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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접근’은 간첩사건에 휘말린 재독학자 송두율 씨가 북한을 들여다보는데 활용했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학문적 연구방법론이다.
학문적 방법론이 사회문제화 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지만, 이를 다시 좌파몰락에 대한 접근에 활용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내재적 접근이란 말 그대로 내부의 눈으로 본질을 들여다본다는 말일 것이다.
늦깎이 대학생 입장에서 좌파가 왕성한 생활력을 보이는 시기에 좌파몰락에 대한 내부적 접근을 한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제목에 이끌려 책을 잡았다가 한국 현대사의 묵직한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놓은 저자의 안목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저자 이신우가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라는 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박정희’는 좌파들이 반드시 밟고 넘어서야 하는 벽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좌파 성향의 학자와 이론가들이 박정희를 주제로 책을 쓰고 있는데, 그 내용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논리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나름대로 박정희를 넘어 여러 소재를 다루다보니 한국현대사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많은 책들에서 발견된 팩트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독자에게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있는 논리에 반론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이른바 ‘진보 논객’ 진중권이 보수우파 지식인들의 논리를 뒤집는 화려한 언어유희로 상대방을 되치기 해버렸다면, 저자는 진보 좌파지식인들의 주장을 사실과 정연한 논리에 기초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실명(實名)을 거론해가며 비판한다는 것은 여러 부담이 따를 것 같다. 필자도 제자 입장에서 강정구 교수를 실명 비판했다가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다. 실명 비판은 상대가 반박을 해온다 해도 언제든지 받아들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저자의 자신감이 책을 더 신뢰하게 만든다.
진보좌파, ‘박정희 비판 증후군’ 걸려
저자는 첫 장에서 진보좌파를 자청하는 지식인들치고 박정희를 걸고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박정희 비판’ 증후군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비판이 유독 박정희에게 집중돼 있는 것은 진보좌파의 역사적 소망이 박정희 때문에 좌절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래서 진보좌파지식인들은 그의 경제적 업적에는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 오로지 박정희 개인을 향해 증오의 감정을 드러낼 뿐이라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박정희와 함께 비판의 화살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너무 ‘짜다’고 말한다. 이승만이 미국에 ‘벼랑 끝 전술’까지 써가며 얻어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대한민국의 존재를 유지하게 해주었음에도 온갖 비판과 심지어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건국을 이끌었던 초대 대통령에게 진보좌파가 가진 악감정 또한 좌익세력의 맥을 끊어놓았다는 이유였다.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 현대사’는 90년대 선배 학번부터 우리에게까지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한국 현대사 교재일 것이다. 이 책은 이승만정권의 등장으로 미국에 의한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박세길이 기술한 것처럼 이승만이 ‘조국을 미국에 팔아먹은 자’였는지 다른 책들과 비교하며 따져본다. 김충남의 ‘대통령과 국가경영’과 이대근, 전상인 등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같은 책에 기술된 해방직후 남한의 모습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미국의 원조를 이끌어 내고 토지개혁을 단행했으며, 헌법을 만들어 냈던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부정선거를 일으키고 북진통일을 주장했었지만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기초를 닦아놓았던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승만 ‘친미독재자’에서 건국의 기틀을 다진 지도자로
저자는 이승만을 이해하기 위해 닉슨의 평가를 들려준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중 한국을 방문한 닉슨을 만나 자신이 ‘북진통일론’ 카드를 제기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한국의 단독행동(북진통일)에 관한 나의 모든 말은 미국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이 이승만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고 확신되는 순간에 당신(미국)은 당신이 가진 가장 효과적인 협상수단을 잃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남한)는 우리 모두의 희망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없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항구적인 견제가 된다.”
이에 대해 닉슨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이승만의 용기와 뛰어난 지성에 감명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나 역시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하는 데 불확실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승만의 통찰력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좌파 논리가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인데다 현실성 결여라는 구조적 결함까지 내포하고 있는데도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좌파몰락의 내재적 접근’이 진보좌파들의 현대사 서술을 본격적으로 비평해 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희망했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현 정권의 무능함에 한국사회가 답답하고, 시대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저자 이신우는 안심하라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의 미래는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더 이상 진보좌파를 자청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룩함으로서 진보좌파가 설자리를 좁혀놓았다. 이후 진보좌파가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제 그들은 설 자리를 스스로 무너뜨려 온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사회는 역사발전의 거대한 조류에 이미 올라탔으며 좌파몰락은 노무현정권의 몰락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최옥화 / 대학생 웹진 바이트(www.i-bait.com)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