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개활지서 울린 총성…김정은 시대 잔혹한 공개처형 여전”

TJWG, '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보고서' 공개...이영환 대표 "증가하는 '실내처형' 파악·기록 향후 과제"

북한 내 처형장소 관한 진술, 김정은 시기 처형장소에 관한 진술. /사진=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 국제적 압력에 대한 북한의 반응 보고서 캡처

북한의 공개처형 장소와 암매장 등 시체 처리장소, 인권침해 관련문서나 증거가 있을만한 장소들을 파악하고 기록한 보고서가 발간돼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시기 공개처형은 주로 개활지, 들판 등에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조사기록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15일 6년간 총 683명의 탈북민을 인터뷰한 기록을 토대로 작성한 ‘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 2019년 발표한 ‘살해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 : 북한정권의 처형과 암매장’을 업데이트한 보고서다.

TJWG는 “인권침해 관련 위치들을 공간 지리적으로 매핑하면 서술 증언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 정보나 패턴을 포착하고 시각화할 수 있다”며 “이 프로젝트는 위성사진을 활용하여 탈북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위치들을 파악하고, 정보수집과 분석 등 전 과정에 공간 지리 정보(GIS)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처형에 관한 442건의 진술과 암매장과 소각 등 시체 처리 장소에 관한 30개의 증언이 담겨있다. 특히, 보고서에는 김정은 시대 처형 장소에 관한 증언 27건, 그중 공개처형에 관한 진술은 23건도 포함돼 있다.

공개 처형된 사람들에게 부과된 혐의로 언급된 빈도는 남한 영상 시청·배포(7건), 마약 관련(5건), 성매매(5건), 인신매매(4건), 살인·살인미수(3건), 음란행위(3건) 순이다.

이와 관련, 북한 형법상 성매매(매음죄 249조), 음란행위(음탕한 행위죄 250조)는 최고 형량이 노동교화 5년 이하다. 북한이 사회주의 생활문화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초법적인 본보기 처형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공개처형 진술 중 21건은 총살, 2건은 교수형에 관한 내용이라며 공개처형은 주로 개활지와 들판, 비행장 일대, 강둑, 언덕·산에서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넓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 공개처형을 진행하는 것은 강한 폭력을 통한 공포감으로 주민들을 통제하고 사상적 이완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처형 전 피고인을 고문하거나 집행 이후 시신을 훼손하는 등 비인도적인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증언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김 위원장을 자비로운 지도자로 선전하려고 한 사례가 다수가 포착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공포통치를 통해 주민들을 통제하면서도 자애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모양새다.

혜산시 처형 장소 진술 묶음 비교. /사진=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 국제적 압력에 대한 북한의 반응 보고서 캡처

그러나 북한은 공개처형 관련 정보 유출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실내처형이 늘어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고 단체는 밝혔다.

TJWG는 “김정은 체제 아래 북한당국이 국제 비판을 의식해 처형사건 소식의 외부세계 유출 차단을 막는 데에 혈안이다”면서 “정보 유출을 통제하기 쉬운 곳을 처형장소로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변화가 보인다”고 말했다.

박아영 TJWG 연구원은 “우리가 파악한 바들은 김정은 정권이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적 감시 강화에 더욱 신경 쓰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다만, 신경 쓴다는 것이지 인권상황의 개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수시로 공개처형을 벌여 주민들을 두렵게 하려던 과거에 비해, 김정은 시기에는 일반 주민들에게 덜 노출하고 집행하는 처형이 많아진 것을 보인다”며 “비밀처형이나 ‘실내처형’ 같은 비공개처형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본지는 이달 초 북한이 실내처형을 법적·행정적으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소식통은 사회안전성과 법무부가 ‘법조별 형 집행 방식 부칙’ 규정에 남조선(남한) 콘텐츠를 유입하고 유포한 자는 전부 실내 처형하라는 내용을 삽입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북한, ‘정보 유출입 행위 실내 처형’ 명시 ‘형 집행 부칙’도 내놨다)

북한 혜산시 공개재판에 쓰인 장소. /사진=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 국제적 압력에 대한 북한의 반응 보고서 캡처

한편, 이번 보고서는 북한 북동부의 양강도 혜산시를 선정하여 새 데이터와 심층 분석을 제시했다는 점이 새로운 측면이라고 단체는 밝혔다.

보고서는 혜산에서 발생한 10건의 처형에 관한 진술이 담겨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개처형은 중국과의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혜산시 중심부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혜산비행장 활주로 주변 언덕이나 개활지에서 주로 집행됐다. 일부 공개처형이 줄어든 것 같다는 진술이 있었지만, 비밀처형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혜산시에서 발생한 26건의 공개재판에 관한 내용도 보고서에는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공개재판으로 피심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현장에서 즉각 처형되지 않은 경우 4건에 대한 기록과 공개재판에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동원하여 참관하도록 했다는 증언도 기록돼 있다.

보고서 전문은 TJWG 홈페이지(https://en.tjwg.org/mapping-project-north-korea/)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