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北 변화 가로막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지원과 협력만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인권문제 제기를 ‘전쟁이라도 할 참이냐’고 거칠게 반문한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통일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서 독일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화해 협력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 정책의 정당성을 두고 독일의 사례를 거론하는 정부와 여당의 견해에 관한 비판적 견해도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 사례를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현지에서 통일 과정을 지켜보고, 수 년 동안 독일 경제를 연구해온 <독일통일정보센터> 박상봉(서울장신대 외래교수) 소장을 만나 통일 독일의 인권정책과 동독 변화의 근본 원인에 대해 들어봤다.

-먼저 정치권에서 공방이 오고 가는 인권 이야기부터 해보자. 대 동독정책에서 서독은 인권 문제를 어떻게 거론했나?

동독 내에서도 독재정권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수 많은 인권탄압이 있었다.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인을 사살하거나 검거해 투옥시켰다. 서독의 대 동독 인권정책 중에 직접적인 것은 정치범 석방을 위한 비밀협상, 동독의 인권 유린 사례를 기록하는 중앙범죄기록소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서독은 동독에 엄청난 재정지원을 하면서 부대조건을 달았다. 예를 들면 콜 총리 시절에 20억 마르크(1조원 초과)를 지원하면서 국경지대에 자동기관총을 철거하라,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를 보장하라, 서독 TV 시청을 허가하라는 등의 조건을 달았다.

교회 통해 동독 민주인사 서독으로 데려와

또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서독 교회의 지원을 이용해 교회로 피신한 동독 민주인사들을 서독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 교통부장관을 지낸 만프레드 슈톨페 목사이다. 민주인사를 지원하고 정보를 개방하고,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고, 각종 범죄행위를 기록해 사후에 처벌한 것이 서독의 정책이었다. 한국 정부는 서독의 인권정책부터 배워야 한다.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면 전쟁이 날 수 있다는 태도는 어떻게 보는가?

민주적이지 못한 사고이다. 인권문제는 인류가 터득한 진리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편적인 가치라고 한다. 화해협력도 종국적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전쟁이 과연 나겠는지 한번 따져봐라. 북한은 전쟁을 할 형편이 아니다. 정권유지가 목표 아닌가? 그런데 전쟁 운운하는 것은 정략적인 계산이다.

-동독을 변화시킨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

동구 사회주의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이 주변 요건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것은 동독사람들의 변화와 자유를 희망하는 힘과 용기이다. 동독주민들은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어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다. 서독이 적극 나서고, 주변국이 탈출에 협조했다.

북한도 수많은 탈북자들이 국경을 넘고 있지만, 중국은 협조하지 않고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북한에도 변화의 소지가 있고 목숨을 건 탈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돕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돕지 않는데 누가 돕겠는가? 대한민국이 북한의 변화를 막고 있는 셈이다.

-독일 통일의 저변에는 국민적 통일열망, 즉 게르만의 민족주의적 열기가 크게 반영됐다. 이러한 독일의 민족주의적 열기가 최근 한국의 민족공조와 유사성이 있는가?

분단국가의 통일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필요조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통일 이후에 무엇을 원하느냐가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북한의 경제 개발이다.

통일 이후 해외원조와 투자가 북한 경제재건의 핵심

핵심적인 것은 북한을 주요한 투자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공공연히 정치적으로 일본과 미국을 서운하게 대하고 있지만 이것은 큰 오류이다. 전세계에서 해외원조와 투자여력이 많은 일본과 미국을 배제하고 통일을 성공할 수 없다.

-민족공조가 가져오게 될 결과는 어떻게 내다 보는가?

통일을 민족공조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면 김정일 정권과 통일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같이 망하는 통일이 될 것이다. 참여정부의 통일을 담당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통일을 이루는 시점으로 끝나있다. 김정일과 그렇게 통일을 이루는 것은 대한민국을 망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적 절차를 북한이 수용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북 경협과 각종 지원사업을 우리 정부는 통일을 준비하는 ‘선투자’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향후 GDP의 0.7%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북한경제 피폐의 근본원인은 김정일 세습독재정권이다. 김정일이 살아있는 체제 속에서 기업 투자와 지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투자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기업이 돈이 남아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어 매는 것은 시장경제적 발상이 아니다. 북한에 투자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그 책임을 정부가 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투자가 북한을 시장경제로 유인할 효과가 전혀 없는가?

김정일 정권은 시장경제로의 전환보다 권력유지에 더 큰 욕심을 두고 있다. 시장경제를 하다가 권력의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중단시키고, 기업을 몰수하고 철수시킬 수 있다. 그런 거 하려면 정부가 하라는 것이다. 민간기업을 왜 시키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기본적인 경제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개성공단이 성공한다고 보지 않는다. 투자는 이윤창출을 위해서다. 북한을 투자적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정치적 리스크가 제거되기 전까지는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정치적 개입이 원인이 돼 실패했다.

서독이 동독에 직접 투자한 것은 한 건도 없어

개성공단이 아무리 커도 전세계가 콧방귀를 끼지 않는다. 서독이 동독에 한 건의 직접투자도 하지 않았다.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에 투자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재정권과 결탁해야 한다는 문제도 따른다.

-한국 정부는 교류 협력을 최대의 성과로 내세우는데.

한국은 교류협력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입장료 내고 북한 구경하러 간 것이지 교류를 한 것이 아니다. 쌍방통행이 교류다. 북한의 민간인이 자유롭게 한국에 온 적이 있는가? 정부차원의 교류가 무슨 교류인가? 햇볕정책을 한지 수 년이 지났지만 북한 주민은 탈출을 해야만 남한에 올 수 있다. 이것이 교류협력의 현주소다.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본다.

-정동영 장관은 남북회담에서 북한 당국자에게 ‘동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독일에서는 김정일을 그냥 부르지 않는다. ‘독재자 김정일’이라고 언론에서 호명한다. 좌파 언론 ‘슈피겔’ 같은 데서 더욱 그렇다. 정동영 장관이 북한 당국자를 ‘동지’라고 말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