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고향서 최후…리비아 내전 종식

민중봉기와 뒤이은 내전으로 쫓겨나 도피 중이던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일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이날 과도정부군은 카다피군의 최후 거점인 시르테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42년간 철권을 휘두른 카다피의 사망으로 8개월여에 걸친 리비아 내전은 사실상 종식됐다.


하지만 ‘카다피 제거’라는 목적으로 일시 단합돼 있던 국가과도위원회(NTC)가 강력한 구심점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극심한 분열을 겪으면서 제2의 아프가니스탄화가 우려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리비아 임시정부인 NTC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NTC 제2인자인 지브릴 총리는 이날 오후 4시 20분(현지시간)께 수도 트리폴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마무드 샤맘 NTC 정보장관도 카다피의 시신을 목격했다는 시르테의 시민군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확인했다.


그는 이어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도 카다피의 사망을 공식 확인할 예정이지만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NTC 대변인 압델 하페즈 고가는 이에 앞서 “카다피가 혁명군에 체포된 후 사망했다”고 밝히면서 “이는 역사적 순간이요, 폭정과 독재의 종말”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이날 자신이 세운 호화로운 영빈관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었던 과도정부군 아델 부사미르는 “과도정부군 병사들이 그(카다피)를 마구 때렸고, 누군가가 그에게 권총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아흐메드 바니 과도정부군 대변인은 카다피가 “저항하려 해서 무력화시켰다”고 전했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병사는 발각 당시 카키색 복장에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있던 카다피가 생포 순간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다고 전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이에 앞서 과도정부군의 압박을 피해 차량으로 도주를 시도하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공습을 받고 다시 영빈관으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과도정부군의 다른 지휘관 압델 바신 하룬은 카다피가 차량으로 도주하다 공습을 받아 숨졌다고 말했다.


나토군 대변인 롤런드 대변인은 이날 오전 시르테에서 카다피군 차량 2대를 공습했다고 밝혔으나 이 차량에 카다피가 탑승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과도정부군 사이에서 ‘총상을 입은 카다피의 모습’이라며 퍼지고 있는 사진을 입수해 공개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카다피의 시신이 리비아 서부 도시 미스라타의 한 이슬람 사원에 안치됐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당국자도 AP 통신에 “리비아의 새 정부가 그의 사망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그동안 여러 차례 체포설이 제기된 카다피 4남 무타심도 숨진 채 발견됐으며 시신이 미스라타로 옮겨졌다고 AFP통신과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카다피의 최후 거점 시르테를 완전히 장악한 과도정부군의 현지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며 “도주하는 카다피군을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카다피군을 태운 차량 약 40대가 시르테 서쪽으로 도주했다.


과도정부군 소속 병사들은 시내 중심부에 모여들어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환호했고 승리를 자축하는 자동차 경적이 곳곳에서 울렸다.


한편 카다피 체포 과정에서 리비아 전 국방장관 아부 바크르 유니스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르테 야전병원의 의료진 이날 픽업 트럭으로 실려 온 시신 한 구의 신원이 유니스 장관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지난 8월23일 반군의 수도 트리폴리 함락을 계기로 종적을 감춘 카다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향 시르테 등을 거점으로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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