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탈북’ 지성호, 북한인권운동가인 그가 입당하게 된 사연은?

자유한국당 새해 첫 인재로 영입…"모든 인권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힘이 들어도 기꺼이 하겠다"

지성호
자유한국당 새해 첫 영입 인재로 발탁된 탈북민 지성호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 대표. /사진=데일리NK

지난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에서 짚고 있던 목발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짓던 한 남자.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2006년 탈북해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며 탈북민 구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 씨의 이야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전해지자, 곧 전 세계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난 8일 자유한국당의 새해 첫 영입 인재로 발탁된 지 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인권운동가이자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의 대표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가 당원()이 돼 나타나다니. 어찌 된 영문일까.

데일리NK는 곧장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NAUH 사무실을 찾아 지성호 대표를 만났다. 한쪽 벽면에 큼지막한 ‘대한민국전도’가 걸려있는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30분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그는 ‘지금 정신이 없을 만큼 전화가 많이 온다’면서 연신 멋쩍은 웃음을 짓다가도 이내 진지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유한국당의 새해 첫 영입 인재로 ‘깜짝’ 발탁됐다. 영입 제안에 응하기까지 그 과정이 궁금한데.

“저는 뼛속까지 북한인권활동가인 것 같다. 사실은 처음엔 북한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줄 알고 만났는데, 생각과는 조금 다른, 나도 깜짝 놀랄만한 말씀(영입 제안)을 하시더라.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만나고 대화했는데 솔직한 것이 참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나는 북한인권에 대해서 여당, 야당 모두 부족한 모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더 관심을 두길 바랐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을 활동가로서 많이 보고 느끼고 있었다. 만약 (한국당에서) ‘북한인권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면 내 생각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솔직하게 부족했다고 하더라. 국회의원이라고 다 북한인권에 관심 있는 건 아니고 지역구도 챙겨야 하다 보니 북한인권에 신경을 많이 못 쓴 게 사실이라고도 했다.

그런 진솔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또 하시는 말이 ‘인권센터’를 만들어서 함께할 구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생각해보겠다고 이야기하고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봤던 것 같다. 사실 인권센터가 있어야 하는 게 맞다. 북한인권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은 개선되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에서 북한인권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참신했다.

뭐랄까. 프레임에 딱 갇히기보다는 변화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보수는 인권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없어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전화통화와 만남을 가지면서 결심이 섰던 것 같다. 특히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내가 그나마 활동을 해왔고, 또 나는 피해자이기도 당사자이기도 하지 않나. 크게 봤을 때 대한민국의 발전, 국민의 행복, 인권의 향상, 거기에 나는 주전공인 북한인권 문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고 많이 고민하다 결정했다.”

-영입 제안을 듣고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

“솔직히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어느 정당에도 가입해본 적이 없다. 북한에서도 그렇고 남한에서도 그렇다. (웃음) 그런데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가. 또 개선을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정당에 들어감으로써 내가 한쪽에 치우쳐서 북한인권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까 그것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고민했다. 그때 나는 북한인권 문제가 개선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이 나아졌는지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방향성에 따라 움직이지만, 나는 그보다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돼야 한다는 데 중심을 뒀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도 소중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도 소중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서 북한인권을 바라보고 있고, 전반적인 인권 문제에서 북한인권은 소외된 게 사실이다.”

-통상 영입 인재들은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돼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 그런데 지금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 아닌가.

“사실 나는 그런 부분은 잘 모른다. 단지 인권, 북한인권을 핵심사업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을 약속받았고, 그게 마음을 움직여 가게 된 것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반발해 비례대표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올해 4월 총선에 적용됨에 따라 비례의석 감소가 불가피한 만큼,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 별도의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을 최대한 확보하고 총선 후에 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조금 전 ‘인권센터’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당내에 인권센터를 만들어서 인권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저도 함께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서 조금 더 진전되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아시겠지만 나와 함께 영입된 분도 인권 피해자다. 북한인권을 넘어 보편적인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보자는 것이 참신하고 좋았다. 북한인권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른 인권 문제들까지 정치권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나.”

-그동안 많은 북한인권활동가들은 북한인권법의 핵심인 북한인권재단이 설립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해왔다. 북한인권법이 시행된 지 벌써 3년이 지났음에도 정치권의 사정 때문에 재단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인데.

“당에서도 이 문제에서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함께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겠냐고도 했다. 사실 북한인권재단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는 부분인데, 그렇게 되지 못해 활동가들도 많이 안타까워했다. 관련 예산이 통과됐다고 하는데 활동가들도 재단에 예산이 얼마가 책정돼있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들을 개선해보도록 노력하자고도 이야기했다. 지금 나를 포함해 많은 활동가가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 이 문제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당에서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또 만들자고 약속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의 지성호 대표가 지난 2018년 7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의 탈북 여종업원 직권조사 결정을 규탄하고 있는 모습. /사진=나우(NAUH) 제공.

-북한인권과 관련해 당에서 특별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내가 국제사회에서 활동도 많이 했으니 네트워킹을 통해서 북한인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당이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고, 피해자였던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함께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나. 어쨌든 보편적인 인권 또 북한인권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아시다시피 인권 개선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일에 내 힘이 필요하다면 힘이 들더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또 결과적으로 나와 같은 북한인권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현 정부도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평가도 있는데.

“솔직히 요즘 언론들도 북한인권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 지금 정부와 기조를 맞춰가는 부분이 있지 않겠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을 맞으면서 활동하는 데 있어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내가 역할을 해야겠다’ 싶어서 국제사회에서 여러 단체와 협력하기도 하고 같이 모여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 정부로부터는 시종일관 외면을 당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북한인권이 이념적으로 다뤄지지 않나.

“인권 문제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함께 간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한국 정치에서 그렇게 쓰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는 재조명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북한인권 문제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가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영웅화되기도 하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비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대로 하면서도 인권 신장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또 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인권 외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분야가 있나.

“일단 북한인권 외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청년 문제다. 청년들이 참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지 않나. 청년들의 웃음이 사라진 지가 꽤 된 것 같다. 나라의 경제 상황이 좋고 나쁨은 길거리에 다니는 청년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나도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다 보니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6~7명도 모두 청년들이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에도 관심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해에 탈북민 모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지 않나. 지금 북한인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사건으로 나의 한계도 분명 보았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탈북민 사회정착에서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하고 있다.

또 내가 장애인이다. 남과 북의 장애인 복지 정책을 비교해보면 정말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는 해외에도 나가보고 하니 더욱 발전된 장애인 복지 정책들을 보기도 한다. 앞으로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 있는 나와 같은 장애인들에게도 더 좋은 복지가 제공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장애인 문제에도 더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지 대표는 1996년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음식과 맞바꿀 수 있는 석탄을 훔치기 위해 열차에 올랐다. 그러다 열차에서 떨어져 왼팔과 다리를 잃었다. 당시 그의 나이 14살이었다. 이후 2006년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 목발을 짚고 5개국을 거치며 1만㎞를 걸은 끝에 한국에 입국했다.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하다.

“나는 지금이라도 북한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깃드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나에게 보내준 관심과 사랑,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마음을 모아 북한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다. 북한의 주민들이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 날,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그 날이 오는 데 일조하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그것이 뭐가 됐든 간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해보겠다는 마음이다.”

-앞으로 NAUH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려고 한다. 일단 변한 건 없다. 나는 지금도 북한인권활동가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