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딸’ 구명운동 나 몰라라 하는 정치권 현실

최근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통영의 딸’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여서 (당 차원에서)적극 나서지 못했다”고 밝혔다. 엄밀히 볼 때 ‘통영의 딸’ 문제는 납북(拉北)이 아닌 월북(越北)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은 사견이라고 밝혔지만, 그동안 ‘통영의 딸’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한나라당 분위기를 비춰볼 때 비단 특정 의원만의 판단은 아닌 듯 싶다. 북한인권단체들은 지난 11일 세계인권선언 63주년에 맞춰 서울 청계광장에서 ‘통영의 딸’ 구출운동과 관련한 국민대행진을 개최했다.


올 겨울 최저기온을 기록한 혹한의 날씨에도 수백명의 시민들이 행사장을 참아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와 517명 납북자들의 송환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자리에는 정치인의 모습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전날 강남역에서 열린 서울대행진 행사에 나성린, 배은희 신지호, 조전혁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4명이 참석한 것이 전부였다.


오길남 박사는 1985년 북한 공작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아내인 신숙자 씨와 두 딸 혜원, 규원을 데리고 입북했다가 북한의 실체를 깨닫고 홀로 탈출하게 된다. 그 뒤에는 “우리는 이렇게 돼도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남편에게 단호히 공작 중단을 요구한 신숙자 씨가 있었다.


오 박사는 이후 ‘죽음의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부인과 두 딸의 신음 소리에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가족들 생각에 24년간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다,


‘통영의 딸’ 구명운동은 생사조차 확인 못하고 있는 한 가족의 기막힌 사연임과 동시에 10만명 이상의 전쟁 납북자, 517명의 전후납북자, 500여명에 달하는 국군포로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통영의 딸 구출대장정의 명예단장을 맡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도 “신숙자 모녀가 구출된다면 납북자 문제 해결에도 희망이 보일 것”이라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설사 신 씨 문제가 ‘월북’이 아닌 ‘납북’이었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적극 나섰을까 하는 점에서는 의구심이 든다. 한나라당은 당 내 ‘북한인권 및 탈북자 납북자 위원회’를 만들고서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신숙자 모녀 송환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고, 그 뒤를 이어 결의안 채택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들도 잇따르고 있다. 마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통영의 딸’ 문제와 관련해 유엔의 모든 메커니즘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통영의 딸’ 구명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번 사안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는 ‘인권’과 ‘생명’의 문제보다는 내년 총선에서의 표 계산이 더 중요한 일로 여겨지는 듯 싶다. 올해가 가기 전 ‘통영의 딸’ 구명운동과 관련한 우리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해본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