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손에 든 ‘손익계산서’

“소탐대실(小貪大失) 않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내실있고 알찬’ 수확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대체에너지 지원만 본다면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따른 보상에 비하면 이득이 적어 겉으로는 손해처럼 비쳐진다.

당초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핵시설의 ‘동결.폐쇄.봉인’을 수용하는 대가로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초기 보상으로 제공했던 9년간 매년 중유 50만t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60일 내 폐쇄(shut down)할 경우 중유 5만t에 달하는 에너지를 우선 지원받고 불능화까지 나머지 95만t을 받는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북한은 소탐대실 하지 않고 에너지 지원문제를 ‘양보’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고 할 수 있다.

핵실험을 통해 이미 핵무기 보유를 과시한 상황에서 유지 비용이 더 많이 들고 고철더미에 불과한 영변 5㎿ 흑연감속로 등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 치고는 옹골찬 수확인 셈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반세기가 넘게 대북적대정책을 펴온 미국에 정치.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면서 김정일 체제 붕괴에 집착했던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체제 인정과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제재와 봉쇄 해제를 이끌어 내는 등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의 성적표에 비해 훨씬 큰 정치.외교적 실리를 챙겼다.

우선 세계 초대국인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외교적 승리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후 미국과 관계개선을 최고의 외교과제로 내세우고 그 실현에 안간힘을 써왔지만 양국간의 오랜 적대관계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향후 워킹그룹을 통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내부적으로는 주민들을 향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미간 대결에서 미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승리를 얻어냈다”며 김 위원장의 ‘영도력’을 확실하게 선전할 수 있는 명분을 쥐게 됐다.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이 북한 체제 유지의 중요한 근간이라는 점에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소재를 가진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은 정치.외교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며 “내부적으로도 미국에 맞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력을 칭송하고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선전하면서 ‘반미대결의 완벽한 승리’를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까지 그토록 목을 매왔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초기이행조치 30일 내에 사실상 해결하기로 하는 부수적 소득도 건졌다.

BDA문제는 북한의 정상적인 국제금융거래를 차단해 전반적인 대외무역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은 큰 숨을 돌리게 됐다.

또 100만t 분량의 에너지 지원으로 당장 시급한 에너지난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전망이 열리게 됐다.

특히 북한은 장기적으로 적성국교역법 논의를 통해 미국의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대외경제를 활성화하며 전반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엔제재가 풀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경제제재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논의를 통해 유엔제재는 명목으로만 남게 돼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나 적성국교역법 관련 태도 변화는 북한이 정상적인 교역을 할 수 있는 출발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이번 회담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당장 눈앞에 닥친 식량.비료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고 북한이 올해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의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