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중-러 양다리 외교 언제까지 가나?

오늘 아침 북한이 2월 10일 핵보유 선언 전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에만 사전에 통보해주는 바람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지도부가 엄청난 불만을 터뜨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는 과거 북한의 외교행태를 미루어 보아 개연성이 충분하다.

과거 북-중-러 3국은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혈맹관계를 이어왔다. 소련의 ‘붉은 군대’가 북한을 해방했고 북한정권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북-소 관계는 의리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도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북한과 계급적 ‘형제’가 됐다. 북한은 안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중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 이들 국가가 한반도를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이 ‘투정’을 부려도 받아준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북-중 혈맹관계 금 가나?

해방 후 북한의 공식행사에는 만세 구호에도 순서가 있었다. “조(북)- 소- 중 친선단결 만세”였다. 그런데 흐루시초프 이후 소련이 이른바 수정주의를 하면서 이 만세의 순서가 바뀌었다. 중국에 문화혁명이 촉발될 무렵인 68년경부터는 “조-중-소 친선단결 만세”로 되었다.

56년 소련의 후르시초프가 집권하면서 스탈린을 비판하고 미국과 전략무기 감축에 대해 협상하고 나서자, 김일성은 “소련이 수정주의를 한다”며 후르시초프를 ‘미국의 앞잡이’, ‘백 대가리’라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과 더불어 소련의 대국주의를 반대하는 동맹관계를 강화했다. 그후 북-소 관계는 큰 진전이 없었고, 고르바초프 시기 남한이 소련에 준 경제차관 23억 달러를 놓고 김일성은 소련을 맹비난했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의리 없는 행동이니, 비굴한 추파니 하며 소련을 비난하고 기존의 양국 간의 조약과 약속도 파기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한편 1979년부터 중국은 개혁개방을 내걸고 자본주의 나라들과 활발한 경제활동을 벌이면서 북한정권에도 개혁개방을 권했다. 김일성은 개방에 대한 의지는 있었으나 김정일은 철저히 반대했다. 김정일은 등소평을 ‘정치 난장이’이라고 욕을 퍼부으며 “중국과 관계를 끊으면 끊었지, 개방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김정일의 반발에 꿈쩍도 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데로 나아갔다. 김정일의 태도에 중국은 한때 주은래 시기부터 무상으로 원조해주던 식량과 원유 수송관의 밸브를 막고 달러로 결재를 해주면 수송관을 열고, 안 주면 원유 원조를 끊겠다고 위협한 적도 있었다.

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자 김정일은 “중국이 이제는 남조선 놈들을 끌어들여 우리나라를 앞뒤로 먹으려고 한다”고 하면서, 주민들에게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김정일은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기 때문에 우리가 대만에다 미사일을 팔면 중국은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만과 군사동맹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결국 북한만 손해 본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에 김정일은 참다못해 다시 중국에 부탁하여 식량원조를 받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13억 중국사람이 밥 한 숟가락씩만 줘도 북한은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중국이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별 손해도 아니다.

중국사람들, 한번 ‘뿌싱'(不行)하면 다시는 상대 안해

김정일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틈새에서 교묘하게 비위를 맞추고 양다리를 걸치며 연명하고 있다. 북한은 ‘극동의 파수꾼’ 역할을 맡는 대가로 양 대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경제를 회생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과 사전협의 없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은 중국이 섣부른 핵보유 선언을 만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 따른 자위적인 행동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중국이 이 같은 김정일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 번 ‘뿌싱'(不行) 하면 두 번 다시는 상대하지 않는 관습 같은 것이 있다. 한 번 ‘안 돼’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만약 중국이 정말로 북한에 ‘뿌싱’ 하게 되면 북-중 관계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러면 김정일은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과연 모르고 있을까.

김정일은 중국이 불쾌해 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일은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중국이 한반도 전역에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다. 북한은 화가 난 중국에 잘 보이기 위해 최근 <노동신문>을 통해 조-중 혈맹관계를 새삼 강조하는 등 발 빠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1일부터 예정된 박봉주 북 내각총리의 중국방문도 이와 관련된 측면이 있다.

김정일은 현재 중-러에 양다리를 걸치는 과거의 구태의연한 외교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김정일의 얌체같은 외교행각을 언제까지 봐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참을 만큼 참다 마지막에 “이제 김정일은 뿌싱” 하게 되면 김정일 정권의 운명도 끝장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때문에 중국의 이해관계에서 큰 손해가 온다고 판단할 때 중국은 ‘뿌싱’을 선언할 것이고, 이 날이 김정일의 제삿날이 될 공산이 크다.

더욱이 중국의 후진타오 지도부와 북한의 국제공산주의 동지관계는 이미 희박해졌다. 김정일은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