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그들이 풍기는 냄새는 젖비린 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23일,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16일자 모 일간지에 자신의 미국 방문 계획을 재고하라는 요지의 칼럼을 게재한 데 대해 공개리에 반박하고 나서, 황씨의 방미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다음은 황씨가 발표한 ‘최근의 비판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탈북자 동지회 사이트 nkd.or.kr)과 이종석씨의 신문 칼럼 요지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미가 국가의 이익 즉 한•미동맹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수락했다. 또 우리는 외국을 찾은 망명객이 아니라 조국에 돌아온 한국인이므로, 일반국민들과 같은 헌법상의 기본권을 누릴 권리와 의무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 대한 정부의 대우에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 대우와 우리의 신념, 양심을 바꿀 수는 없다. 지금 다수의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우리의 행동이 건전한 남북관계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비판기사의 필자(이종석 연구위원을 지칭)가 무엇 때문에 비판기사를 썼겠는가. 우리의 미국 방문을 저지시키는데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미국 방문을 반대하는 것을 여론화하려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한국 국민들 속에는 기사를 쓴 필자와 국익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애국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보장해주는 높은 물질적 대우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우리에 대한 정부의 대우문제를 우리의 원칙적 입장과 직접 결부시키는데는 경멸감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김영삼 대통령 정권 시기에 한번도 언론의 자유와 활동의 자유에 대하여 호소한 적이 없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특수관리 대상이었다. 현 정권 하에서도 우리를 관리하는 기관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그리고 조건과 구실이 달라질 때마다 우리의 민주주의적 처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특수관리를 받고 있는 ‘망명자’에 대한 처지가 누가 어떤 입장에서 관리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그런데 특수관리를 받는 ‘망명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보편적 원칙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한심한 궤변인가 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조국의 품에 안긴 한국인이다. 대국을 찾아가 생명의 안전을 구하는 망명객과 애국투사를 제대로 구별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개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국익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국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이 독재의 논리가 아닌가. 개인의 언론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초석을 허무는 것으로서, 가장 큰 국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된다.

우리를 초청한 미 국회의원들이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고조시켜 정파적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거짓말이다. 우리는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할 것 없이 다 한반도 평화를 보장해야 하겠다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으며, 다만 그 실현 방법에서 당근과 채찍을 어떻게 배합할 것인가 하는 견해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려고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동맹국 국회의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중상비방이다.

만일 우리를 초청한 미국의 국회의원들이 필요한 외교절차를 지키는 데서 부족점을 발로시켰다면 외교경로를 통하여 바로잡으면 될 것이다. 절차상의 부족점을 가지고 주권을 조롱하는 오만한 태도이니 뭐니 하며 큰 일인 것처럼 떠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들 속에서 반미감정을 고취하려는 행동으로밖에 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북한에 있을 때 세상에는 절대적인 천재가 한 사람밖에 없다는 주장을 반대해 보려고 헛되이 많은 애를 썼지만, 여기 남한에 와서는 천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들이 풍기는 냄새 때문이다. 아마도 젖비린내인 것 같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조선일보 20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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