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바람맞은 인생 3부] 인질로 살아온 30여년의 세월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나랏일 앞세운 허울뿐인 결혼생활…공작원 가족의 비극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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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이 만난 남자는 소박한 직업을 가졌다. 한 식료가공공장에서 기술준비실 실장으로 일하던 그는 아내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정심을 알게 되었다.

집에 없는 남편이지만 어쨌든 주민등록문건 상 남편이 있으니 외간 남자를 만나는 것은 안 될 행위였다. 당에서 말하는 대로 표현하면 혁명적 의리가 없는 행위, 당에 대한 배신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둘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비밀리에 연애했지만, 곧 당위원회가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당위원회 조직부에서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조직부장은 벌써 대여섯 번 바뀌어 새로운 사람이었다. 새 조직부장은 정심에 대해 아랫사람들의 보고만 믿고 그녀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정심에 대해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았다.

“동무 남편은 외지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이오. 혁명가의 아내가 그렇게 지조가 없어서 되겠소? 동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멀리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알면 뭐라 하겠소?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겠소? 남편의 그늘 밑에서 당의 배려도 많이 받고 사는 동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이요? 그리고 동무는 당원이요. 당원이 어떻게 이럴 수 있소? 이건 남편에 대한 배신이기 전에 당에 대한 배신이오.”

조직부장은 냉철하게 말했다. 정심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당위원회 문을 나서며 마른 울음만 꿀꺽꿀꺽 삼켰다.

같은 날 정심의 애인인 남자도 당위원회에 불려갔다. 당에서는 그 남자에게 남편이 있는 여자와 불륜 행각을 저질렀다면서 당에서 보호하고 있는 여자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느냐고 얼이 빠지게 욕을 퍼부었다. 그 후 남자는 당에 몇 장의 비판서까지 써바치고 더는 정심을 찾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정심과의 사랑을 정리하고 다른 여자를 찾아 이내 결혼하고 말았다. 그렇게 정심은 고독과 싸우며 수십여 년을 보냈다. 그러나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 압록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여성(글과 무관). / 사진=데일리NK

눈물의 환갑상


세월은 속수무책으로 유수같이 흘렀다. 그로부터 35년이 흘렀다. 정심은 60세 환갑에 이르렀다. 남편이 떠날 때 4살이던 맏아들은 어엿하게 자라 북한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일성고급당학교까지 마치고 도당위원회의 주요 간부가 됐다. 장가도 가서 손자들도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검찰소, 보위부에서 일하는 둘째, 셋째도 가정을 꾸렸다.

그래도 정심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도 자식들도 영영 잊어버린 듯 종무소식이었다.

긴 세월 동안 정심은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독수공방하며 살아왔다. 그녀는 낮이나 밤이나 늘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행여 시간도 모를 어느 날에 문득 남편이 집에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긴 세월을 홀로 지내 온 여인에게 남편이란 여전히 그리운 존재였다. 보고 싶었다.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

남편은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결혼식 날에 찍은 사진조차도 흐릿했다. 사진을 찍은 사람들도 남편 쪽 사람들이라 일부러 사진을 흐릿하게 해놓아 얼굴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혼하고 출장을 두 번 다녀왔을 때 몇 장의 가족사진을 남기긴 했지만 남편은 떠날 때 자신이 찍힌 사진을 전부 가지고 떠났다. 일을 마치고 완전히 집으로 돌아올 때 전부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사진을 남기지 않는 것은 대남공작활동의 규정이었다.

정심에게는 남편의 얼굴을 기억할만한 한 장의 사진도 없다. 하지만 매일같이 기다린 남편의 얼굴은 머릿속에 각인돼 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젊은 나이에 멈춰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잔주름은 얼마나 늘었을까, 머리는 얼마나 세었을까, 이제라도 돌아오긴 할까, 죽기 전에 한번 볼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갈마들었다. 훌쩍 떠나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죽을 만큼 미워하고 아주 잊으려 몸부림도 쳐보았지만, 그것은 허세에 불과했다.

정심의 환갑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에서 연락이 왔다. 당에서는 환갑을 맞는 정심을 위한 환갑상과 옷감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했다면서 당일에 중앙의 일꾼들과 도·시·군당 간부들이 모두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정심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세월은 그녀의 푸릇했던 젊음을 천년바위의 이끼처럼 때가 끼게 했다. 애국, 혁명이라는 허울 속에서 목을 매이듯 억지로 살아온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속절없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기도 했다. 자식들을 위해 이를 악물고 참을 뿐이었다.

환갑날 아침이었다. 간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정심에게 애로가 없느냐고 물었다.

“애로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 하십시오. 뭐든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정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다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애로는 없소. 소원이 있소.”

정심의 한마디에 도당에서 내려온 간부들의 눈이 한결같이 커졌다.

“어떤 소원이든 우리가 다 풀어드리겠습니다. 어서 말씀만 하십시오.”

간부들은 앞을 다투어 정심을 주시했다. 정심은 강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갑나이까지 살았으니 다 간 인생에 무슨 소원이 있겠소만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소. 아니, 부탁이 있소. 남편 얼굴 한번 보고 죽는 게 소원이요. 남편 만나게 해주오. 당에서 이번만은 거절하기 말고 꼭 들어주기 바라오.”

간부들은 정심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그러나 대꾸도 하지 못 했다. 그들이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었다. 설명도, 구구한 변명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 옆에 있던 맏아들도 얼굴빛이 꺼멓게 죽었다. 결국 간부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섰다.

정심은 힘없이 환갑상에 앉았다. 당에서 보내준 것이니 좋든 싫든 받아야 했고, 웃어야 했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동네 주민들이 모여와 환갑상을 구경하고 함께 모여 식사도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오후 시간이 되자 당일 일정에 따라 시내에 모셔진 수령님(김일성) 동상에 인사를 드리고 시내 한 바퀴를 돌며 구경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당에서 미리 준비한 차 두 대에 아들들과 손자들까지 모두 탔다. 차는 동상이 있는 시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동상에 도착했을 때였다. 차가 거의 없는 곳에 유난히 멋진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모두들 그 승용차에 눈길이 쏠렸다. 책임비서들만 타고 다닌다는 흔하지 않은 ‘216벤츠’였다. 차 안에는 몇 사람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내려졌던 창문은 정심이 동상으로 오르는 길에 들어서자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정심은 동상 앞에 도착해 가족과 함께 나란히 서서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간부들이 미리 준비해 준 꽃다발을 댓돌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와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시내를 한 바퀴 돌 참이었다.

정심이 탄 차는 어느덧 동상을 벗어나 시내의 여러 곳을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순간에도 남편을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름 모를 어느 곳에 묻힌 것은 아닌지. 노출되면 즉시 죽어야 하는 것이 남편의 직업이었다.

차는 아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그때 216벤츠가 정심 쪽으로 다가왔다. 그 차도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것 같았다. 216벤츠는 아까부터 벌써 몇 차례 스칠 듯이 다가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무슨 차가 이렇게 부딪칠 듯이 다가오느냐고 생각했다. 차 사고라도 일어날까 걱정됐다.

정심은 바짝 다가붙은 216벤츠에 눈길을 돌렸다. 그 차 안에는 몇 명이 보였다. 그중에 검은 안경을 쓴 한 사람과 얼결에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순간 마음이 알알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익숙한 눈빛이 번갯불처럼 퍼뜩 스쳤다. 그 눈빛이 가슴 한 곳을 서늘하게 했다.

어디서 보았을까? 정심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고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억해냈다. 그 눈빛은 분명 35년 전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간 남편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여보”하고 목소리를 토해냈다.

저쪽에서는 못 들은 것 같았다. 216벤츠는 떨어졌다가 다시 한번 다가왔다. 그 안에 타고 있는 검은 안경의 신사는 이전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다시 눈이 부딪쳤다. 정심은 더 또렷한 소리로 “여보!”하고 부르짖으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차 안에 있던 간부들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 순간 216벤츠는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심은 216벤츠를 세워달라고 통곡하며 간부들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어진 간부들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외면하고 있었다.

환갑날의 시내 구경은 정심의 눈물로 끝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환갑상을 와락 뒤집어엎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요? 아무 소용이 없소. 남편을 만나게 해주오.”

그날 하루종일 정심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남공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몇 년에 한 번씩 들어와 가족의 생사 여부를 몰래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날은 대남사업의 실수였다.

며칠 후 정심은 도당을 찾았다. 그는 도당 문전에 틀어 앉아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날 차에서 본 것은 분명 남편이었다면서 돌아온 사람을 왜 만나지 못하게 하느냐고 울분을 토하면서 항의했다. 하지만 그녀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을 보여 달라. 죽기 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죽고 싶다.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

그날 정심의 부르짖음에 간부들은 진땀을 흘렸다. 훗날 간부들 속에서 정심의 남편이 남조선과 일본 등 외국으로 다니면서 공작활동을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곳에 가족도 있다는 말도 돌았다.

그렇게 여인은 바람맞은 인생을 살았다. 어느 날 문득 불려간 당위원회에서 결혼이 결정돼 아이 셋을 낳았다. 남편은 주민등록문건에 버젓이 이름을 남겨놓고 떠나가 버렸다. 북한은 남편의 임무 수행을 위해 아내와 자식을 철저히 인질로 잡아놓은 것이었다.

국가를 위해 아내와 자식을 버린 채 살아가야 했던 남편은 행복했을까? 그 역시 가슴에 가족을 품고 슬픔을 감내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이것은 여인에게도 함정, 남편에게도 함정이었다.

이런 일은 비단 한 여인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북한에 대남공작대 가족은 수도 없이 많다. 전국에 대남공작대 가족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내가 살던 그 작은 군(구역)에만 해도 몇 집이 된다. 이들은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도 대남공작대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수많은 북한 여성들이 나랏일을 앞세운 허울뿐인 결혼생활에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다. 이들 모두는 국가가 만들어 둔 인질이나 다름없다. 이들에게도 해가 뜨는 날이 올까? 머지않아 그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 써내려 한다. (끝)

*편집자주
북한 안전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이들은 사건을 기록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때문에 이들은 북한 당국이 어떻게 사건사고를 처리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으로 일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보다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과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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