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친서, HEU 들통 비상 탈출구

▲ 김 위원장의 친서 전문 <사진:연합>

지난 2002년 11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이 용단을 내리면 북한도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는 요지의 친서(親書)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와 존 오버도퍼 존스 홉킨스대 교수는 22일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한 ‘북한을 붙들 순간’이란 제하의 공동 기고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처음 밝혔다.

두 사람은 핵 문제 협의 차 2002년 1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측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친서를 받아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2002년 11월 7일 스티븐 해들리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은 친서를 전달 받으면서 “고맙다”면서도 “나쁜 행동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오버도퍼 교수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은 친서 전달 일주일 후 15일 KEDO 집행이사회를 통해 다음달(12월) 분부터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을 확약한다면 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즉, 북-미 불가침 협정을 체결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 의지를 미국이 묵살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은 당시 ‘불량국가의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면서 “불가침 협정 요구 또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핵개발이 밝혀지자 대처방안으로 만들어 낸 논리”라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미국 책임론을 일축했다.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 전문과 여기에 담겨있는 정치적 함의를 살펴보자.

<친서 전문>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때에 조미관계에서도 현 위기가 극복되고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번에 발생한 핵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하면서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군사적인 위협을 로골적으로 가하는데로부터 생긴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확약한다면 새로운 세기의 요구에 만제 핵문제도 해결할수 있는 방도가 생길수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부쉬 대통령이 우리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한데 대해 류의하며 중요한것은 미국이 불가침을 법적으로 담보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용단을 내리면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해 나갈것입니다』(원문 그대로 인용)

◆북한, 친서 왜 보냈나?

미국과 정치적 협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2002년 11월 당시 북한은 제네바 합의 파기에 대한 책임, 그에 따른 제재를 회피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북한은 ‘불가침 협정 체결과 핵 포기’라는 새로운 협상 국면을 통해 북한의 요구를 관철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이 친서를 보낸 시기는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끝내고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던 때였다. 미국이 모든 관심을 이라크에 쏟아 붓고 있을 틈을 타서 미국과 정치적 타결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친서까지 보내 미국에 협상을 요구한 것은 실제 극도의 위기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2002년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자 핵을 지렛대로 미국과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HEU 프로그램 인정했나?

친서 내용 중 “이번에 발생한 핵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하면서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군사적인 위협을 로골적으로 가하는데로부터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는 대목이 있다. 북한의 새로운 핵 프로그램은 미국의 위협 때문에 자위수단으로 추진했으며, 그러한 핵문제가 실제 존재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의 협상 전력을 볼 때 이 같은 언급은 HEU프로그램 존재를 사실상 시인한 것과 다름없다. 친서를 공개한 오버도퍼 교수는 이달 중순 방한(訪韓)해서 한 세미나에 참석, “북한 강석주 제1부상과 핵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과정에서 강 부상이 이(HEU 프로그램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2002년 10월 북한 방문을 통해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시인했다는 미국측 주장을 반박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북핵 협상 과정에서 HEU 프로그램 존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이를 부인하고 있다.

HEU 프로그램과 관련, 미국은 리비아에 반입된 농축우라늄 원료인 6불화우라늄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북한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슷한 시기에 리비아의 자금이 북한으로 두 차례 송금됐다는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파키스탄 핵 개발 책임자였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북한 HEU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다.

◆ 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 요구 배경은?

북-미 불가침 협정 요구는 2002년 10월 북한이 HEU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하면서 그 책임을 미국에 떠 넘기기 위해 처음 사용한 논리이다.

북한은 90년대 후반까지 남한과는 불가침 협정, 미국과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이 HEU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시인하면서부터 바뀌게 됐다. 이전까지 북한은 핵개발에 대해서도 평화적 사용목적임을 강조했고, 주변국의 핵무기 개발 의심에도 ‘악의적인 왜곡”이라고 대응했다.

HEU 프로그램 보유가 들통나면서 더 이상 핵개발 시도를 부인하기 어려워지자 미국이 북한 체제를 공격하려고 하기 때문에 핵 개발을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선전 전략은 최근까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미간 불가침 협정 체결은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사항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사상 전례가 없고, 역사적으로도 불가침 조약을 맺은 당사국끼리는 대부분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미국은 불가침 협정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다자 안전보장을 제안하고 있는 상태다.

◆ 미국은 왜 거부했나?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시인을 실질적인 ‘핵협박’으로 보고 1994년과 같이 보상을 통한 해결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세 가지가 있다. ▲제네바 합의를 어긴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 ▲클린턴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 실패 판단 ▲주변국 공조를 통한 북핵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폐기를 추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시 행정부는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친서를 받기 한 달 전에 미국은 북한과 대화 재개를 위한 주도권(initiative)을 취할 계획이 없음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친서에서 ‘미국 위협에 대한 자위적 차원 핵개발, 선(先) 안정보장 후 핵문제 해결’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북한은 최근에도 이런 입장에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체제 보장 방법에 대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다자안전보장안을 제안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핵 보유국 지위를 요구하고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