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근대화 프로젝트, 새마을 운동 1

 

이번 시간에는 1960년대 남한의 농촌 근대화 프로젝트, 새마을운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지만 곧장 이어진 6.25 전쟁으로 남한의 국토는 황폐화됩니다. 지극히 낮은 농업 생산성에다 분단 후 북한으로부터의 화학비료 공급 중단등으로 생산 부진과 곡물의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계속되는데요.

미국의 무상 긴급 식량원조와 잉여농산물 도입 등으로 근근이 고비는 넘겼지만 농촌과 농민의 궁핍한 생활상은 극에 달했고, 보릿고개, 춘궁기와 사투를 벌여야했습니다.
식량이 바닥난 농민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농민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가난한 농민들은 여유가 있는 농민으로부터 연리 50%도 넘는 장리쌀을 빌려 겨우 목숨을 이어갑니다. 고비를 넘겼지만 수확기가 되어 생산물로 고리의 빚을 갚고 나면 농민들은 다시 고리채를 빌려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는데요.
이것이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남한의 농촌 실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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