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이념 공방 커질수록 舊당권파 웃는다

정치권에서 ‘종북(從北) 대 매카시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으로 촉발됐던 통합진보당 사태가 여야 이념 공방으로 비화되면서 전말이 호도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현재 여권은 종북 커밍아웃을 종용하고, 야권은 매카시즘이라고 반박하는 형국이다. 새누리당 내에선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도부는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8일 “지금 정치권에서는 종북이니, 간첩 출신까지도 국회의원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마당이다”고 했고, 같은당 정우택 의원은 “민주당에도 종북이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민주당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색깔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지금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완전히 회귀한 것 같다. 함께 뭉쳐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을 헤쳐 나가야 된다”고 했고, 박용진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종북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야 이념 논쟁으로 종북 문제 묻힐 수도” 


당초 정치권의 초점은 통진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 여부였다. 통진당 내부에서 벌어진 불법행위를 국회 윤리위 제소 제명 절차를 밟으면 되는 문제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이들 의원에 대해 자격심사를 통해 제명절차를 밟는데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의원에 대한 사퇴 촉구’ 발언, 임수경 민주당 의원의 ‘탈북자=변절자’ 막말 파문, 이해찬 의원의 ‘북한인권법은 내정간섭’ 발언으로 정치권 전체가 이념공방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사태의 본질인 통진당 내 구당권파의 불법행위가 여야의 이념공방에 가리고 만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이념공방의 악순환이 무한 증폭되는 상황이다”며 “정치권은 통진당 부정경선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돈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도 8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국회의원을 상대로 일일이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무리고 설득력이 없다”면서 “통진당 내 특정계파를 넘어 대상을 확산시키면 이것이 오히려 지나치다는 비판에 봉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불법을 저지른 정치인들이 자신을 색깔론의 희생자로 포장해 책임을 비켜갈 것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통진당 내 ‘종북 정화’라는 목표조차 ‘매카시즘’ 공세에 묻힐 가능성도 있다.


실제 사상이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제명을 추진하는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시각도 많다. 제명권한은 국회 고유의 역할이지만, 위법사실이 불분명하고 야권의 반대와 국민적 합의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밀어붙이게 되면 오히려 국민여론 분열을 야기해 통진당 구당권파의 불법행위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사퇴에 찬성 입장을 보였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 “통진당은 공당으로서 북한의 주체사상·3대 세습·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면서도 “우리 헌법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이분(국회의원)들은 침묵의 자유가 있다”고 했다.


이상돈 전 비상대책위원도 “국회의원을 제명하거나 자격심사로 축출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공안기관이 범법의 사실이 있다면 그것을 수사하고 법에 의해 처리하는 그런 길을 가야한다”고 했다.


“종북 세력 걸러내는 검증 틀 구축해야”


따라서 정치권은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와 통진당 내 종북세력의 본질을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통진당 관계자는 “여야의 이념공방으로 논점이 흐려지면 자칫 6월 29일(전당대회) ‘왕의 귀환’을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이석기, 김재연 의원과 조윤숙, 황선 비례대표 후보자는 당기위의 제명 결정이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은 “계엄하에 군사재판도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사퇴할 가능성이 낮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입법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국가관, 북한의 3대 세습과 수력독재에 침묵하는 정치행태, 과거 종북 활동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세력에 대한 검증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교수는 “구당권파의 행태는 전면적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면서 “한국의 진보진영이 이번 계기로 북한의 3대 세습, 핵문제, 인권문제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민생에 주력하는 올바른 진보의 선두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국민 여론의 힘으로 구당권파의 종북과 반민주주의 행태를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면서 “국민 여론으로 그들이 다시 살아날 수 없도록 각 정당에 압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국회 내에서 무력하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