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후계자 김정은의 등장으로 중국 내 북한 외화벌이 무역일꾼들의 동요가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라인으로 분류돼왔던 무역 간부들에 대한 소환 통보가 이어지면서 이들 사이에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이들 중 특히 김정남의 핵심 측근으로 만수대의사당 에어컨 설비 등 여러 이권에 개입하는 등 각종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강모(50대) 씨의 최근 행보가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중국 주재 북한 무역상사원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감이 각별하다. 강 씨는 데일리NK가 지난 6월 보도한 ‘북한 무역사업소 긴급점검’ 기사에서도 그 이름이 거론된 바 있다.
강 씨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7월 초 평양으로 소환돼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극심한 폭력과 신체 고문을 당하면서 뇌출혈이 동반돼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 씨에 대한 소환이유는 국가재산 사취와 부정부패로 알려졌지만, 중국 주재 무역일꾼들 사이에서는 김정남 측근들 손보기 일환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정설이다.
베이징 북한 외교가에서는 김정남이 북한 3대세습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자신에게 거액을 상납해온 해외 무역일꾼들이 최근 들어 평양으로 줄 소환 되자 이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그런데 의외인 점은 최근 강 씨의 복귀다. 보위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것으로 소문난 강 씨가 지난달 10월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북한 보위부에서 극심한 조사를 받을 정도로 문제가 되는 사람이 다시 해외 무역지사로 나온다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최근 강 씨가 평양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고도 다시 중국으로 복귀한 것은 그가 단순히 베이징에서 잘나가는 북한 무역일꾼이 아닌 북한 대외연락부 베이징 총책이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주변에서 유력한 증언으로 제기됐다.
강 씨와 직접 사업경험이 있는 중국 무역업자는 “베이징에서는 잘 나가는 무역일꾼으로 알려졌던 강 씨가 사실은 무역업자라는 신분을 가지면서도 십년 넘게 북한 공작기관 총책이라는 사실이 여러 정황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 씨가 북한 대외연락부 총책이란 정보에 대해 우리 정보당국은 “관련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 대외연락부는 해방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인 남한조선노동당 사건(1992년),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1995년 체포),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 사건(1997년 자살),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암살사건(1997년), 최근 일심회 간첩단 사건(2006년) 등을 배후 조종한 대남 공작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강 씨의 존재는 일심회 간첩단 사건 공판 과정에서도 파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법원 판결문은 일심회 핵심 관련자들이 1998년부터 10년 가까이 북한 대외연락부 관계자들을 베이징 호텔, 커피숍, 동욱화원 등에서 직접 만나 지령을 받아와 실행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강 씨는 베이징 조양공원 인근에 위치한 최고급 빌라와 최신형 세단, 심지어 5성급 호텔 피트니스 VIP 회원권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북한 해외주재원이 자식 중에 한 명을 평양에 볼모로 놔두고 오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그는 처와 딸, 영국에 유학했던 아들까지 모두 함께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김정남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비밀공작 책임자로서 막대한 공작금과 우월한 지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주변인들의 증언이다.
이처럼 강 씨는 김정남 계열이면서도 공작사업 총책이라는 점 때문에 숙청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다른 중국 내 김정남 라인 무역업자들은 다른 대안이 없어 새로운 연줄을 부여잡고자 여념이 없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장성택 라인으로 흡수된 정황도 드러난다.
김정남 라인 이외에도 그동안 장성택과 각을 세워가며 해외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섰던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계열 사람들도 일부 소환돼 관련자들의 걱정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오극렬은 최근 후계 공식화를 위한 노동당 조직정비 과정에서 소외돼 그 영향력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 등 북한 무역업자들에게 건축자재를 판매한 바 있는 중국 건설업자 좌 씨(40대)는 “강 씨는 김정남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김정남 사람으로 분류돼 많은 특혜를 누려왔던 인물이지만 여러 정황이 참작돼 재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김정은과 김정남의 고래싸움에서 북한 무역업자들의 등이 터지는 상황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해외무역사업소는 북한 내부에서는 말 그대로 선망의 대상이다. 그동안 무역일꾼들은 조직에 상납금을 크게 바치거나 북한 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자를 평양의 간부들에게 꾸준히 뇌물로 건넴으로써 해외 생활의 특혜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김정은 중심으로 세력판도가 바뀌면서 물갈이가 시작되자 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