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제의’로 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정부

I.
4월 14일 북한이 조평통을 통해 한국의 대화 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 비난하며 ‘대화를 거부했다’고 언론들이 속보로 보도했다. 그러나 남과 북의 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의 대화전술 중의 하나가 실제로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즉 ‘대화의 조건에 대한 대화’에서 이미 얻을 것을 모두 챙긴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대화 전의 이런 대화를 격이 낮은 조평통을 통해 시작한 것이다.


11일에서 13일에 이르기까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비롯하여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켈리 미 국무부 장관이 ‘대화모드’를 천명하자 북한정권이 하루 만에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 당연하다. 원래 지금의 도발 상황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엔제재-북한의 핵실험-유엔제재-북한의 도발-남북대화’라는 익히 알려진 ‘평양 핵정식’의 마지막 코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통일부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김정은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잘못이다. 고민해야 할 사람은 김정은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한국 대통령은 이미 북한의 대화논리 그물에 한 발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대화의 진행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이제 북한의 전형적인 핵도발 양상에서 남북대화의 내용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살펴보자.


한국: 대화하자! 북측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나 보자.
북한: 교활한 술책이다. ‘신뢰’ 운운하는 말장난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결자세부터 버려라.
한국: 우리는 진심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으며, 결코 대결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 유엔제재, 한·미 키 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이 대결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화국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겠다는 남측의 태도가 계속 이런 것이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한국: 훈련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온 것이며, 유엔 제재는 북측의 제3차 핵실험에 대하여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만장일치로 결의한 것이다.
북한: 미국의 핵폭격기, 핵잠수함, 항공모함을 한반도로 불러온 것이 민족분열과 대결자세가 아니면 무엇인가? 유엔제재란 것도 우리의 합법적인 위성발사에 대한 유엔의 불법적인 제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 반기문 사무총장이 CNN을 통해 공화국의 최고 존엄에 최고의 예를 갖추어 백배사죄하며 대화를 희망한 것을 보아도 이 점은 분명하다.
한국: 미국의 전술무기들이 한반도로 이동한 것은 북측이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미국과 한국에 핵전쟁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북측이 말하는 위성발사에 대한 유엔제재는 북측의 미사일 발사를 금지하는 2009년의 유엔 제재를 북측이 어겼기 때문이다.
북한: 2009년의 유엔 제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의한 날강도 짓이라는 점에서 불법적 망동이다. 우리민족끼리 상생보다 외세의 대(對)공화국 공세에 참여하면서 남북 간의 신뢰란 무슨 망발인가?
한국: 우리는 유엔 제재와 별도로 식량, 비료, 의약품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 개성공단도 곧바로 정상화해야 한다.
북한: 뭐하는 짓거리냐? 공화국의 ‘달라 박스’니 뭐니 하면서 헛소리를 하더니 이제 와서 정상화를 요청한다? 또 미제와 함께 이번에는 강력한 유엔 제재가 필요하다느니, 도발에는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느니 하면서, 공화국의 단호한 핵전쟁 의지에 겁이 났는가? 대화고 신뢰고 뭐고 걷어치우자!
한국: (  A  )


만일 박근혜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현을 고집한다면, 괄호 A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하나 혹은 여러 개가 들어갈 수도 있다.


(1) 한·미·중이 주동하여 유엔 제재의 완화를 약속한다.
(2)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북측에 약속한다.
(3) 춘궁기, 농번기를 맞이하여 쌀과 비료 등 경제원조를 약속한다.
(4) 6·15, 10·4 선언 이행을 위한 예비회담을 약속한다.


어떤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이미 별 효력이 없는 유엔 제재는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북한은 유엔 제재를 무력화 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만일 한국정부가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다면 사실 유엔 제재를 하지 않거나 가담하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 경우 유엔 제재를 빌미로 한 북한의 도발 명분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先 제재 後 지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의미 없는 주장이었는지도 명백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또 국제사회가 이 도발에 어떤 제재를 가하더라도 이번처럼 북한이 전쟁위협을 극대화하면 모든 것이 유야무야(有耶無耶)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유엔 제재 혹은 도발에 대한 응징이 ‘동시에 진행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II.
다른 한편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대화를 제안한 목적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현이라기보다는 북한이 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사일 도발을 하였을 경우를 대비한 명분 쌓기, 중국에 대한 압력 높이기, 혹은 도발광증의 ‘김 빼기’였다면, 괄호 A에는 다른 내용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5) 한 번의 대화로 오해를 풀 수는 없다. 다음 대화의 일정을 잡아 보자.
(6) 6자회담에서 유엔 제재의 정당성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7) 한반도 비핵화에 북측이 다시 동참하는 것에 대하여 논의하자.
 
물론 북한은 이런 제안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번 조평통의 성명에서 ‘교활한 술책’이란 말을 쓴 것이다. 참고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처음에 북한은 ‘독이 든 사과’라고 표현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진실성을 시험하였다. 제2연평해전이 이 시험 중의 하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다음 날 일본으로 월드컵을 구경하러 갔다. 햇볕정책이란 ‘대의(大義)’ 앞에 목숨을 다해 적과 싸우다 산화(散華)한 6명의 장병은 잊혀져야만 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위해 ‘도발을 하더라도 대화는 계속된다’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과 사실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마치 무엇인가 심오한 이론이나 경험적 근거를 가진 듯이 언급되고 있는 지금,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서 위와 같은 ‘김 빼기’ 전술을 구사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고민에 빠져야만 하는 측’은 사실 박근혜 정부이지 김정은이 아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유엔제재-도발응징의 동시추진’이라는 자가당착으로 인해 북한과의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 점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그랬고 현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이런 자가당착에서 빠져나오려면 대화 제의의 목적을 김정은의 도발광증의 김빼기로 제한해야 하지만, 이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신념’에 금이 가게 된다.


차라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의 보복 가능성을 감수하느냐, 아니면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체면을 구기느냐의 딜레마에 빠진 김정은을 구해준 것이 이번 한국과 미국의 대화 제의일 가능성이 높다. 이점은 하루 만에 ‘대화거절의 이유를 밝힘으로써 대화 제의를 수용’한 김정은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남북의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던 북한 정권의 제3차 핵실험은 용서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핵탄두의 소형화를 실증할 수도 있는 제4차 핵실험의 날짜는 대화의 기간에 아무런 제재 없이 계속 다가오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핵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북한 정권의 망상을 깨부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드문 기회를 가져온 것은 미국 정부나 한국 정부의 노력이라기보다는 한국 국민의 놀라운 침착함, 의연함 혹은 무관심이었다. 이런 놀라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도 잘못된 대북정책으로 나라의 생존에 위험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자체가 한반도의 위험요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포함하여 대북정책을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하여 다시 검토하고 항상 방향조정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