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주사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12일 개최된 통합진보당의 중앙위원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당 대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명색이 진보 완장을 낀 사람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착잡했다. 전자투표로 안건을 통과시켰지만 당권파들은 이를 무효로 간주하며 버티고 있다.


이번 폭력사태를 주도한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들은  NL(민족해방)계열 주사파 출신들이다. 특히 민족민주혁명당 재건세력들이 주도하고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이 연대했다. 필자는 NL계열의 분화과정까지 지켜본 경험이 있다. 당권파 가운데는 과거 필자와 운동적 인연이 가까운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적지 않았다.     
  
통진당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당권파가 타협안을 내놓을 것으로 생각했다. 부정선거는 명백했고 국민여론은 압도적으로 당권파의 양보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가지는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필자는 NL계열, 특히 경기동부연합의 생리를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요구를 밀어부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당권파들의 안하무인격 행동을 본 국민들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반복해 떠올렸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진보나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폭력적이고 패권적인 모습은 과거 운동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불명예스럽고 부끄럽지만 필자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 회의가 하루를 꼬박 넘기고도 다음날 밤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정당의 회의로는 거의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사실 이런 식의 회의는 운동 세력 안에서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회의 안건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계속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끈질긴 필리버스터(filibuster)도 생소한 것이 아니다.


중앙위 전에 이정희가 사퇴한 것도 치밀한 전략이라는 것을 소위 ‘아는 사람’ 눈에는 훤히 보인다. 폭력사태가 당권파 지도부와 무관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비행기 폭파범이 폭파 직전 전 공항에서 내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운동 세력은 기본적으로 참으로 끈질기다. 노선 투쟁에서 양보나 포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의 투쟁이 매 순간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폭력사태는 노선투쟁 실패에 대한 우려가 극단적으로 커질 때 드러나는 모습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명분을 중요시 한다. 매사가 그렇기도 하지만 모든 노선 투쟁은 반드시 명분을 가져야 한다. 명분을 잃게 되면 치명적이다. 세력이야 줄었다가도 다시 늘릴 수 있는 것이고, 주도권 역시도 잠시 내어주었다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이지만 명분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당권파들은 자신의 도덕성을 고수하는 것을 현 국면에서 지상최대의 명분으로 삼은 것 같다. 부정선거 자행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막는 데 총력을 쏟기로 하고 상황이 어찌되었든, 국민들이 어떻게 보든 일단 버티고 싸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어떤 비난과 지탄을 받든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것, 즉 자신의 도덕성을 고수하는 데 최대의 목적을 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희생자’로 만들고 최소한 동정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버텨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불법과 비합법의 공간에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합법적인 공간의 행동 방식이나 규정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합법적인 공간에서 잘못을 범했을 시 어떤 패널티를 받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법도 잘 모른다. 일반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별할지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며 인식이 빈약하다.


또한 당권파들은 지난 10여년 간 합법 정당 운동을 지향해 왔다. 합법정당 노선을 결정한 ‘군자산의 약속’ 대로 몇 년 내에 민주노동당을 장악했고, 2012년 야권연대를 통한 공동정권 수립을 코앞에 두게 된 것이다. 참으로 고무적이며 영광스럽고도 크나큰 성과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승리를 누군가가 가로채갈 위기에 처했다.


승리를 코 앞에 두고 밀리게 되면 그간 10년 여의 공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차라리 앞으로 10년을 수세적 입장에서 다시 처음부터 닦아나갈지언정 그간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물을 내주고 물러날 수는 없다는 결심을 했다.


핵심 종북주의자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해 정치 리더로 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고, 국회의원 신분으로 정부 곳곳의 핵심 정보들을 쉽게 열람하고 검토할 수 있는 매우 긴요한 합법 신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때문에 이 정도 난관은 난관도 아니며 또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국면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번 폭력사태는 당권파들이 국민들을 장기판의 졸(卒)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해줬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실체를 잘 모르거나 그저 쉽게 잊어버리니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계기를 통해 얼마든지 다시 뿌리를 내리고 대중을 선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제2의 광우병 사태만 일으킬 수 있다면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사실상 이들이 주도해 일으켰다. 한미 FTA나 제주해군기지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내분에 빠지면서 이들 이슈가 급속히 후퇴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앞으로 투쟁 사안은 널려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자신만큼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세력은 한국 사회에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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