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협상 목표가 ‘제재 완화’에서 ‘체제안전보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이란 핵은 보유하면서도 대북제재 해제를 통해 내부경제를 활성화시켜 지금의 통치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17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비핵평화협상의 해법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하의 한반도미래포럼 공개토론회에서 “김정은이 바라는 체제안전보장이란 핵무기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일부 핵시설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제재의 일부를 풀어 침체된 북한경제를 적정 수준에서 활성화시켜 세습통치 구조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북한이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적 난국에 지친 주민들의 소요에 의해서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외부에서 제공하는 체제안전보장 조치는 김정은의 외교적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임시적 선전효과를 줄 수 있으나, 김정은 체제를 수십년 지속시켜줄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외부의 군사적인 위협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내부 주민들의 동요가 체제유지에 실질적인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김 위원장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북한은 핵시설 폐기와 제재완화를 맞바꾸면서 경제발전을 꾀하는 방식으로 내부의 위협요소를 제거, 세습체제를 이어가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실제로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영변 등 일부 핵시설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남북경협을 재개해 통제 가능한 북한식 닫긴모델형 경제특구방식으로 경제를 지금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올려놓으려 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진정한 경제개발에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핵 시설이 아니라 핵무기 폐기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분적 제재완화를 동반한 핵 위협 일부 감소는 결국 핵 있는 평화에로 가는 길이지 완전한 비핵화·항구적인 평화체제로 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핵무기 폐기 과정을 시작하지 않으면 제재를 상승시켜(강화해) 핵포기를 강제해야 한다”면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제재상승을 통해 북핵폐기를 강제화하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북한 체제안전보장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아울러 북한이 진정한 체제안전보장을 원한다면 비핵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은 “우리가 북한의 핵포기를 달성하기 위한 반대급부로서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을 다루기 위해서는 체제안전보장의 개념이 무엇인지, 과연 다른 나라들이 제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실제로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전 차관은 “체제보장은 내부 위협에 대한 것으로 아무리 북한이 특이한 체제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이는 북한 주민에게 달린 문제”라며 “따라서 북한은 비핵화를 통해 경제발전의 기회를 얻어 북한 주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체제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역시 “북한 내부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체제변환은 원칙적으로 북한 내부문제이며, 북한 주민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해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지 외부에서 정권을 보장해 줄 방법은 없다”면서 “북한이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교환하기로 했다면 협상을 위해 비핵화의 개념과 안전보장의 개념을 정확히 정의해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전 차관은 “북한은 지금 핵개발로 인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으며, 경제난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주민들은 민생이 어려운데, 이것이 체제 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도 경제를 망친다면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핵을 폐기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민생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체제안전보장”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