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DJ, ‘햇볕 논쟁’ 춘추전국시대 돌입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사회에 남기고 간 족적은 거대하다. 그의 위대한 업적들 중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정보화에 대한 그의 기여도에 대해서는 좌, 우 모두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격렬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햇볕정책은 단순한 대북 정책을 넘어 한국 사회를 이념적으로 양분하는 키워드가 되어 버렸다. 친햇볕정책=친DJ=친민주당=진보=좌파라는 등식이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브랜드로 자신들을 정립하면서 햇볕 정책 지지자들을 친북 좌파라고 비판했다. 즉 햇볕정책 반대=반DJ=친한나라당=보수=반북 우파의 등식이 성립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햇볕 정책은 한국 사회 국민통합의 걸림돌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작 DJ 본인도 이런 대립을 회피하지 않았다. DJ 자신은 항상 햇볕 논쟁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DJ=햇볕정책이라는 등식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통용될 정도였다. 심지어 그는 지병 악화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강행하며 햇볕 정책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DJ는 햇볕 정책의 창시자이면서도 집행자였고 이론가였다.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햇볕 정책에 대한 유권 해석의 권한도 그가 독점했다.

그런데 그런 DJ가 세상을 떴다. 그는 이제 현실 정치인이 아니라 역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분신인 햇볕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종교, 철학, 이론 등 그 어떤 거대 담론이던 간에 창시자가 세상을 떠나면 제자들간에 유권 해석을 두고 다툼이 필연적으로 벌어졌다. 이론 투쟁이 벌어지고 다양한 파벌이 생겼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을 포함한 모든 종교가 그랬다. 마르크스주의도 그랬다. 심지어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둘러싸고도 다양한 이론이 서로 경쟁한다.

햇볕 정책도 비슷한 운명을 거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김대중 시대가 햇볕 1기라고 한다면 햇볕 2기는 어느 누구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리틀 DJ’ 임을 자임하며 나설 것이다. 햇볕 진영 내부에서도 대립이 심화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이처럼 역사가 된 DJ의 햇볕 그 자리에 작은 햇볕들의 춘추전국의 싹이 돋아날 것이다.

그 간에도 햇볕 세력 내부의 분화 가능성은 충분히 감지되었다. 2008년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분화된 핵심 노선 갈등은 종북주의와 북한 인권 문제였다. 같은 햇볕 노선 아래에서도 종북주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전개된 것이다. 또 진보신당이나 주대환씨의 사회민주주의연대는 북한 인권을 적극 제기할 것을 주장하며 그 동안 햇볕 진영의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을 질타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햇볕 정책 2기의 내용은 무엇이냐를 두고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단적인 예로 김민석 전 민주당 의원은 2007년 자신의 홈피에서 햇볕 정책은 ‘대화를 위한 지원(aid for dialogue)’인 햇볕정책 1단계에서 ‘변화를 위한 지원(aid for change)’인 햇볕정책 2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김 전의원은 과거의 햇볕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미흡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햇볕 정책이 북한의 적극적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김 전의원의 주장은 그 동안 보수 세력의 “햇볕은 김정일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때문에 김대중 사후 햇볕 정책에 대한 보수 세력의 대응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두 가지 점에서 달라져야 한다.

첫번째, 이제는 보수도 더 이상 “햇볕 반대”라는 안티테제에서만 자신의 존립 이유를 찾아선 안될 것이다. 물론 보수 진영은 햇볕 진영 내부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종북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종북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친북 좌파라는 꼬리표를 붙여 정치 선동을 부추키는 것은 이제 삼가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무엇이 올바른 대북 정책인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면서 자신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

MB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되어가지만 MB의 대북 정책은 DJ의 햇볕 정책처럼 그 특징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인식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MB 정권이 내어놓은 비핵개방3000이나 상생공영 정책을 여전히 설익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MB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 내부의 평가도 단일하지 않다.

때문에 보수 세력은 자신의 대안들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평가받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 DJ가 죽은 이후에도 햇볕에 대한 안티로서만 존재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그런 보수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한편 보수는 자신의 대안을 확립함과 아울러 햇볕 진영에 대한 강력한 포용 정책(engagement)을 펼칠 필요가 있다. 보수의 햇볕 진영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은 햇볕 진영 내부를 분화시킴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좌-우 대립을 극복할 모멘텀을 창출할 수도 있다.

DJ가 사라지고 춘추전국 시대가 도래한 햇볕 진영은 어떤 방식이든 재편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보수 진영은 한국 사회의 진일보를 위해 햇볕 진영에 대한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적극적 포용으로 태도를 대전환하는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햇볕 정책을 전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 햇볕 정책의 긍정적인 면은 적극 포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부 보수 진영은 햇볕 정책에 긍정적인 면이 하나라도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햇볕 정책의 목표는 과거나 지금이나 아주 정당한 것이다. 햇볕 정책 목표는 바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햇볕 정책의 목표이다. 보수 진영 중에서 이 목표 자체에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햇볕 정책에 대한 논쟁은 그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를 실현할 수단이 적합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햇볕 정책의 창시자가 사라진 조건에서 무엇이 더 적합한 수단인가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의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논쟁은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이며 보수 진영은 햇볕 진영에 개입해서 이 논쟁을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대립적인 자세가 아니라 건설적인 자세로 말이다.

DJ의 서거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던져 주고 있다. DJ는 너무 큰 거인이었기에 한국 사회 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DJ가 남긴 분열과 갈등의 골도 만만치 않다. 이제 우리 앞에는 DJ의 역사적 성과는 잘 계승하고 그가 남긴 숙제는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 중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과거 좌우 대립의 키워드였던 햇볕 정책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국민통합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MB 정권을 창출하고 현 정부를 이끌고 있는 한국의 보수 세력은 DJ 서거가 던져 준 이 새로운 역사적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