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핵-경제 병진노선과 사회통제 시사한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 사진=노동신문

12월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이하 이번 회의)는 규모와 회기, 의제 등에서 파격적이었다. 특히 올해에는 김정은이 집권 후 처음으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아 이번 회의 결과에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이번 회의에서 김정은은 회의 전반을 주관하면서 대미 압박, 반시장화 조치의 강화, 그리고 자력자강의 절실함 등을 강조했다. 결국 이번 회의 전반을 통해 김정은이 강조하고자 한 바는 병진노선으로의 복귀와 사회 통제의 강화, 그를 통한 정권 안보에 다름 아니었다.

북한이 전원회의를 나흘간 개최한 것은 김일성 시대였던 1990년의 6기 17차 대회(1월 5일~9일)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당시는 동독이 붕괴되고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시작되면서 북한 당국이 체제 존속과 관련된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였다. 이번 회의도 나흘간이나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유례없는 대규모의 인원이 참석하여 진행됐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은 당시와 유사한 위기의식을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회의의 의제는 크게 네 가지였다. 조성된 대내외 정세 하에서 당면한 투쟁방향, 조직 문제, 당 중앙위원회 구호집의 수정, 보충 문제, 그리고 조선로동당 창건 75년의 성대한 기념 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노동당의 정세인식과 향후 투쟁방향이다. 회의는 대부분 김정은의 보고와 연설로 이뤄졌다.

김정은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남들 같으면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고 물러앉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첨예화한 대북제재를 대조선 적대시정책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자강력 강화를 통한 사회주의 승리를 강조했다. 이 같은 정세 인식은 그가 강조한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는 투쟁 구호에 온전히 담겨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의지를 역설한 것이다.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새로운 길’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이번 회의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의 정세 인식에서 ‘새로운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윤곽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적대세력이 자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는 데 대해 자신을 지키는 길만이 중단 없이 주저하지 말고 걸어야 할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자위적 핵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으며 핵개발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확인한 것이다.

이 같은 의지는 국방 건설의 목표와 관련하여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강화하자는 선동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은 이번 회의 결정서에서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 공세로 정면 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 것”이라며 핵 무력 강화와 강경한 대미 압박을 예고했다.

김정은은 앞으로 미국이 미북 대화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점은 크게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올해 미국 대선전에서 트럼프의 재선을 위해 북한이 유화 국면의 조성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충격적인 실제행동’과 관련하여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하는 금지선(red line)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과의 협상 중단, 핵·미사일 발사 실험의 재개 등 대미 압박의 수위와 강도를 높인 것이다.

한편, 김정은은 정면 돌파전에서 경제전선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김정은은 정면 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이라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현 시기 경제 부문 앞에 나서는 당면과업으로 제시했다. 뿐만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라며 전체 인민들에게 올 한해도 내핍을 독려했다.

국방건설, 경제전선의 중요성 역설, 그리고 그를 위한 내핍(자강력, 자력부강 등)의 강조는 결국 핵, 경제 병진노선으로 복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병진’이란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김정은의 의도는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다고 판단된다.

김정은은 사회 통제 의지도 명확히 밝혔다. 이번 회의 결정서의 다섯 번째 결정에는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화하고 도덕기강을 세우며 근로단체조직들에서 사상교양사업을 짜고들 것”이라는 점이 명시됐다. 이는 장마당을 위시한 시장화 움직임을 차단하고 사회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하에 더욱 더 강화된 주민 통제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조직 문제에서 김정은은 일부 인사를 정치국 위원 또는 후보위원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먼저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인 리병철이 정치국 위원과 당 부위원장, 군수공업부 부장에 임명됐고 총참모장 박정천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했다. 미사일 개발의 주역인 리병철과 총참모장 박정천의 약진은 김정은의 군사력 강화 의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리병철 외에 리일환 당 근로단체부장과 김덕훈 내각 부총리가 정치국 위원 겸 당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사실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리일환의 정치국 위원 입성은 김정은이 사회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며 김덕훈은 대안전기공장 지배인을 7년간 수행했던 경력으로 미루어보아 김정은의 경제발전 구상을 뒷받침한다. 결국 인사 단행을 통해서도 김정은은 병진노선과 사회통제를 의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 회의에서 김정은은 엄중한 대내외 정세를 인식하며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병진노선으로의 복귀와 사회 통제의 강화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결정은 궁극적으로 정권 안보를 더욱 돈독히 하고 김정은 독재의 안정적인 조건을 완비해 나가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올 한 해도 북한의 진솔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새해 첫날부터 마음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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