보장 조치

 ○ 비(非)핵에너지 지원

 

 

4~5단계

 ○ 핵시설 해체 확인

 ○ 지속적인 감시체계 구축

 ○ 테러지원국 제외 논의

 ○ 경제제재 해제 논의

 ○ 국교정상화 문제 논의

● 북한이 제안하는 북핵해결 프로세스 (27일 북한측 기조연설 토대)

전제조건

 ○ 미북간 신뢰조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구축

 ○ 평화공존 (미국의 대북 제도전복 의지 철회)

 ○ 무조건 핵 불사용 담보

단계별 조치

북한

미국, 한국

핵폐기

(구체적 절차에

대한 언급 없음)

 ○ 남한내 핵무기 철폐 및 반입 금지

 ○ 핵우산 제공 철폐

 ○ 경제적 손실 보상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미국과 한국 등은 북한의 핵폐기 선언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핵폐기선언을 하면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을 재개하고, 그 기간 동안 북한은 핵폐기의 단계적 조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핵문제 해결프로세스의 종착역은 ‘미북간의 국교정상화’에 두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반대로 시작한다. 미북간의 평화공존, 즉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 그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이것이 시작이고 핵폐기는 끝이라는 말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 의지가 발단”,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이 발단”

이러한 입장차는 6자회담까지 만들게 된 북핵위기가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가에 대한 양국의 시각차에서 비롯된다.

북핵문제에 대한 미북간의 시각차

미국

북한

  ○ 북한의 비밀 핵개발에서 시작

  ○ 북한의 핵보유 의지 강하다 판단

  ○ 북한의 핵폐기와 보유의지

      포기가 중요

  ○ 미국의 공연한 트집에서 시작

  ○ 미국의 대북공격의지 강하다 판단

  ○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폐와

      제도전복의지 포기가 중요

미국은 작금의 핵위기가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비롯한 북한의 핵개발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북한이 핵폐기 의사를 분명히 하고 그 구체적 행동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북한은 작금의 핵위기는 있지도 않은 핵개발 트집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런 미국의 공세에 맞서 ‘자위적 조치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시발점은 미국이 대북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체제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이왕 핵무기를 갖게 되었으니 이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은 상태에서 미국과 군축회담을 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평행선 대치 계속 되면 ‘회담무용론’ 대두될 것

이번 회담은 서로간의 이런 입장차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으며 북핵문제 해결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체제위협론에 대해 핵폐기 선언을 하였을 시 문서를 통한 다자간 안전보장을 해줄 용의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북한은 주권국가라고 수 차례 발언하여 체제를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는데 ‘핵폐기선언’만으로도 시작하는 엄청난 선물꾸러미를 북한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 더구나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철폐 등 무리하고도 불가능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NPT 가입국으로서 남한은 군사적 목적의 핵을 개발하지 않는 대신 핵보유국인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게 남한에 대한 핵우선 제공을 하지 말라는 것은 한미동맹관계를 끊으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이번 4차 6자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미북간의 이런 평행선 대치가 계속되면 회담무용론의 목소리가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

곽대중 기자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