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중 블로그] 김정일 유격조교의 한-미-일 PT체조 강습

군대에 ‘PT체조’라는 것이 있습니다. PT는 Physical Trainig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신체의 특정부위를 과격하게 움직이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신체단련의 효과를 얻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동작으로 팔 벌려 뛰기, 쪼그려 뻗치기,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등이 있죠.

군대에 갔다 온 분들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입니다. 요새 대학엔 이런 군사문화가 없어졌을 테지만, 여성분 가운데에도 혹시 학과나 동아리 MT 같은 데에서 한번쯤 해본 분들이 있을 겁니다.

PT의 룰 – “마지막에는 일사분란한 침묵”

군대에서 PT체조는 ‘유격훈련’과 함께 떠오르죠. 유격훈련 한번 제대로 받고 나면 빨간색 모자만 봐도 신물이 납니다. 유격조교들이 챙이 기다란 빨강 유격모자를 쓰고 있거든요.

한국 군대에만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PT체조를 실시할 때 하나의 ‘룰’이 있습니다. ‘마지막 구령은 복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단체로 ‘팔 벌려 뛰기’를 50회 실시할 때, 49까지는 우렁찬 목소리로 숫자를 외치다가도 마지막 ‘50’은 외치지 않고 침묵 속에 동작을 멈춰야 합니다. 집단에서 단 한 명이라도 ‘50’을 외치면 유격조교는 가차없이 “다시!”를 외칩니다. 정말 미칠 노릇이죠.

땀을 뻘뻘 흘리며 50개를 다 했는데 한 두 동료의 실수로 인해 다시 50번을 반복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그가 옆 자리에 있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 PT체조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것입니다. 악랄한 조교는 한번씩 실수할 때마다 체조 횟수를 배로 늘려나갑니다. 처음엔 20개로 시작했는데 누군가 ‘20’을 외치는 바람에 40개, 80개……. 이렇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PT체조를 하는 집단은 ‘마지막 구령은 절대 복창 않는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기 위한 의도일까요?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게 하려는 의도일까요? 아무튼 군대에는 아직껏 이것이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는 군요.

한 달만 ‘폭정’을 말하지 말라?

지금 한국과 미국은 김정일 유격조교가 지도하는 PT체조를 하는 중입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미국 고위 관리들에게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최근 미국 고위 관리들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언급한 것은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말입니다. 아참, ‘반기문 훈련병’이라고 표현해야겠군요.

반 장관의 불만인즉,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가 “미국이 앞으로 한 달 만이라도 ‘폭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는데 미국 정부 관리들이 도대체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죠.

한성렬은 김정일 유격조교의 한참 졸병인 조교로, 김정일의 ‘트레이닝 지시’를 그대로 전한 것이지요. 한성렬은 “미 국무부의 대북특사인 디트러니 이상의 관리들이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된다”고, 친절하게도 ‘누구 누구 이상은 그런 말 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까지 정해줬습니다. PT체조에 앞서 “팔은 90도 각도로 정확히 벌린다, 특히 앞에 두 줄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는 유격조교의 근엄한 말투가 연상됩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무엄하고 발칙하게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아직도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보느냐”는 질문에 “북한 정권의 성격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존의 생각을 재확인했고, 인권 ▪ 민주주의와 관련한 국제문제를 담당하는 폴라 도브리안스키 국무부 차관도 허드슨 연구소 주최의 세미나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에 포함시켰습니다.

물론 라이스의 발언은 한성렬의 부탁(혹은 지시?)이 있기 전이었고, 도브리안스키는 한성렬의 발언 직후여서 그러한 내용을 전달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여기에 화들짝 놀란 반기문 장관이 ‘대체 미국 왜 그러냐’며 인상을 찌푸렸고, 여당 정치인들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친여(親與) 언론매체들이 이것을 거들고 남한 민화협까지 유감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미국에 대한 경고(혹은 애원?)이겠지요.

‘폭정’ 말 안 한다고 폭정이 ‘선정’되나

참 재미있는 모양새입니다. 김정일 유격조교가 지도하는 PT체조 참가인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령은 복창하지마!”라고 하니까 너도나도 입 단속을 하면서 침묵 속에 마지막 동작을 마치려고 애를 쓰는, PT체조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상전의 고귀한 명령에 따라 마지막 구령소리 복창 하면 큰일이나 날 듯 “아이고 무셔라~” 몸을 사리는, 세상에 이렇게 ‘웃기는 짬뽕’들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렴 좋습니다. 김정일 유교조교의 지시대로 한 ▪ 미 ▪ 일이 어깨동무하고 뜀뛰기 하면서 마지막 구령 ‘50’은 절대 외치지 말기로 합시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점잖은 표현대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주면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명분을 열어주면서, 그렇게 조용히 한 달을 보내도록 합시다. 반 장관의 요청에 라이스도 “유념하겠다”고 했으니 미국도 특별히 ‘태클’을 걸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달 동안만이라도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 한 달 후에는 말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때는 ‘폭정의 전초기지’보다 더 심한 말 – 사실은 북한을 보다 진실에 가깝게 표현한 말 – 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까?

그럼 한 달 후에는 폭정의 전초기지가 선정(善政)의 전초기지로 바뀐답니까? 앞으로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북한의 ‘폭정’이 사라진답디까? 김정일 유교조교 주최의 PT체조에 가담하고 싶은 않은 본인은 이런 지시사항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민족공조’ 리모콘은 ‘민주공조’로 업그레이드 돼야

이런 엉터리 지시사항을 잘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정일 유격조교의 지시에 따라 통일부장관은 상기된 표정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김정일 위원장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라고 읊어대는 중이고, 외교통상부장관은 유격조교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동맹국에 ‘유감’까지 표시하고(북한핵에 그런 유감을 표시해보시라!), 여당 의원들은 쪼르르 몰려다니며 “미국 안 돼요, 안돼!”를 외쳐대고, 친여 앵무새 언론들은 물 만난 듯 “미국이 문제야~”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세상에 이런 PT체조, 쉽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김정일 유격조교는 훈련장에 나오지도 않고 북쪽 막사에 발 뻗고 누워 리모콘 하나만으로 이렇듯 일사분란하게 훈련병들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쯤 흐뭇하게 남쪽을 내려다보면서 “동작봐라, 동작!”하고 소리 지르며 낄낄 거리고 있겠지요.

김정일의 만능 리모콘 ‘민족공조’. 이 리모콘은 지금 ‘반미(反美)공조’로 성능이 업그레이드 되는 중입니다.

이 웃기는 PT체조는 리모콘의 성능이 떨어짐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격조교가 사라짐으로써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때야 말로 우리는 ‘민족공조’ 리모콘을 힘차게 눌러 북한을 재건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민족공조’ 리모콘은 ‘민주(民主)공조’로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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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