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당-국가’ 업무 더 늘었다

9일 열린 제12기 북한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는 권력 엘리트들이 김정일 중심으로 체제결속을 다지는 장이었다.

국방위원회(위원장 김정일), 최고인민회의(의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위원장 김영남)의 수장들이 그대로 유임돼 권력구조 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국방위원회 위원 확대, 민족경제연합 폐지 등 몇 가지 대목이 눈에 띈다.

◆장성택 급부상…국방위원회 강화일까?=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비롯해 국방위원을 4명에서 8명으로 늘인 대목이 주목된다. 군 출신 인물들이 포진했던 국방위원회에 노동당, 인민보안상, 국가보위부 출신 인원들이 유입됐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국방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당-국가 체제에서 당 기관이 아니라 ‘국가’를 지도하는 기관이다. 지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국가)을 군사적으로 지도 보위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기관이 국방위원회다. 그래서 김정일이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국가 대표’로서 외국과 ‘국가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다.

국방위는 명목뿐인 국가의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를 지도하는 기관이며, 그래서 최고인민회의를 지도하기 위한 국방위원을 형식상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하고 있다.

김정일의 제의로 이뤄진 국방위원회 인사는 장성택을 포함해 장거리 로켓발사의 주역으로 알려진 주규창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과 주상성 인민보안상,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 부부장을 국방위원이 새로 선임됐다.

장성택이 국방위원에 이름을 올린 것은 김정일이 자신의 국방위원장 역할을 군부 측면에서도 보좌하도록 하기 위한 인사로 보인다. 사실상 장성택의 역할이 당에서 군으로 확대돼 업무량이 더 늘어났다는 의미다.

군부와 마찰이 많은 장성택을 국방위원에 임명해 군부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또한 국방위에 장성택이라는 당 인사가 편재되면서 경찰과 보위부, 군부 인사도 차례로 국방위원에 임명됐다. 이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견제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국방위원회가 권력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당 조직지도부의 역할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것을 보인다. 김정일은 국방위원회를 상설화하면 자신의 독재에 일말의 누수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설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다만 장석택을 선임한 것은 자신의 일을 좀 나눠준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군부 중심의 국방위원회에 새로이 노동당(장성택, 주규창), 보위부(우동측), 보안상(주상성) 출신들을 포진시킨 것은 국방위원회를 형식상의 기구가 아닌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로 재편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이 장성택 등을 국방위원으로 선임한 것은 당조직을 통하지 않고 국방위원회를 직접 영도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며 “국방위원회만큼은 직접 지도하겠다는 김정일의 의지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국방위원회에 김정일의 자식들인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 등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았고 백세봉이라는 미스테리 인물이 계속 남아있는 것도 관심이다. 아직 후계 작업이 수면 아래에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 중이라는 반증이다. 최근에는 김정운이 다소 유리하다는 관측이 많다.

◆ 北, 11년 만에 헌법 개정, 민경협 폐지=11년 만에 헌법을 개정한 점도 주목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국방위원회 인원이 대폭 충원된 점을 볼 때 국방위원회 지위나 기능을 강화하는 조항을 추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개정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추론에 불과하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권력구도와 주요정책의 흐름이 반영될 것”이라면서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헌법 개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권력구조 틀은 바뀌지 않고 국가기관 간에 임무 조정이 있을 것”이라며 “98년 헌법 개정에서 최고인민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로 분산됐던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의지”라면서 국방위원회를 명실상부한 최고지도기구로 확립하겠다는 것이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총괄해온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을 폐지한 것도 주목된다. 내각에 속해있던 민경협 내 일부 조직은 노동당 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 산하 대외사업국으로 통폐합돼 중국 등 해외경제사업을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대북 전문가들은 현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대남사업을 줄이고 당분간 체제결속에 중점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 교수는 “현 남북관계에 따라 대남사업이 줄어들 것을 국정에 반영, 당분간 내부 체제강화에 중점을 두고 남북교류는 줄이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고, 이 연구위원은 “대남관계에 미련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존심 강한 김정일, 다리 절며 회의 참석=자존심 강한 김정일이 왼발을 절룩거리면서 회의가 열린 만수대 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주석단 중앙까지 약 10보를 걸어 입장하는 모습이 공개됐고, 박수를 칠 때도 왼손을 고정시킨 채 오른손만 움직이기도 했다. 트레이드마크인 볼록 나온 배는 쏙 들어갔고, 굵은 주름살이 얼굴 전체에 퍼져있고 머리숱도 많이 빠져 보였다. 여기에 흰머리까지 늘어나 그는 더 이상 장년이 아닌 노인의 모습이었다.

북한 전역에 조선중앙TV로 보도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그가 불편한 몸을 무릎쓰고 회의장에 나온 것은 건강 회복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록 불편한 신체 부위도 있지만 자신이 회의를 운영할 만큼 건재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 교수는 “김정일이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것은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이번 회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이라며 “직접 국방위원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향후 국방위원회 운영에 힘을 싣겠다는 행보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