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칼럼] ‘북한 비핵화’ 협상,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지난 10월 발사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3호’. /사진=조선중앙통신

지난해 4월 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만 해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KTX에 올라탄 듯이 보였다. 하지만 많은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019. 2. 28.)이 결렬된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은 횡보를 거듭해 왔다. 이런 답보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만남을 갖기도 했지만, 어떤 결실도 맺지 못한 채 그야말로 ‘만남을 위한 만남’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전술 유도무기 사격시험(4.17)을 시작으로 13차례에 걸쳐 이스칸데르 미사일, 대구경 방사포 등 장거리 발사체를 시험 발사하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신형잠수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는 등 핵·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향상시켜 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가지고 나오길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고 한 시한이 다가오자, 최선희 부상을 비롯한 북한 고위인사들은 “시간도 줬고 신뢰 구축 조치도 취했지만, 우리가 받은 상응 조치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가 받아낸 것은 배신감뿐”이라고 미국에 압박을 가하더니 급기야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말했다. 지난 1년여간 관계국 지도자들의 희망적인 수사(修辭)와 달리, 북한 비핵화 협상이 결렬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동향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12.7)에서 ‘최근의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출발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2017. 9)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는 목적을 묻는 윤영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기본적으로 핵 개발 초기 단계에서 지금까지 체제 생존을 위해 이뤄지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북한도 ‘핵 개발은 체제보장용’이라고 일관하게 주장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비핵화 협상은 이런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북핵이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체제보장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지난 2005년 9월 19일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4차 6자 회담을 베이징에서 열고,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 합의문에서 1) DPRK(북한)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약속했고, 빠른 시일 내에 NPT(핵확산금지조약)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보장 감독으로 복귀할 것을 약속하는 한편 2) 미국은 한반도의 핵무기가 없으며,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구속력이 높은 다자간 합의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을 약속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다음 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는 북한 핵은 ‘체제보장용’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다.

둘째, 설사 북한 핵이 ‘체제보장용’이라 해도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주권·영토·국민이라는 3요소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체제 수호라고 한다면 이 3요소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이라고 하는 ‘현존 절대 권력자’를 뇌수(腦髓)로 해서 돌아가는 체제이다. 그리고 전체 주민은 물론이고 노동당이나 국가의 모든 권력과 규범은 이런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북한이 주장하는 체제보장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체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체제보장인 것이다.

종래 북한에게 대한민국은 ‘미제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시켜야 하는 사회주의 혁명 수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동구 사회주의 국가 몰락, 특히 독일 통일 이후 상황이 일변했다. 이제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은 미국이 아니라,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에다 북한의 50배에 달하는 경제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북한이 ‘흡수통일’이니, ‘제도통일’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런 위협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채택한 대남전략과 수단이 다름 아닌 핵·미사일 개발이다. 즉, 대한민국을 무력 점령해서 ‘(김정은) 체제보장’을 위해 보유하려는 것이 핵과 미사일이다. 바꿔말하면, 북한은 무력통일을 달성할 때까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대북 제재 완화나 경제지원과 같은 유인책으로는 북한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핵이 체제보장용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북한 비핵화’ 협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을 가고 싶으면 새마을호든, KTX든 경부선을 타야 한다. 호남선을 타고서는 절대로 부산에 갈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작금의 국론 분열적인 현상과 관련, 임진왜란의 교훈을 되새겨 본다. 역사는 충무공을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는 것으로 결론 맺었지만, 당시 통치자(선조)가 다음 두 번의 기회 중에 한 번만이라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첫째가 이이(李珥)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이는 통찰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매우 당연하고 흔하게 저질러지는 실수이지만, 안보 실무자들은 ‘첩보가 없으면 상황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지도자의 통찰력이다. 둘째, 올바른 정보의 선택이다. 임란 발생 2년 전, 조선은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에 보내 도요토미의 의중을 알아보게 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두 사람의 상반된 보고를 받은 선조는 안이한 생각으로 ‘침략할 만한 움직임이 없다’는 보고를 택하고, 결과는 온 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고 선조 자신은 의주로 몽진(蒙塵)하는 수모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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