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 파견’ 아직은 시기상조”

북한이 최근 개성관광 중단 등 초강경 대남 공세전략을 취하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자 국면전환을 위한 방법으로 ‘대북특사 파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북특사론’은 그동안 야당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으나 최근 한나라당 소장파들까지 가세하는 양상이다.

26일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 대북정책을 정리하기 전에 남북 당국자 간 협의를 위해 남북한 양쪽에서 신뢰받는 대북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며 ‘박근혜 특사론’까지 제기했다. 같은 당 정의화, 홍정욱 의원도 이날 남 의원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남 압박 수위를 점차 높여오던 북한이 ‘실질적 행동’에 돌입하자 북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남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대북특사를 파견해 북과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선 여전히 ‘특사파견은 이르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변화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상황은 가변적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아직은 대북특사를 파견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당시에는 ‘대북 특사론’을 주장한 바 있다.

▲정부․여당 “논의 계획 없다”=일단 정부는 대북특사 파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6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외교안보관계부처장관회의 결과를 보고하며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최근 북측의 조치에 대해 ‘의연한 대처’를 주문한바 있다.

김하중 통일부장관도 26일 국회 외통위에서 “좋은 아이디어지만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받을지 확실치 않은 상태고 대북특사가 가서 북한과 대화할 때 만족할 수 있을 만한 답안을 가지고 가야 의미가 있는데 현 시점에선 어렵다”며 ‘시기상조론’을 폈다.

이처럼 정부나 여당의 반대 입장이 분명한 만큼 당장 대북 특사 파견이 추진되기는 어려운 기류지만,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 로드맵이 수립될 경우 핵문제 등에 따른 ‘한미공조’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대북 특사 파견이 고려될 개연성은 남는다.

이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은 자칫 특사 파견이 지난 10년간 북한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정부가 현재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적절한 상황 관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북특사론’ 타당성 있나?=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이 대남 강경조치들을 취하는 것은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에 따른 내부 단속을 위한 측면이 크다”며 “일단 우리의 대북정책 기조를 지키면서 북한을 관망,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특히 “특사를 파견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북한의 행태를 볼 때 설득되는 것이 아니므로 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요구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는 선(先제)대화 제안을 하고 있어 접점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 대북특사를 보내봐야 아무런 결과 없이 우리만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연구위원은 “북한의 초강경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개성공단 탁아소 설치 등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특사를 파견해 북한에 끌려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난 10년간의 불건전한 남북관계를 되풀이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특사, 보낸다면 언제?=다만 전문가들은 특사파견이 필요성이 부각될 경우 그 시점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에 응하거나, 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수립되는 시점이 최적기라고 내다봤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이 대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일 때 특사를 보낼 수 있다”며 “국내 정치공학적 이해로 북한문제를 접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오바마 신정부가 탄생해 미국의 북핵문제에 관한 로드맵이 그려질 시점에 특사를 보내는 것이 오히려 났다”고 주장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특사 파견은 고려돼야 한다”면서도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대 한반도 정책이 수립되면 그 때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북특사, 누가 적합한가?=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 특사로서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근혜 의원 등 정치인이 특사로 파견될 경우 자칫 정치 공학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과거 ‘햇볕정책’ 입안자들의 대북 특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연구위원은 “특사는 현 정부의 대북원칙과 철학, 대통령 의중을 정확히 전할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과거의 인물이나 박근혜 의원 등의 정치적 인사가 아닌 청와대 내 외교안보팀에서 가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도 “특사는 북한이 거부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박근혜, 정두언 의원 등 정치적 인사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