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도 강철환씨 만나라”

▲요덕 15호 수용소의 강제노동 모습

지난 13일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이자 <조선일보> 기자인 강철환씨가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만나 4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강철환씨가 쓴 수기 ‘평양의 수족관(Aquariums of Pyongyang)’(한글판 ‘수용소의 노래’)을 부시 대통령이 읽고 크게 감동했으며 측근들에게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이루어진 전격적인 만남이다.

강철환씨는 북한을 탈출할 때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니, 개인적으로는 그 목표를 향해 성큼 나아간 감개무량한 만남이었을 것이다. 북한인권운동의 견지에서도, 어찌되었든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니 의미 있는 사건 가운데 하나로 다가온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바꿔치기’

필자는 개인적으로 강철환씨와 교분이 있다. 그의 수기 ‘수용소의 노래’에 인생역정과 수용소의 비참한 생활이 잘 나와있지만, 책에 나와있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적잖이 들었다.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는 사실일 것 같으니 이 참에 강철환씨, 그리고 그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던 정치범수용소 동기생 안혁씨의 수기에 담겨있는 ‘비밀’하나를 공개하자.

강철환씨와 안혁씨의 수기에는 정치범수용소 ‘선생님’들의 실명(實名)이 여럿 등장한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수인(囚人)들을 관리하는 보위원들, 즉 간수들을 수용소 내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김선생님, 양선생님, 리선생님…….

이들 중에는 악질적인 보위원도 있고, 다른 보위부들에 비해 수인들을 조금은 인간적으로 대해준 보위원도 있을 것이다. 강씨와 안씨는 수기에서 이런 보위원들의 이름을 ‘바꿔치기’ 했다고 한다. 실제 김선생이 악질적이고 양선생은 인간적이었다면, 수기에서는 양선생을 악질적인 사람, 김선생은 인간적인 사람으로 뒤바꿔놓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두 사람은 자기들이 수기를 쓰면 북한 정권이 그 수기를 어떻게든 구해 읽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용소의 비밀이 어느 정도 새어나갔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럼 보위원들이 수인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상부’에서도 알게 되는데, 수기에서 인간적으로 묘사된 보위원은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럼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악질적인 보위원은 인간적으로 묘사해 ‘엿 먹이고’, 수인들에게 인간적으로 잘해주는 보위원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필자는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런 계산까지 하고 수기를 썼을까. 훗날 필자는 정치범수용소를 경험한 다른 탈북자의 수기를 남한식 맞춤법에 맞게 윤문(潤文)해 준 적이 있는데, 저자와 협의해 그런 식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필자에게 좋은 ‘스킬’ 하나를 알려준 셈이다.

수용소 강제노동으로 일반사회 물품 생산

여전히 남한에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10여명에 가까운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있고 그들의 증언이 방대하고도 일관되어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은 진실을 믿을 것인가. 그런 정권과 화해하고 협력한다니, 그런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반대한다니, 심지어는 그런 정권을 추종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평양에서 개최되고 있는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원래 10여 곳이던 것을 국제사회의 비난여론과 노출우려 때문에 1990년대 초반 5곳으로 통폐합하였다. 그곳에 갇혀있는 수인(囚人)은 15~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수용소는 특별한 수감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고 특정 지역을 완전히 폐쇄하여 자연 자체를 감옥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인공위성으로 촬영하면 일반 주민들의 마을과 다를 바 없이 보인다.

그러나 위성사진에 점으로 찍힌 가옥과 건물, 음영으로 비치는 농장과 산야에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지옥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수인들이 있다. 그들의 신음소리가 들여오고 피 냄새가 전해진다.

수인들은 일반사회에 제공할 질 높은 생산품을 만들어낸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있는 22호 수용소는 농축산물을 주로 생산하고,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25호 수용소는 자전거를 생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함경북도 화성군에 있는 16호 수용소는 외화벌이의 원천이 되는 송이버섯을 채취하고 있고, 함경남도 요덕에 있는 15호 수용소는 광석채취와 농산물 생산을 주로 하고 있다.

“지금 저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의 피눈물을 먹고 마시는 중”

2002년 말 중국에 갔을 때 북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탈출한 평양출신의 탈북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와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식사도중 한국위성방송의 뉴스시간에 고려호텔에서 연회를 하는 자료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보니까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북측 주최로 만찬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탈북자가 숟가락을 식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에이, 나쁜 놈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으니 “지금 저기서 먹는 것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아느냐”고 되레 내게 묻는다. 모르겠다고 하니 “대개 수용소의 생산품들”이라고 한다. 그는 고려호텔에 식료품을 납품하는 업무에 종사한 적이 있었다.

고려호텔에서 외국인에게 대접하는 보쌈요리, 거기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는 22호 수용소에서 들어온다고 한다. 그곳 돼지고기는 질이 좋다고 했다. 고추장도 22호 수용소의 생산품이고, 연회장의 남쪽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송이요리도 16호 수용소 수인들이 채취했거나 나이 어린 인민군 병사들을 동원해 채취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저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의 피눈물을 먹고 마시는 중”이라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TV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노 대통령도 강철환 기자 만나라

물론 그렇다고 방북단이 북한에 가서 먹지고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말은 아니다. 당신들이 북한정권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미몽에 빠져 있을 때, 이렇게 분통을 터트리는 북한 인민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는 경고다. 지금은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머지 않은 날 그것이 북한 인민의 돌팔매질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또 한번의 경고다.

강철환씨는 최근 출판된 ‘수용소의 노래’ 개정판 서문에서 부시 대통령이 자기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면서도 “부시 대통령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탈북자들이 쓴 피눈물나는 수기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썼다. 그의 바람이 허무한 기도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미련일까?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