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에게 ‘강성대국의 길’은 없다

데일리NK가 실행 직전에 보도한 북한의 화폐개혁은 말 그대로 세계적 특종이었다.


그리고 이 보도의 의미는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평가하듯이 북한의 자생적인 시장경제, 즉 장마당과 북한의 지배체제의 유지가 같이 갈 수 없다는 김정일 정권의 절박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올해 초, 북한체제 붕괴의 필연성이 장마당경제의 확대에 있으며, 설사 북한 정권이 시장경제의 싹을 자르기 위해 그 어떤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결국 실패하여, 북한체제의 붕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그때 언급한 사태가 시작되고 있음을, 마치 지평선 너머 먼 곳에서 들리는 뇌우처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의 장마당 경제가 북한 체제와 같이 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논리적으로 김정일 정권이 이 장마당 경제를 질식시키려고 하리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고, 또 그동안 김정일정권은 장마당 통제를 여러 차례 시도하였었다.


마찬가지로 화폐개혁의 결과가 무엇일지에 대한 논리적 분석은 모든 예측이 그렇듯이 불확실성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큰 줄거리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즉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선 확인해야 할 점은 이번 화폐개혁의 결과는 ‘북한체제의 유지’ 혹은 ‘붕괴의 시작’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그 중간 상태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북한정권이 수 없이 시도하였던 시장 경제의 축소는 대부분 실패하였지만, 그것은 이런 시도 전후에 시장에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장마당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의 나이에 제한을 둔다 하여도, 장마당의 존재나 규모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상인들이 본 물적, 정신적 피해는 다시 복구될 수가 없다.


즉 화폐개혁의 전과 후는 매우 다른 세상인 것이다. 만일 이번 화폐개혁 조치로 장마당 경제를 결정적으로 위축시키지 못하고 다시 과거의 자생적 시장경제로 복귀할 경우, 이번 화폐개혁이 마지막 극약처방이었다는 점에서 김정일 정권의 권위는 빠른 속도로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권위 없는 정권이 몰락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번 화폐개혁이 김정일의 시각에서 볼 때 성공할 경우란 무엇일까? 그것은 북한 주민이 다시 국영기업이나 협동농장으로 복귀하고, 이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수입이 있을 경우를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화폐개혁을 통해 북한이 과거의 사회주의 경제로의 복귀를 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북한정권은 시장을 폐쇄하고 직장에 복귀한 주민에 한하여 국영상점을 통한 배급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강제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로의 복귀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번 화폐개혁에서 북한의 신흥 부유층, 즉 북한 정권과 유착하여 장마당의 영세상인들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었던 도매상 내지는 무역상들이 화폐개혁 조치로부터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거액의 외화를 다루고 있는 이들은 이미 북한돈을 외화로 바꿔 놓았거나 아니면  제한 없이 구화폐를 신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을 것이고, 사실 이 둘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에게는 제한 없이 화폐교환이 가능하다는 말은, 이들과 거래하던 북한의 신흥 자본주들 역시 그러한 통로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이들 신흥자본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신흥자본가들을 김정일이 체제위협세력으로 볼지라도 쉽게 제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즉 시장을 폐쇄하였을 경우에 누가 생필품을 조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국가 아니면 이들 신흥자본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국가가 북한주민에게 식량과 기타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면, 장마당 경제가 번창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즉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로부터 강탈한 재원과 이들 신흥자본가들이 축적한 자본을 통하여 북한 경제체제를 과거의 배급경제로 돌리려고 시도할 것이다.


특히 시장 폐쇄 후 먹고사는 문제가 중단되었을 경우 체제에 위기가 오리라는 점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고난의 행군과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여기서 일단 핵폐기 내지는 핵동결을 빙자하여 미국이나 한국의 원조를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의 신흥부자들이 통제경제 복귀에 참여하리라는 예상은, 한편으로는 이들이 김정일 체제의 수혜자라는 점과 ‘총과 수용소’라는 김정일의 폭력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참여에는 사회적 특혜가 따를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들은 사업상의 반대급부를 반드시 원할 것이다.


김정일 본인이 합법, 비합법 무역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이를 맡아 하는 외화벌이꾼들에게 하사금을 내리는 것을 보면, 바로 그가 북한의 최대 자본가, 무역상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즉 김정일은 폭력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지만, 인센티브의 효용성도 알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은 양자 모두 포기할 수 없으며, 이번 화폐개혁에서 폭력은 북한의 장마당세력에게 행사하고, 인센티브는 북한의 신흥부유층에게 줄 것이다.


바꿔 말해, 김정일의 시장폐쇄와 통제경제로의 회귀는 사회주의적 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통제를 통한 노동력 갈취에 있으며, 결국 고전적 사회주의 통제경제로 북한은 돌아갈 수 없다.북한 체제는 이미 극도로 왜곡되어 있고, 그 왜곡은 김정일 개인의 능력이나 화폐개혁과 같은 극단적 조치로는 결코 시정될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결탁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오래갈 지이다.


만일 김정일이 이들 신흥 부유층이 군부 등 다른 세력과 결탁하여 김정일 왕조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거하려 할 경우, 김정일의 도박은 그 위험성이 훨씬 커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당분간 이들과 결탁을 계속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세력의 연합은 아니다.


왜곡의 시정은 또 다른 왜곡을 낳을 것이고, 이때 축적된 북한 상하층 모두의 깊은 불만과 불안은 다시 기아가 찾아오거나 김정일의 사망과 같은 사건이 벌어질 경우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알 수 없다.


단기적으로도 화폐개혁 이후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한 현 상태에서, 만일 김정일이 의식주 문제를 시장폐쇄 이전보다 더 열악한 상황으로 빠뜨릴 경우 그것만으로도 북한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대비해야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