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1일(현지시간) 북한으로의 유류공급을 30%가량 차단하고 북한산 섬유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긴 신규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이 3일 6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9일 만으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신규 제재는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라고도 여겨지는 유류를 유엔 제재대상으로는 처음 포함시켰다. 또한 북한의 주요 무역 수입원 중 하나인 섬유 수출을 중단시키는 내용이 추가돼 주목된다.
다만 전면적인 대북 원유금수 조치가 누락됐고, 제재 대상에 김정은이 빠지면서 애초 미국이 주도했던 초강경 원안과 비교했을 때 최종 결의안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 미국이 대북 원유공급 중단에 반대한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결의안 결렬을 막기 위해 끝내 유류공급 30% 차단으로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원유 공급이 그대로 유지될 시 북한 군수공업 분야에는 큰 타격이 없어 사실상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북한의 셈법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대북 정유제품 수출 연간 200만 배럴 상한선…北섬유수출 전면 금지
우선 안보리 신규 대북제재 결의 2375호는 대북 원유수출을 기존 추산치인 연 400만 배럴을 초과해서 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의안 작성을 주도한 미국이 당초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원유금수 조치를 추진하려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와의 타협 끝에 기존 규모에서 상한을 설정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 조항은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에서 건별로 사전 승인하는 경우 예외로 추가 수출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유제품 수출은 연간 200만 배럴의 상한선을 정했다. 현재 450만 배럴로 추산되는 연간 수출량에서 55%가량 줄어든 규모다. 외교가에선 이 조치로 원유와 석유 정제품 등을 포함한 전체 유류 공급량이 30%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 중 하나로 꼽혀온 직물, 의류 중간제품 및 완제품 등 섬유 수출도 전면 금지된다.
또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에서 건별로 사전 허가를 하지 않는 한 신규 고용이 금지된다. 결의 채택 이전에 서면으로 고용 계약이 이뤄진 경우는 예외로 하되, 기존에 이미 고용된 북한 노동자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신규 고용허가를 내줄 수 없다.
북한 섬유수출 금지와 해외 노동자 고용 제한 조치로 각각 연 8억 달러와 2억 달러, 총 10억 달러(1조 1350억 원)의 차단 효과가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아울러 금수품목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에 대해 유엔 회원국이 공해 상에서 기국(선박 국적국)의 동의 하에 검색하도록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초 검색 의무화를 추진하던 데서 다소 수위가 낮아진 결과다.
대신 공해 상에서의 검색에 기국이 동의하지 않을 시 선박을 적절한 항구로 이동시켜 검색할 의무를 부과하고, 기국이 이를 거부하면 유엔 제재위가 해당 선박을 자산 동결 대상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더불어 공해 상에서 북한 선박과 다른 국가 선박 간 물품 이전이 금지된다. 이미 수출금지 품목으로 지정된 북한산 해산물을 제3국에 넘기는 행위 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이밖에 박영식 북한 인민무력상 등 개인 1명과 노동당 중앙군사위·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등 3개 기관이 해외 자산 동결과 여행금지 등 신규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당초 미국은 북한 김정은과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제재대상에 올리려 한 것으로 알려지나, 최종 결의에서는 끝내 포함되지 않았다.
아울러 금융 분야에서는 북한과의 합작 사업체를 설립하거나 유지, 운영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기존 합작 사업체는 120일 이내에 폐쇄하기로 했다.
이로써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한 2006년 1718호를 시작으로 1874호(2009년), 2087호·2094호(2013년), 2270호·2321호(2016년), 2356호·2371호(2017년) 등 이번까지 총 9차례 채택됐다.
이번 신규 대북제재 결의 채택과 관련,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을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유엔 안보리는 이번 결의를 통해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북한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핵개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계속된 도발은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압박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국제사회의 준엄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은 오직 비핵화의 결단만이 자신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보장받는 길임을 깨닫고,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비핵화와 평화의 길로 조속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성명은 “정부는 이번 결의 2375호를 포함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들이 철저히 이행되도록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며, 북한의 근원적인 비핵화와 한반도내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도 지속 경주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