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통치 자신감 과시…김부자 아바타 한계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급사하면서 후계자 김정은 체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목됐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는 “(김정일 사망은) 장기적인 불확실성에 해당하는 요소로 북한 체제를 위협할 것”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즈(NYT)는 김정은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의 체제를 완전히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외교가의 평가도 유사했다. 김정일에 비해 후계구축 기간이 짧고 김정은의 일천한 경력과 어린 나이 등이 3대 세습체제의 불안요소가 될 것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정은이 보여준 권력 장악 과정은 비교적 안정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달 8일 “북한의 권력 승계는 비교적 안정되게 이뤄졌다”며 “김정은이 통치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차려준 권력 구도를 상당 부분 변형시켰다. 아버지 후광과 자신의 권력의지를 통해 당과 군을 차근차근 장악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성급히 자신의 사람들로 후계자 시절부터 당과 군부 핵심 인사을 물갈이했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지난해 12월 30일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軍)을 장악한 그는 유훈(遺訓)관철을 강조하면서 당대표자회(4·11), 최고인민회의(4·13)를 잇따라 개최해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에 올라, 권력승계를 마무리했다.


김정은은 당 규약에 ‘노동당은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라고 명시했고, 헌법 서문에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의 영도를 계승했다’는 내용과 함께 ‘핵보유국’임을 부각시켰다. 김일성(주체사상), 김정일(선군사상)의 ‘지도사상’을 모두 계승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 최고 지도기관’으로서 노동당의 위상을 재정립했고, 권력요직에 최측근을 포진시켰다. 당에서 잔뼈가 굵은 최룡해를 북한군 총정치국장에 앉혀 사실상 군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했고, 김경희·정성택에 당과 국가의 요직을 맡겼다.


이후 3개월여 만에 ‘실세 중의 실세’로 평가받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하고, 김격식을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하는 등 군과 내각의 주요 인사들을 대거 물갈이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리더십 교체에 따른 마지막 정비수순”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체제의 안정감과 김정은의 통치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한 대북 전문가는 “예상외로 빠른 시일 내 권력을 안착시켰다”면서 “다만,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1인 절대 권력이 ‘패밀리 권력’으로 변화한 특징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김정은은 권력구축 과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적극 활용했다. 김정일의 유훈이라며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동상 등 우상화물에 13억 달러를 쏟아 부은 것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애국주의’를 내세워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통치스타일에 있어서도 ‘은둔형 지도자’였던 김정일과 달리 적극적인 공개 행보로 ‘개방형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나선 것도 체제구축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김정은 체제는 안정화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아직 ‘유일권력’을 휘둘렀던 김일성·김정일 시대보다는 권력집중이 미완성이고 기강 해이 등 불안요소가 엿보이지만, 단시일 내 급격한 체제이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일단 안정적으로 모든 지위를 이어받으며 후계체제 구축에 집중한 한 해였다”며 “아직 군부 인사 등 체제를 재정비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정책적 변화를 설정해서 통치에 반영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