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붕괴와 김정은의 선택

사회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투자는 기업의 결정 사항이 아니다. 당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투자여부가 결정될 뿐이다. 이런 사회주의 국가의 불문율을 가장 잘 대변해주던 것이, 바로 동독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공급의 획일성’이었다.

분단 시절 동독을 왕래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계절 가게 진열대에는 온통 빨강색 티셔츠만 차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당의 지시에 따라 해당 기업이 빨강색 상품만을 생산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획일성 때문에 서독의 가족과 친지들이 동독을 방문할 때 가져왔던 청바지나 각종 옷가지들은 동독 청소년들의 선호품 1순위였다.

기계나 설비, 장비 등 자본재의 낙후성에서도 이 같은 당의 독점체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던 사회주의 국가들은 당장의 효과가 없는 설비의 현대화나 장비의 교체 등 자본재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정책에 의해 자급자족 경제를 지향하고 시장의 힘을 무시한 채 제품의 질보다는 양을 우선시한 결과, 낙후한 설비의 보완이나 대체는 마냥 지연됐다. 결국 대체비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덩이처럼 축적됐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났다. 그 결과, 이미 감가상각(減價償却)이 이뤄졌어야 할 기계나 장비의 과도한 사용은 제조업체의 파손율을 높였다. 1975년에 48.1%에 달했던 파손율은 1989년에는 55.2%로 상승했다. 특히 건설업 부문에서의 파손율은 1975년에 52.9%이던 것이 1989년에는 68.6%로 가파르게 상승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동독 제품의 경쟁력은 끊임없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 경쟁력도 눈에 띄게 저하됐고,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시장경제로의 체제를 수용한 이후 동독 상품의 해외수요도 폭락하게 됐다.

동유럽 상호 원조기구에 속해 서로 편의를 봐주던 국가들 사이에는 경쟁이 유발됐고, 동독은 소련의 원유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상품들을 헐값으로 해외시장에 내놓아야 했다. 동독 마르크화의 가치는 급락해갔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당의 노력도 소용없게 됐다. 동독 시장은 점점 더 개방돼 갔고 개방될수록 당의 경제적 독점도 급격하게 약화됐다. 1970년 1:1.7이었던 동서독 간 환율은 1988년 1:4.4가 됐다. 동독 마르크의 가치가 무려 3배 정도 하락한 것이다.

동독의 붕괴 직전이던 1988년 당시 자본재의 평균 사용연한이 26년에 달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북한 기업들의 기계와 설비, 장비 등 자본재의 낙후 정도는 더욱 심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개방을 통해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지 않으면 북한 경제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사는 북한의 개방과 공산정권의 권력은 반비례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독재자 김정은과 함께 개방을 추진하고 남북의 평화정착과 공동 번영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말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