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선권, 상징적 역할 그칠 가능성…美에 강경 메시지 발신용 인사”

전문가 "최선희가 실세 역할 담당할 듯...외무성서 불만 표출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당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연합

북한의 외교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는 외무상에 리선권 전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외무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노동당 국제부장 자리에는 김형준 전 주 러시아 대사가 임명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대미 비핵화 협상을 포함한 북한의 대외 전략이 대폭 수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핵 보유를 주장해온 군부의 입장이 대미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NK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평양 주재 외국 대사들에게 새 외무상으로 리선권이 임명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북한 당국이 리선권 전 조평통위원장의 외무상 임명을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 대사관에 통보했다는 점에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6년 5월 외무상에 임명돼 외교 전략을 책임졌던 리용호 외무상과 북한 외교의 원로격인 리수용 국제부장은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들의 임기가 짧게는 5년에서 10년이었던 것을 비교해볼 때 리용호의 교체는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문책성 인사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후견인 역할을 해온 리수용의 경우 올해 나이가 81세로 원로의 퇴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리용호와 동시에 교체됐다는 점에서 그의 해임 또한 북미 협상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0일 데일리NK에 “북한의 구조상 리수용이 막후에서 외교 전략을 조정하면서 리용호가 전체 정책을 전체적 살피고 최선희가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리수용과 리용호의 해임은 문책성 인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외무성 총 책임자가 바뀌었으니 새로 임명된 김형준 국제부장이 외무성을 재편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외교 경험이 없는 리선권이 끼어들면서 북한의 외무성의 구조가 복잡해졌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현재 외무성의 실질적 총괄자인 최선희 제1부상은 당중앙위원회 위원이면서 동시에 국무위원회 위원이어서 외무성에서 보직은 아래지만 정치적 입지는 리선권보다 높다. 리선권이 외무상으로서의 역할을 본격화하면 최선희와의 역할 분담에 있어서도 갈등이  예상된다.

실제로 북한 외교 상황에 능통한 고위급 탈북민도 “외무성 성원들은 자존심이 세고 자긍심이 상당하다”며 “김정은이 직접 임명한 인사이기 때문에 대놓고 반발할 수는 없겠지만 실질적으로 리선권이 외교 업무에 개입한다면 잡음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외무성 내부에서 리선권의 외무상 임명에 대한 불만이 실무적 갈등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리선권이 외무성에서 실무적 경험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리선권은 대외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상징적인 인물로만 역할을 하고 실제로는 최선희가 외무성의 핵심적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박원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국이 발전권과 생존권을 선 보장하지 않으면 (비핵화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인사로도 보여준 것”이라며 “강경파인 리선권을 외무상에 앉혀 대외적으로 강경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있어서 리용호 외무상이 직접적인 실무를 담당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무는 최선희가 이어가면서 리선권은 상징적인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김정일 시기 백남순 외무상은 대외 상징적 역할만하고 실제 외무성의 주요 업무는 강석주 제1부상이 총괄했던 전례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제1부상이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고 전면에 활동한 것이지만 정치적 위상이 실제 보직과 역전된 상황은 아니었다. 이같은 상황이 문제가 된다면 리선권의 정치적 직함을 상승시킬 가능성도 있다.

한편 미국통인 리용호를 해임하고 강경파 리선권을 대외 협상 총괄자리에 세우면서 비핵화 협상의 여지는 더욱 좁아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정치권 안팍에서는 북한과의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리선권은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을 이끌었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김영철은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상당히 강경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회담 분위기를 긴장시켰으며 이로 인해 문책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불편한 인물이 외무상에 임명된 것”이라며 “북한은 북미 협상을 적어도 11월 미국 대선 이후 혹은 내년까지 장기적 호흡으로 가져가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