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은 있지만 실체는 오리무중” [북한 ‘돈표’  A to Z]

소식통 "돈표, 개인 소유 외화 끌어내기 위한 임시 조치...명확한 설명 아직도 없어"

북한 돈표(2021년 발행). /사진=데일리NK 내부 소식통 제공

북한 당국이 외화흡수를 위해 ‘돈표’를 발행한 지 두 달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돈표 발생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데일리NK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간부들과 대량의 외화를 소지하고 있는 환전상, 돈주(현금 자산이 많은 신흥 부유층)들만 돈표 발행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돈표를 아직 실물로 보지 못한 돈주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돈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당국의 공식 발표나 조치, 안내 문서 등이 하달되지 않으면서 북한 내부에서도 돈표와 관련된 소문만 무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때문에 본지는 북한 당국의 돈표 발행 목적과 현재까지의 관련 조치를 확인하기 위해 발행과 시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내부 소식통과 집중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재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간부 A 씨와 일문일답]   

– 당국이 돈표를 발행한 이후 이와 관련한 공식 언급이나 문서를 밝힌 바가 있나

없다. 지금까지는 실제 외화를 쓰는 사람들에게 돈표로 바꾸게 하고 “이 돈표도 돈과 같은 겁니다”는 말만 하고 있다. 당장 외화를 이용해 상품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돈표도 돈과 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만 주지시키는 것이다. 예전에 돈표를 발행했을 때는 은행이나 국가지정 환전소, 외화 상점 등지에 돈표 이용 방법에 대한 안내문이 붙었다. 사실 새로운 정책이 시작되면 안내 조치가 하달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돈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내려온 문서는 없다. 

– 돈표 발행 목적이 단순히 국가가 외화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간부 아니면 돈주다. 이 사람들한테 투자를 유도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누가 요즘에 자발적으로 국가에 돈을 헌납하겠나. 어떤 우대 조치를 해줘도 외화를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외화를 직접 소비할 때 돈표가 외화를 대신하게 하면 상점이나 시장에서는 돈표가 유통되고 외화는 국가로 들어간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개인의 유휴자금을 빼내서 국가 경제 자금으로 쓰기 위한 일종의 깜빠니아(캠페인) 사업이다. 

–  깜빠니아 사업이라는 것은 임시적인 조치라는 의미인가. 돈표 발행과 관련해서 내부에서 법적으로 규정한 바가 없다는 뜻인가.

현재까지는 그렇다. 국가계획위원회와 조선중앙은행이 외화를 국고로 빨아들이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지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으로 통과된 것은 없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남은 4년 동안 국가가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일시적으로 끌어다 쓰겠다는 목적일 뿐 돈표를 앞으로 계속 시행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임시적이고 특수한 조치라고 이해하면 된다. 

– 일부에서는 북한이 화폐를 찍어낼 용지와 잉크가 없어서 화폐 대신 돈표를 발행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 이유는 아니다. 아무리 돈이 없다 한들 조선(북한)이 핵 미싸일(미사일)을 쏘는 나라인데 또냐(토너)이 없어서 돈을 못 찍겠나. 다만 돈표 유통이 잘 돼서 돈표가 5천 원권을 대신한다면 5천 원권 화폐를 덜 찍어내도 되고 화폐 찍는 돈을 조금은 아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주요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화폐를 찍을 때 돈이 덜드는 것이 아니라 외화가 나라 주머니로 들어온다는 것이고, 국돈 유통량을 줄이면서 국돈 가치가 높아지게 한다는 것이다. 

– 돈주들의 유휴 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더 큰 단위로 돈표를 발행해야 할 것 같은데 왜 5천 원권을 위주로 발행한 것인가 

일단 국돈 가장 큰 단위가 5천 원인데, 더 큰 단위로 찍어내면 유통에 있어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돈주들에게 국가가 외화를 빨아들이기 위해서 돈표를 찍어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외화를 쓸 때 활용하는 것일 뿐임을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당장 매장에서 가장 사용하기 편하고, 또 익숙한 단위로 찍어낸 것이다. 

– 최근 외화 환율이 1달러에 5천 원선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돈표로 바꾸기 쉽게 하기 위해 5천 원권을 발행한 것은 아닌가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가 됐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솔직히 처음부터 1달러에 5천 원을 맞춰서 돈표 5천원권을 찍어낸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국가가 돈대(환율)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계속해서 달러 돈대가 5천원에 머물러 있지도 않을 것이고, 국가가 돈대를 5천원대로 계속 유지시킬 수도 없다. 

– 현재까지는 돈표 사용이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되나.

그렇다. 돈표량이 워낙 적다. 돈대에 영향을 미칠 만큼이 아니다. 우(위·중앙당)에서는 일단 돈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분기지표를 보고 더 찍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지금 돈표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는 분기별 지표를 바탕으로 운영 계획을 세운다는 입장이어서 내년 초는 되어야 돈표 사용이 본격화 되든 혹은 조용히 사라지든 결정이 나지 않을까 싶다.