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IA, 푸에블로호 나포 20일전 예상”

미 정보당국은 지난 1968년 1월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정인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군에 나포되기 20일 이전에 이미 북한군의 푸에블로호 나포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12일 드러났다.

또 미 해군은 푸에블로호 이외에 `배너호’라는 또다른 정보수집함정을 투입, 푸에블로호와 각각 다른 시간에 대북정보수집활동을 벌이도록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첩보담당 부국장인 R.J.스미스가 1968년 1월2일 작성, 1급 비밀로 분류.관리해오다가 최근 비밀문서에서 해제한 `1968년 1월 JRC(합동정찰사령부) 월간 정찰일정계획(JRC Monthly Reconnaissance Schedule for January 1968)’에서 확인됐다.

문서에 따르면 CIA는 “미 해군 군함 배너(USS BANNER)호의 자매함인 푸에블로(USS PUEBLO)호가 신호정보수집(SIGINT.최첨단 장비를 사용해 적국의 각종 신호정보를 포착, 정보를 수집하는 것)함대에 추가될 것”이라면서 “두 함정은 신호정보수집 함정의 새로운 활동지역인 북한 영해에서 각각 다른 시간에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서는 “현재 북한이 DMZ(비무장지대)와, 북한 영해에 침입한 남한 선박들에 대해 보이는 적대적 태도나 활동에 비춰볼 때 북한이 이들 함정에 대해 모종의 대응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It is possible that they might choose to take some sort of action against these ships.)”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문서는 작성 다음 날인 1968년 1월3일 결재를 받아 집행됐다.

한편, 북한은 1968년 1월 23일 오후 원산 앞바다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던 푸에블로호를 P-4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를 동원해 나포했다.

푸에블로호는 1967년 12월 2일, 일본 사세보(佐世保)항의 미 해군기지를 출발해 첩보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며 함장 로이드 부커(Lloyd M. Bucher)를 비롯해 장교 6명, 병사 75명, 민간인 2명, 총 83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은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해 나포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나포 당시 푸에블로호는 원산항에서 40km 지점의 공해상에 있었다고 반박하며 나포사건이 북한의 불법적인 군사도발이라고 비난했다.

미군의 정보수집함정이 다른 나라 군대에 의해 나포된 것은 미 해군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로 미 해군에겐 엄청난 수치를 안겨준 사건이었다.

미국은 당시 이 사건을 미국에 대한 전쟁행위라고 규정한 뒤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 앞바다에 출동시킨 데 이어 항공모함 2척을 추가 배치하고,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공군전투기 360여대를 한반도 주변으로 전진배치하는 등 군사적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하지만 미국은 1968년 2월1일부터 10개월간 비밀협상 끝에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영해를 침범한 사실을 시인하고 북한에 공식 사과한 뒤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나포과정에 숨진 시신 1구를 판문점을 통해 넘겨받았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선체와 장비는 돌려주지 않았으며 지금도 북미간에는 푸에블로호 송환 문제가 간혹 거론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