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나진 엠퍼러호텔 직원도 장사 나섰다

▲ 北 라진 엠퍼러 호텔

북한 라진(나진)시에 위치한 ‘엠퍼러 호텔’의 직원들이 장마당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엠퍼러 호텔은 라진-선봉 개방시 카지노로 유명한 호텔이다.

13일 중국 옌지(延吉)에서 만난 엠퍼러 호텔의 00관리원 김명철(가명. 42세. 라진)씨는 “올 2월부터 도박장(카지노) 영업을 중단하면서부터 직원들에 대한 임금 지불이 대단히 어려워졌다”며 “호텔 개장 당시 300여 명이었던 직원이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고, 남아 있는 일부 직원들도 호텔 주변에 식당을 차리거나, 장마당에서 장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엠퍼러 호텔은 홍콩의 엠퍼러 재벌(영황그룹)이 약 2천4백만 달러를 투자해 건설한 5성급 호텔로서, 북한 내 최고급 카지노로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연거푸 중국의 고위 관리가 엠퍼러 호텔의 카지노를 드나들며 천문학적인 공금을 탕진함에 따라 중국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올 2월부터 카지노 영업을 중단하였고, 한 해 2만 명에 육박하던 중국관광객의 발길도 끊어짐에 따라 사실상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벤자치주의 前교통관리운수처장 채문호가 인민폐 351만 위안(한화 5억원 이상)의 공금을 엠퍼러 호텔 카지노에서 탕진하여 1심에서 ‘징역 8년’ 형을 받았고, 지린성 前도로공사감리소장 왕 모씨가 공금 포함 인민폐 87만 위안(한화 1억1천만원 이상)을 도박자금으로 사용해 현재 구속 수감중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연변지역 여행사들의 ‘북한관광’을 일체 금지시켰다가 지난 9월 말에야 북한여행금지 조치를 풀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인터뷰 내용

– 언제부터 엠퍼러 호텔에서 일했나?

2000년부터 엠퍼러 호텔에서 일했다. 라진 사람들은 ‘비파호텔’ 혹은 ‘오성호텔’이라고 부른다. 원래 호텔을 처음 개장할 때는 완전히 ‘자본주의’식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초창기에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기생’들까지 모아왔었는데, ‘임금’ 문제로 모두 되돌아갔다. 호텔을 짓는데 3년이 걸렸는데 원래는 30층 건물로 지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홍콩의 기업이 중간에 자꾸 투자금을 줄이는 바람에 7층밖에 짓지 못했다고 들었다. 도박하러 오는 외국 사람들과 물고기와 해산물을 먹으로 오는 중국 사람들이 많았다

– 지금 호텔 경영 상황은 어떤가?

올 봄부터 중국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영업이 아주 힘들어졌다. 그동안 여름 한 철에도 중국사람들이 단체로 몇 천명씩 왔다 가고, 도박하러 오는 중국사람과 러시아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다. 그런데 도박장도 문을 닫고, 중국사람들도 오지 않으니까 올 여름에는 직원들 임금도 못주고 있다. 직원이 절반이나 줄었다. 처음에는 300명쯤 뽑았는데 지금 호텔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은 150명도 안 된다. 그것도 실제 출근하는 사람은 청소원, 음식조리원, 노래방 관리원, 안마사등 50명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 호텔 기업주가 돈을 주지 않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주인이야 홍콩 기업이지만 직원들은 시(市) 행정위원회에서 통제한다. 임금은 관리책임자가 해결해 주는 것일 텐데…… 아무튼 올 봄부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 호텔에 일하는 직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일단 성분이 좋은 사람들은 뽑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들락거리는 도박장이 있으니까 ‘자본주의에 오염’될 수 있다며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나 당원, 보위부나 법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가족들은 선발대상에서 애초부터 제외됐다. 라진시 사람들중에 외모와 체격을 보고 뽑았다

– 직원들 임금이나 배급은 어떻게 주었나?

처음에는 대우가 아주 좋았다. 따로 식량배급은 주지 않았고 모두 임금으로 줬다. 호텔을 개장하고 2000년도까지 한 달에 중국돈으로 300원씩 받았다. 당시 인민폐 1원에 조선(북한)돈 25원이었고, 쌀값도 아주 쌀 때라 상당히 큰 돈이었다. 거기에 하루 세끼를 호텔에서 먹여주고, 자게 해줬으니 대우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장사가 안되니까 직원들을 하나 둘씩 ‘8.3일꾼’으로 내보내더니 올 2월부터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8.3일꾼’들이 바치는 돈으로 그저 하루 세끼나 얻어 먹는 수준이다

– ‘8.3일꾼’이란 무엇인가?

호텔에서 직원들에게 임금을 못 주니까 밖에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벌어서 일부는 자기가 갖고 일부는 호텔에 바치라는 것이다. 과거 어느해 김일성이 8월 3일날 공장 현지시찰에서 지시했다고 그렇게 부른다

-‘8.3일꾼’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버나?

호텔 주변에 식당을 차린 사람도 있고, 장마당에 가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중국에 나와서 옛날 손님들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라진은 바다가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물고기나 해산물을 먹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상대로 ‘오성호텔 분점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음식장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음식점이 호텔주변에만 10개가 넘는다. 기념품 상점도 몇 개가 있다. 거기서 이윤이 남으면 호텔에 바치고 일부는 자기가 갖는 식이다. 장마당 장사도 마찬가지다. 매달 호텔에 돈을 바치면 호텔에 출근을 하지 않고 장사를 해도 눈감아 준다

– 호텔에 돈을 바친다는 것이 ‘엠퍼러 그룹’에 바친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고, 우리처럼 호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호텔이 하나의 기업소인 것이다. 호텔은 시(市) 행정위원회에서 직할하니까 식당을 하든,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든 행정위원회의 비준(결재)이 있어야 한다. 돈을 바친다는 것은 행정위원회에 바친다는 뜻이다

– 장사에 나선 직원들의 벌이는 괜찮은 편인가?

그래도 호텔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일반 사람들보다는 유리하다. 일반 장사꾼들이야 장세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세금을 내야 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호텔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특별히 더 세금을 내지도 않고, 장마당에 매대를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래도 장사라도 하면 먹고는 산다

– 라진 사람들의 최근 생활은 어떤가?

바깥사람들은 라진-선봉을 ‘자유지대’라고 부러워하는데, 요즘은 더 어렵다. 라진-선봉은 무역지대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걷어가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우리 형님이 함북 00시에 살고 있는데, 하다못해 인민반에 바치는 돈도 라진이 더 비싸다. 또 함경도 다른 지역과도 통제되기 때문에 늘 식량값도 비싸다. 내가 라진에서 나올 때는 장마당 쌀 값도 1kg에 1천원이 넘었다. 부자들이야 더 살기 좋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 살기 어려운 곳이 라진-선봉이다

중국 옌지(延吉)=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