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민간접촉 통해 南정부 수해지원 타진?

북한이 최근 남한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수해지원 관련 협의 요청에 응답했다. 가뭄, 태풍에 이은 폭우로 피해가 커지자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를 내세워 지원여부를 타진하고 나선 것이다. 


통일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를 비롯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어린이어깨동무 등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 3곳에 수해지원과 관련 협의 의사를 밝혔다. 이미 초청장도 보낸 상태다. 이에 북민협은 24일, 재단과 어깨동무는 29일 방북할 계획이다.


당국간 대화채널이 닫힌 상태에서 남측 민간단체의 협의 제의에 답변을 보내온 형식이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수해지원과 관련한 첫 협의인 만큼 북한의 의중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민간단체 대북 수해지원을 통해 남북 대화재개에 있어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북한이 이번 접촉에서 우리 측의 모니터링 요구 등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 앞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수해지원은 한층 활기를 띌 수 있다. 정부 당국도 민간차원의 수해지원에는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전방위적인 제재국면에 직면해 있다. 각국 정부차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대남 대결정책으로 먼저 손을 벌리기도 어렵다. 결국 주민들을 동원해 수해복구를 독려하고 있지만 시멘트 등 물자가 부족해 작업도 더딘 상황이다. 외부의 지원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식수난과 전염병 창출 가능성까지 있고, 수확을 앞둔 시기 폭우로 식량작황에도 악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경제난·식량난에 따른 주민 불만에다 어리고 미천한 경력으로 김정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태에서 자칫 대책에 미진할 경우, 체제이완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접촉에서 쌀 등의 대규모 식량지원 여부를 타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이번 접촉을 계기로 정부 차원의 수해지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현 남측 당국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대북 수해지원에 대해 “북한의 수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민간단체에 어떤 식의 제안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지원물품의 종류와 규모로 북한의 의중을 살필 수 있다는 얘기다. 민간이 수용할 수 없는 정도면 결국 남측 정부의 지원여부를 우회적으로 타진하는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곡창지대인 황해도 등의 수해사실을 공개하고 민간단체와의 협의에 나선 것은 그만큼 피해가 크다는 반증”이라며 “민간단체를 통해 남한 정부의 지원을 간접적으로 받는 상황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정부 당국을 배제하고 민간단체와의 협의에 적극 나서 야권과 인도지원 단체의 ‘수해지원’ 촉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도 읽혀진다. 단순히 수해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비인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셈법도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대선정국에 들어섰으니, 현 정부와는 대화하지 않더라도 차기 정부와는 대화 창구를 모색하는 차원에서라도 접촉에 나선 것”이라며 “남측의 정치상황을 타진해 차기 정부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준비차원으로 읽혀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